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춘, 스무살에게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 시기를 버텨준 나에게.

by 김영진

고3 수능을 거쳐 원하지 않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주변에서는 재수를 권유했지만, 다시 공부할 힘이 나지 않았다. 고3 내내 원하는 전공과 대학교는 없었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일진이라고 불리던 아이들을 대학교 입학식 날 마주쳤고, 그때부터 열등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에게는 대학교 이름을 더더욱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물었고, 심지어 어떤 친구는 화를 냈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단 한 명의 친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스무 살, 교내에서 과 혹은 동아리 생활의 꽃이라 불리는 나이. 하지만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같은 과 친구들과는 더욱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수업이 있는 아침에는 무조건 도서관으로 향했고, 공강 때도 도서관에만 있었다. 도서관은 내 유일한 도피처였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토익 공부에만 몰두했고, 외로움을 숨겼다. 수업이 끝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혹시나 버스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마주칠까 조마조마했다.


일 년 정도 숨죽여 지냈고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편입 공부를 시작했다. 학점 관리를 위해 매 학기 4.0~4.5를 목표로 공부했다. 매번 3등 안에는 들었지만 1등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1등을 못 한다고?‘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왜?‘


이후 편입에 성공하며 같은 지역의 다른 대학교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편입 전 대학교에 갔던 날, 조금은 친했던 친구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을 했다. 편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만심이 넘쳐났고, 하루빨리 열등감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편입 후 인생이 탄탄대로일 줄 알았으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받을 줄 알았기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깊었다. 특히 부모님과 떨어진 기숙사 생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적응하기 어려웠다. 곧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기숙사에서 매번 잠만 잤다. 그리고 그때쯤 동아리 모집 글을 보았다. 단지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음악 동아리였는데 학교에서 역사가 꽤 깊은 곳이었다. 동아리방에서 자고, 먹고, 놀았다. 편입 후 학점은 편입 전 학점에서 반 토막이 되었다.


같은 과 동기는 없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교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HJ뿐이었다. 그녀는 나처럼 교내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고, 심지어 생일이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주 만나며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졸업이 다가왔다. 졸업할 때쯤 되니 자격증이 필요했다. 졸업 요건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라 떨어지면 졸업을 유예해야 한다고 했다. 다섯 과목의 평균이 60점 이상이어야 하는데, 운이 좋게도 62점에 합격했다. 다행히 졸업장은 받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대학 생활이 찬란한 청춘의 한 장면일지 모르지만, 나의 스무살은 외로움과 불안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을 숨기며 도망치기도 했고, 자격지심에 휘둘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외로움과 마주하는 법을 배웠고, 나를 미워하기보다 이해하려는 용기를 조금씩 얻게 되었다. 그리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나와 함께 해준 HJ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외로웠기에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진심을 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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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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