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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11. 2019

눈물의 축사

 예상보다 일찍 조짐이 왔다.

장조카가 결혼식을 주례 없이 한다고 했을 때 잘 했다고 이야기했다. 주례사 대신 축사를 양가 가족 중에서 하기로 했는데 신부 댁에서 사양하여 우리 가족이 하게 되었다. 서열로 따지면 둘째 형님이 해야 하나 도저히 귀국할 형편이 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내가 맡기로 하였다. 참석치 못하는 둘째 형이 신랑과 신부에게 주는 편지를 보내주어 초고로 사용하기로 했다. 지난 삼십 년을 돌아보며 덤덤히 A4 용지 두매 분량의 축사를 완성하였다. 양가와 하객 앞에서 읽어야 할 내용이어서 집사람에게 맥락을 손질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역시 듣는 사람의 입장에 감정을 이입하여 작성하기에 나는 한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다. 신부와 신부댁에는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위주로 그리고 신랑에게는 당부의 말을 넣어 교정을 보았다. 결혼식 당일 신부와 신부의 엄마가 어떤 감정의 상태일지 아마 난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밤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하여 5개월 만에 장인어른을 뵈었다. 식구들과 함께 오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했다. 그런 소리 말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신다. 여든 노인네가 그동안 함께 살다가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되었으니 그 외로움이 오죽할까. England에선 외로움 담당하는 부처가 신설된다고 하는데.. 시골서 어머니 올라오셔서 평촌 둘째 형님댁에 계신다는데 결국 전화만 드리고 오늘 밤은 장인어른과 함께 있기로 하였다. 이럴 때 참 난감하다.     


아침 일찍 서둘러 장인어른과 함께 식사하고 평촌으로 가서 어머니와 둘째 형수님 함께 모시고 식장으로 향하였다. 신부의 어머니는 이미 눈가가 붉어져 있다. 바깥사돈어른 될 분께 인사를 하려 찾았는데 뵈질 않는다. 한참을 찾다가 꽃으로 장식한 식장 한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먼 곳을 보고 계신다. 치우게 되어 시원하다고 하시지만 무남독녀 외동을 보내는 자리가 시원할 리가 있겠는가! 


신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긴장하지 말고’ 두 마디 했는데 소리가 떨린다. 잠시 숨 한번 쉬고 ‘편안하게 하길 바래요’ 더 이상 말하지 못하였다. 신부에게 인사를 하는데 왜 내가 가슴이 뛰고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가. 나는 오늘 무사히 축사를 마칠 수 있을까? 이렇게 오늘 식장이 어찌 될지 조짐이 왔다.


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하는 결혼 서약을 듣고 축사를 하러 단상에 올랐다. “신랑이 태어난 해가 1988년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였는데 상계동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오늘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베트남 법인장으로 있는 둘째 형님과 같이 저는 큰 형님과 형수님 신세를 많이 지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시절이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그렇게들 살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큰 형수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축사 첫머리를 하며 벌써 목이 떨리고 눈물이 어른거린다. 흰 장갑 끼고 있어 다행이다. 눈물을 닦으며 읽어 갔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향과 도리에 대해 가르침을 주신 저의 큰 형님이 이 세상을 떠나신지도 벌써 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다면 하실 말씀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이 축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도저히 더 읽지 못하겠다. 신랑 신부도 친척들과 하객들도 식장에 비쳐 든 오후 햇살을 타고 공유한 감정이 넘실거린다. 


“결혼이란 한 배를 타고 먼 여행을 함께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먼 항해를 같이 하려면 함께 가는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신랑과 신부의 안목을 신뢰합니다. 한눈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서로는 서로에게 잘 맞는 배필을 찾았습니다. 저는 신부를 지난여름에 한번 보았습니다. 시골에 계신 저의 어머니 즉 신랑의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을 때 마침 저희 가족이 함께 있어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부는 시골을 한 번 더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시어머니 될 저의 큰 형수님 생일을 축하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때도 할머니를 찾아뵙고 인사드렸다고 합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신랑도 처가라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으니 이와 같이하기를 당부합니다.” 


당부의 말을 전하면서 좀 진정이 되었다. “인생이라는 항로를 잘 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항해는 같은 방향을 보고 가는 것입니다. 방향을 설정하거나 변경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은 충분한 대화와 공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화와 이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두 번째는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역할은 균형 있게 잘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건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삶의 근본입니다.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음식 준비, 설거지, 청소 등의 역할에 대해서는 두 분이 잘 상의하여 결정하기 바랍니다. 저는 요즘 파견으로 파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은발의 노부부가 팔짱을 끼고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흐뭇해지고 웃음이 번집니다. 저희 부부도 장을 보러 가거나 산책을 나갈 때 이와 같이 따라 하려고 합니다. 일상의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이 됩니다. 손잡고 팔짱 끼고 다니는 일상을 만들기 바랍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그리고 오늘 예식이 있는 날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신부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조카며느리를 곱게 키워 오늘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사돈어른 내외분께 진심을 담아 말씀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축사가 끝나고 신랑과 신부는 각자 작성해온 편지를 낭독하였다. 신부의 편지는 사회자가 대신 읽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사회자가 목이 메어 두어 번 중단하였다. 신랑이 가족들을 열거하며 읽어가는 편지 중간중간 신부가 신랑의 눈매를 훔쳐 닦아준다. 맹추위가 잠시 주춤한 주말 한겨울 따스한 햇살이 비쳐 든 식장에서의 예식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식이 끝나고 폐백실에서 신랑의 외할머니 그러니 큰형수의 어머니 되는 안사돈어른을 오랜만에 뵈었다. 내 손을 잡고 한참이나 가만히 계신다. 지난 15년의 시간이 그렇게 잠시 흘러갔다. 


2018년 1월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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