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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잎 Aug 23. 2020

여름과 결혼식

내 결혼식은 남이 아니라 내가 정해

더운데 웬 결혼식이래?


결혼 소식을 전할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다. 청첩장을 잡고 있던 손의 맥박이 느껴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먼 친척에 해당하는 이는 원래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사람이라고 했다. 툭툭 털어버리려고 해도 머릿속에 갇혀 나가질 않았다.


자꾸 떠오르는 생각을 덮으려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청첩장을 주기 위해 그들이 있는 지역의 식당을 예약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수백 번 고민하며 그들을 만났다. 


기존 식단과 다른 고퀄리티의 음식, 비싼 가격에 놀라기도 했지만, 평소 감사한 이들이기에 아깝지 않았다. 매주 보던 친구도 있었고, 한 달, 두 달, 많게는 1년 이상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분들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들을 만나기 전 지나치게 대화거리에 몰두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우리의 연애 기간을 잘 아는 사람들이기에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줬다. 몇몇은 청첩장에 적은 코멘트를 보고 언제 이렇게 커서 결혼하냐며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고, 코멘트를 너희들 답게 썼다며 유쾌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청첩장 코멘트 중 일부


그들 덕분에 들떴고, 먼 친척에게 들었던 핀잔은 잊혔다. 굴러온 기억이 박힌 기억을 빼는 게 가능한 건가. 겨우 나쁜 말에서 탈출했을 때 다른 말이 날아왔다. 




왜 이렇게 일찍 결혼해?


스물여덟 살, 어렸을 때 어렴풋이 결혼에 관해 생각했을 때 떠오르던 나이. 그 시기에 맞춰 결혼해서 괜히 기분 좋았던 나. 그런데 사람들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다. “한창 커리어 쌓을 때 아니야?”, “결혼하면 여자 경력은 끝 이래”라고 말을 한다. 정말 걱정돼서 하는 말일까. 왜 커리어 안 쌓고, 일찍 결혼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스스로 명확한 답안지를 만들었다. 


나는 이미 1년 전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영역을 넓혔다.

그러니 커리어 쌓는 건
걱정이 안 된다.
 
할 수 있는 일을 넓혔으니
커리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법이라 생각한다.
 

방송 작가였던 나는 작년에 방송국을 벗어나 일반 회사로 이직했다. 막상 옮길 때 망설여졌지만, 방송 작가는 일당백을 소화할 정도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아이템 선정, 출연진 섭외, 콘텐츠 기획, 촬영 구성안, 현장 조율, 편집 구성안, 내레이션, 자막, 홍보자료 등 작가 손을 안 거치는 게 없는데,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또한 요즘 몇몇 회사들은 회사 내부 브랜딩 콘텐츠나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구성 작가를 뽑기도 한다. 나 역시 구성 작가를 뽑는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일반 회사에서 회사 브랜딩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삶에 ‘결혼’을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가려는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개척한다면 결혼해도 언제든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꼭 거창한 커리어를 쌓아야 할까?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스스로 변화가 생기고, 성장이 생겼다면 그것 역시 남는 장사, 훌륭한 커리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커리어가 되는 삶을 지향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참견들이 있었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결혼식을 진행했다. “결혼식 신부 머리는 반 묶음 하면 안 된다. 안 예쁘다. 후회할 거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반 묶음으로 결혼식을 해 사람들의 많은 칭찬을 받았다. 라푼젤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제 얼굴을 몰라 다행이다) "예물, 예단 안 하면 양가에서 서운해한다. 꼭 해야 해”라는 말도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결혼하고 싶었기에 과감히 생략했고, 양가 부모님도 오히려 부담을 더셨다. “여름 축가는 춤추면 안 돼. 화장 다 무너져”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신랑은 신해철의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축가를 했고, 하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여름 결혼식을 완벽하게 끝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내 결혼식은 남이 아니라 내가 정해’로 밀어붙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결혼식이었다. 또한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은 결혼식이었다. 만약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 생각을 따랐다면, 후회가 남는 결혼식이 됐을 거다. 


앞으로도 내 삶을 나의 생각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가며 살고 싶다.  


#결혼식 #청첩장 #결혼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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