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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Dec 26. 2022

영화 '나는 마을 방과 후 교사입니다'

돌봄 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속 내 가족을 바라보며

<한국 사회에 신흥종교 '나마교'가 나타났다. 세상을 혹세무민 하려고 열혈 신도들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농담이다. 아재개그 한번 해봤다.


아내가 20여 년을 마을 공동체 사업의 하나인 공동육아에 참여하면서 최근 10여 년간은 마을 방과 후 돌봄 교사로 활동해 왔는데, 관련된 활동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된다고 한다. 마을 방과 후 교실에 아이를 보내던 부모 중 저명한 영화 촬영감독님과 시나리오 작가님 부부가 있었는데, 코로나를 겪으며 돌봄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공동연출하여 다큐멘터리로 촬영하였다. 


덕분에 아내는 졸지에 영화배우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지난 2022년 5월경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에 출품되어 상영되었고 이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부천노동영화제 등에서도 상영되더니 최근에는 텀블벅에서 다큐 극장 개봉을 위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1천만 원을 모금하는데 며칠 만에 150% 이상 펀딩목표를 채우며 인기펀딩으로 자리 잡았고 인스타그램에 계정도 만들었다. 마을 방과 후 조합원들은 '나마교' 준비기획단까지 만들고 오마이뉴스에 연재기사를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영화개봉과 더불어 교사들이 직접 쓴 책도 출간된다고 하니 가문의 영광이다. 


이제 배우이자 출간 작가인 아내를 앞으로 어떻게 모시고 살지 계획을 잘 세워야 할 판이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작/출연진들과 관객들 간의 대화시간


나는 브런치 작가에 단 한 번에 붙었는데, 아내는 브런치 작가에 탈락한 후, 바로 출간작가로 입성한다. 10대 시절 한때 영화배우를 꿈꿨는데 난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공동육아의 보육교사로, 마을방과 후 교실의 돌봄 교사로 평범하게 살아온 아내는 40대에 영화에 출연한다. 사람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아내와 함께한 영화제에서 영화를 먼저 볼 수 있었는데, 가족으로서 바라보는 느낌은 일반적인 감흥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아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자기 일에 자부심과 열정을 그리 높게 갖고 있다는 것도 새삼 알았다. 공동연출한 감독 부부의 이야기와 영화 소개글, 영화 속 교사들의 활동을 듣고 보면서 지난 10여 년의 도토리마을 방과 후 돌봄 교사와 그 이전 성미산 마을의 공동육아 보육교사로서 꾸준히 일해온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는 가정에서 바라본 개인적인 모습이기에 남편인 나밖에 할 수 없는 얘기일 것이다.




영화 속 돌봄 교사들은 계속 아이들과 '무언가' 한다. 얘기하고, 놀고, 웃고, 배우고, 돌아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같이 먹는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저녁시간에는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하고 무엇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교사들끼리 대화하고 토론한다. 업무시간 내내 쉬는 시간이 없다. 영화는 살짝 지루하지만, 각 장면에서는 무언가 계속 진행되기에 영화 속 공기는 다소 답답하다. 대체 저 교사들은, 내 아내는 언제 쉬는 것이냐?


아내는 건장한 체격에 건강도 타고났다. 결혼생활 20여 년 동안 잘 아프지도 않았고 3명의 자녀들도 순풍순풍 낳았다. 하지만 잘 아프지 않았을까? 아마 아플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공동육아의 보육/돌봄 교사들이 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아내가 10여 년간 마을 방과 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한 몸도 한몫했겠지만 편히 휴가를 쓸 수 없어 철저하게 자기 몸을 관리할 수밖에 없던 그 노력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건강한 아내도 퇴근 후에 잠이 들 때면, 끙끙 앓는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대단한 게, 계속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면서 온갖 행정일을 해야 하는데 웬만한 체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보육교사 업무들이다. 아내가 공동육아에서 보육교사로 활동하던 초창기에 그냥 힘들겠구나라며 이해하는 정도였는데, 점차 이 교사들이 하는 일의 강도를 알게 되면서 끙끙 앓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공동육아에서도, 마을 방과 후에서도 아내는 항상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러 한강을 나가고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뛰어놀았다. 들로 산으로 시간만 나면 돌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30대에는 버틸 수 있었겠지만, 40대 후반 들어 버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추운 날 더운 날 비 오는 날을 가리지 않고 야외활동을 하니 대체 이 사람들은 왜 그렇게 '무언가' 해야 함에 집착하는지 의아스럽기도 했다.  


<나는 마을 방과 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 오마이뉴스에서 발췌


각자의 일터에서 오후 2시쯤 점심식사를 잘했냐며 메신저로 묻곤 하는데, 가끔 아내의 대답은 이렇다.

