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씁쓸한 삶이여

by 홍환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Komm, süßer Tod)’ 라는 유명한 성가곡이 있다. 불세출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서 이 성가곡과 제목만 똑같은 오리지널 송을 만들어 연출에 사용했었다. 나는 중학생 때 에반게리온을 통해서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라는 문구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어째서 죽음이 달콤하다는 건지. 그리고 왜 빨리 오라고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단지 제목이 굉장히 그럴듯하고 멋져 보여서 연습장 여기저기에 써두곤 하였다.


20대가 되자마자 나는 세상의 쓴 맛을 진하게 맛봤다.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쳐봐도 현상유지 조차 버겁고 오히려 점점 가라앉은 듯한 삶을 버티기가 너무 힘겨웠다. 만신창이가 되어 반지하 원룸에 돌아와 기절하듯 털썩 쓰러진 어느날. 나도 모르게 지금 죽으면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문득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어째서 죽음이 달콤하다는 것인지. 어째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20대를 버티고 살아남아 무사히 중년이 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죽음은 달콤해 보인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뒤에는 생략된 말이 있다. ‘그래도 죽는건 역시 싫으니 가급적이면 오지마라.’ 이다.


그 동안 나는 삶에 대한 희망이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주저없이 삶을 선택해왔다. 사실은 희망이나 가능성이 안 보일 때도 삶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정말로 죽는 건 싫기 때문이다. 맛있는 것도 더 많이 먹어 보고 싶고, 좋은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 예쁘게 빚어지진 않았지만 애써서 다듬어온 삶이 이렇게 갑자기 조기종영처럼 끝나버리는 것도 싫다. 그리고 일찍 죽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테니 여러모로 민폐다. 살다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그 모든 가능성의 결과를 어떻게든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삶은 대체적으로 씁쓸하기 때문에 죽음이 더 달콤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낼름 주워 먹고 싶진 않다. 벼랑 끝까지 몰려 마음이 산산조각 나 먹어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최후의 최후까지 버텨볼 생각이다. 언제나 항상 달콤한 죽음 보다 씁쓸한 삶을 핥을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다.


힘겨운 일이 닥칠 때 마다 사람들은 종종 죽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정말로 즉시 달콤한 죽음을 원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 말은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는 않다’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어떻게 봐도 이율배반적인 표현이지만 죽고 싶다를 이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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