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멍하게 발을 멈추는 순간이 있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사람과
닮은 사람을 만났을 때…
한 번은 그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해 쫓아가 본 적도 있다.
얼마 가지 않아 그가 살짝 돌아섰는데,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움은 특히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을 때 더 배가 된다.
나의 경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어린 손녀에게 참으로 다정했던 이들.
그들의 손길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끝은 대부분
미처 주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으로 끝난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아파트를 지키던 경비 아저씨.
180cm로 키가 정말 컸던 할아버지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 중에 단연 돋보였다.
명절 때도 일하시곤 했는데
매번 주차할 곳을
알려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늘 하회탈처럼 웃으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절로 행복해지곤 했다.
할아버지는 언젠가 나에게
책 꾸러미를 내밀었다.
먼지가 뒤덮인 고서였고,
모든 본문이 한문으로 되어 있었다.
책을 좋아한다던 손녀를 위해
할아버지가 아끼던 책을
기꺼이 건네 주신 거다.
나는 그 책을 받고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 저 한문 몰라요.
안 읽을래요’라고 했었다.
엄마도 한술 더 떠서
‘요즘 이런 책을 누가 봐요?’라고 얘기했다.
할아버지는 약간 당황해하며
고서를 원래 두시던 곳에 두었다.
나는 받지 않은 고서를 빤히 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생애 첫 이별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할아버지가 선물한 책을 받았으면
어땠을까’였다.
지금도 할아버지 기일이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를 때면
먼지 쌓인 고서가
내 눈 앞에 놓여있는 기분이 든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할머니는
시간이 갈수록 몸이 약해지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
할머니가 계단을 내려갈 때나 올라갈 때
지팡이가 되어드렸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한 발짝씩 발을 떼곤 했다.
할머니 손의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 이모는 옆에서
‘철들었네. 할머니 손도 잡아 드리고’하면서
기분 좋아하셨다.
거동이 더 불편해지셨을 땐
거의 집에서 누워 계셨다.
앙상한 다리와 팔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파지곤 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한 이모에게 요리 비법을 많이 알려주셨다.
그래서 이모는 할머니가 즐겨하시던
요리를 가끔 해주곤 한다.
그 요리를 먹을 때마다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가 집에 누워 계실 때
더 많이 찾아뵐걸이라는 후회와 함께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걸 하는
후회도 가끔 밀려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리워질 때면,
나는 잘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내가 미처 다 주지 못한 사랑이 아쉽고, 슬프다.
이제 내가 속한 세계에 없으니,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다만,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내가 지금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언젠가 만나는 날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