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 중반까지 프리랜서로 살며 생계를 꾸렸다. 혼자 일하는 특성상 타인과의 만남을 극도로 제한하며 살았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취직을 하게 되면서 갑자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타인과 함께 보내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안그래도 인간관계에 서툴었던 나는 기본적으로 스트레스의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회사라는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예민한 감정들이 오갈 수 밖에 없는 직장 동료들과의 협업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대부분의 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말의 주저도 없이 나를 상처 입혔다. 모욕적인 말을 너무도 쉽게 했고 나의 진심이나 정성은 봐주지 않았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 나를 이용해놓고 고마움이나 미안한 마음도 가지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렇게 다 자기 밖에 모르고 이기적일까 싶어 정신이 아찔해졌다. 매일매일이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나날이었다.
그 무렵 고민이 많아 사회생활 잘하는 법에 관련된 자기계발서를 엄청 많이 읽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다 무익한 내용들이라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딱 한 권만은 달랐다. 데일 카네기가 쓴 인간관계론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 서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자신과 관련된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라는 서술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는 순간 큰 깨달음이 들이 닥쳤다. 그 동안 내가 왜 그렇게 타인들을 이기적이라 생각하며 매번 상처 받아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타인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 결과에 나는 상처 받는다. 나 역시 자기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 결과는 당연히 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 역시 틀림없이 그들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 세상에서 자기자신이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라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아, 다들 나랑 똑같은 거구나.’ 하는 타인에 대한 동지 의식이 생기며 내가 맺는 사회적 관계나 의사소통 과정을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니 자신의 실력에 프라이드가 높고 상대방의 작업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사람의 이면에는 자신의 실력이 부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객관적인 근거라 해도 그것이 모욕감을 주는 것이라면 상대방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예전보다 더 조심하게 되고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상처받는 일도 줄어 들었다.
사람인 이상 자기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라는 대전제를 벗어나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 정도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할 수 있게 되는 것 만으로도 나를 둘러싼 세상이 많이 변한다. 이로운 방향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