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어긋난 방향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실망한다. 그 실망이 쌓이고 쌓여 임계점을 넘어서면 마침내 불이 붙어서 자기혐오라는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신체적 능력부터 사회적 능력까지. 마음의 상태부터 세상을 대하는 자세까지. 소명을 찾고자 하는 열망부터 자아실현에 대한 의지까지. 뭐 하나 만족스러운 것이 없고 모두 다 부족해서 자신의 무능함에 질려 버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나오는 자신의 단점들을 마주하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숨이 턱 하고 막혀온다.
이런 자기혐오의 연쇄에 빠지면 일단은 그냥 죽은 듯이 두들겨 맞는다. 나의 무능함을 비추는 매서운 손바닥이 차례차례 나타날 때마다 왼쪽 뺨도 오른쪽 뺨도 기꺼이 내어준다. 그렇게 자신의 무능함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얻어맞다 보면 마침내 주춤주춤하다가 시커먼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 추락하는 내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의 충격이 두려워 벌벌 떤다. 하지만 막상 바닥에 떨어지면 의외로 하나도 아프지 않다. 고통 대신 한 가지 강한 의문이 떠오를 뿐이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이토록 무능한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하는 의문이다.
나쁜 머리로도 어떻게든 직업을 찾았고, 처참한 사회성으로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얇디얇은 유리 멘탈로도 정신을 떠받치고 있고, 깨지기 쉬운 마음이 산산조각 날 때마다 어떻게든 얼기설기 다시 이어 붙여서 자신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런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이 계속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런 무능한 나를 효율적으로 가동해서 삶을 운용해가는 솜씨는 틀림없이 유능해 보인다. 무능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비하면 꽤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특한 마음마저 든다.
이 의문에 답하고 나면 싸늘해진 사지에 다시 피가 돈다. 무능하고 부족하고 엉망진창인 것은 맞지만 그런 것에 비하면 꽤 잘 살아내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 몸과 마음에 기운을 불어 넣어 준다. 막 파도 같은 힘이 용솟음치고 기경팔맥이 열리고 하는 수준은 아니고 미지근한 물이 찰박찰박한 높이로 채워지는 기분이다. 아주 하찮고 보잘것없다. 하지만 쓰러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일단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된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