'오늘은 편의점 도시락이야'

'오늘은 삼각김밥 한 개랑 컵라면 맛있게 먹었어'

'간식 선생님이 어제 해 놓은 음식이 많이 남았는데, 오늘 아이들이 적게 와서 그거 점심으로 같이 먹었어'


편의점 도시락이나 김밥 등의 점심식사를 나는 1년에 한두 번 할까 말까인데 아내는 종종 한다. 아이들이 오기 전 빨리 식사를 끝내야 하니 어디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기도 힘들고 잘 차려진 밥상을 마주하기도 힘들 것이다. 일이 그러니 어쩔 수밖에. 간식 선생님은 왜 음식을 많이 했을까? 교사들도 먹을 수 있게 음식 양을 신경 써준 간식 선생님의 마음씨도 살짝 고맙다. 1주일에 한 번만 편의점 도시락 먹으라면서 웃으며 얘기한다.

저녁때 퇴근길에 만나 다양한 메뉴가 있는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이고 귀가하려고 노력하는 건 내 몫이다.  


요즘도 아내는 잠을 자면서 끙끙 앓기도 하고 휴일에는 다리에 파스를 붙인다. 주일날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이 있으면 바로 약을 먹는다. 종종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김밥이라고 웃어젖힌다. 그러고선 월요일에 아무렇지 않게 출근한다. 이제 곧 50대가 될 텐데, 대체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스럽다.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님들은 이런 교사들의 수고로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월급주니 당연하고, 교사들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선지 교사들 입장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주고 극장에 걸기 위해 힘쓰며 책을 출간하여 사회적 환기를 위해 노력하는 조합원 부모들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왕 벌인 일, 대박 나기를 바라는 속내도 드러내본다. 

모두들 축복받으시오~




사회에서는 교사라고 부르지도 않고, 일반인들은 돌봄 교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알지도 못한다. 마을 방과 후는 제도권에 들어와 있지 않아서 정부지원도 못 받고 돌봄 노동자들인 교사들은 호봉 인정도 안돼 처우도 좋지 않다.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젊은 사람들이 이상과 열정, 혹은 호기심을 갖고 교사로 참여했다가도 처우와 사회적 인식, 체력적인 면에서 버티기 힘들다. 그래선지 오래된 경력을 가진 교사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비전과 이상은 열정을 불러온다. 열정은 사람을 움직이고 헌신하게 한다. 헌신은 꾸준히 배우면서 경험을 쌓게 해 주며 의미를 찾아 장기간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준다. 그 힘은 자긍심이 되고 인생이 된다. 교사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이런 비전과 열정은 자격증을 준다고, 급여를 많이 준다고, 정부가 인정해 준다고, 상을 준다고 해서 유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자기만족과 자아성취가 뒤따라야 가능한 일인데 바라보는 이들의 존중과 존경, 격려가 이것들을 계속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위해서 '무언가' 꾸준하게 해온 돌봄 노동자들, 이 교사들에게 끊임없는 존경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돌봄, 특히 다른 사람들의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돌봄 노동자로서 자긍심을 가져도 충분하다. 


다큐멘터리는 사회에 다양한 질문을 던지면서 아이들과 교사들의 모습을 비춘다. 관객이 된 가족은 화면 속 내 가족의 현실과 고충을 들여다보고 다시 한번 응원과 격려를 내 가족과 주변 동료들한테 보낸다. 나뿐만 그럴까? 다른 교사의 여러 가족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영화를 계기로 그동안의 고생과 수고로움이 알려지고 인정받으면 좋겠다. 물론 마을 방과 후 교실이 더욱 활발해지고 이에 관심 갖는 교사와 부모들이 더욱 많아지면 더할 나위 없고.


한 아이가 잘 자라려면 온마을의 헌신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은 당연하겠고 학교와 지역사회 등 여러 구성원들의 관심과 돌봄이 동반되어야 한다. 


가정 내 부모대신, 학교 속 담임교사대신 방과 후 교실에서 수년간 아이와 놀아주고 활동하고 대화하고 먹여주는 돌봄 교사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아이들과 부모의 인생에 이들은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이들의 비전과 헌신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정작 돌봄이 필요한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문을 걸어 잠그고 교육과 돌봄 책임을 가정과 민간으로 넘겨버린 정부와 공교육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까?


한 분야에서 자기 헌신과 열정을 바친 내 아내는 돌봄 노동자이다. 코로나19 광풍이 몰아치던 때에 학교도 못 가는 아이들의 돌봄을 위해 스스로 오전 11시 출근시간을 오전 8시로 앞당기고 마스크를 2겹씩 겹쳐 쓰면서 일하던, 자기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다. 아내를 비롯한 교사들에게 바치는 감사의 필름이 곧 극장에서 돌아간다. 부디 영화가 잘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을 방과 후와 그 안의 돌봄 교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를 바란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59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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