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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May 06. 2023

걱정 마. 금방 지나간다

딸아이가 2주 만에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빠~ 나 이번 시험 망쳤어!"

"우와~ 우리 딸! 시험 얘기야? 괜찮아, 괜찮아. 다음에 잘 보면 되지^^"


조용히 집에 들어온 둘째 딸아이가 자기 방에 들어가면서 조용히 한마디 던진다. 이번 중간고사를 잘 못 본 모양인데 지금 시험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냅다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괜찮다고 해줬다. 

딸아이가 거의 2주 만에 입을 열었다. 


"밥은 먹었어? 엄마는 아직 퇴근 안 했어. 뭐 좀 먹을래?"

정수기에서 물 한잔 먹고 들어가는 딸아이를 바라보면 한마디 더 건넸다. 스터디카페에서 간단히 먹었다면서 아빠한테 눈 한번 마주쳐주고 자기 방에 스윽 들어가 버렸다. 


"오~~ 나랑 눈 마주쳐줬다~ 야홋!!" 

이거 무슨 연예하는 것도 아니고... 딸내미 키우기 정말 쉽지 않다. 




지난 4월 14일 아이돌 그룹 아스트로의 멤버 한 명이 생을 달리 했다. 10대 중고등학생들이 대부분 그렇듯 고1학생인 딸아이는 연예인에 죽고 사는 아이인데, 특히 아스트로의 광팬이다. 혼자서 팬미팅에도 가고 콘서트에 가서 앨범 몇십 장 사준다며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다. 아스트로의 차은우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모든 멤버들을 다 좋아하는 모양이다. 


출근준비를 하면서 아스트로 멤버의 사망소식을 뉴스로 잠깐 들어 아내한테 얘기했더니, 안 그래도 아침에 딸아이 방에 들어갔더니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있다 했다. 출근하면서 잠깐 방문을 여니 아직 이불속에서 흐느끼는 딸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얼른 학교 갈 준비 하라 넌지시 얘기하고 출근했는데, 이날 딸아이가 학교를 안 갔다. 전날부터 생리통이 심해져서 힘들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연예인의 죽음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나.  생리통이 심하다니 그냥 넘어가긴 했는데... 당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본인만의 추모방법을 만들어 추모기간을 갖는 건지, 그 이후 딸은 가족들과 말을 닫아 버렸다. 같은 방을 쓰는 동생한테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언니 찬바람 휭휭분다며 무서워서 말도 못 건다는 막내의 얘기에 쓴웃음만 나왔다. 시험공부를 한다며 스터디카페에 가서는 밤 12시가 넘어도 귀가를 하지 않아 부모들 마음 졸이게 만들기도 하였다. 주말에는 말없이 어딘가 다녀오고 시험기간인데 또 아르바이트를 갔다고 한다.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팬들이 만든 추모공간에 다녀온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나름대로 조의금이라도 내려고 아르바이트를 한 것 같기도 하다. 뭐 뭘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공부한다며 학교랑 스터디카페에 가고  어디든 정신 차려서 돌아다니니 그걸로 감사하다. 돈 벌어서 아빠엄마 밥 한 번 사주지 않고선 연예인 덕질하는데 돈을 쓰는 것 같아서 좀 허무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고자 자기 힘으로 돈을 버니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주변에선 나무라지 말고 칭찬해 주며 격려해 주라고 하는데, 이게 옆에서 항상 조언하긴 쉽지 내 자녀일이면 속 터지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나온 것처럼, 서태지네 집 화장실 변기를 떼다 주는 남자친구는 없어도 같이 슬퍼해주고 추모공간에 같이 가줄 아빠는 돼줄 수 있다. 무뚝뚝하게 아빠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이제 고등학생인 딸애도 아빠랑 같이 연예인 덕질하러 가고 싶진 않을 테니, 서로의 마음확인과 그 간격을 이어나가는 게 필요한 듯하다. 그래도 우리 딸이 2주 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먼저 말도 걸고 눈도 마주쳐주니 다행이다. 딸아이의 건강함이 감사하고 즐거워함에 행복하다. 베르테르의 효과라고 극단적인 선택을 따라 하거나 깊은 우울증에 빠질까 봐 온 식구들이 걱정이 많았다. 주변에 자기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을 딸아이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언가 깊이 좋아하고 자기 꿈을 향해 공부하거나 돈을 버는 등 노력과 열정을 다하는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면 그걸로 된 게다. 


뭐 시험이랑 연예인이 대수랴. 금방 지나간다. 지금을 즐기며 건강한 마음과 상식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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