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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a Oct 27. 2024

이중인격이냥

이따금씩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고양이들이 있다. 

나는 캣맘/캣대디 분들처럼 주기적으로 밥과 물을 가져다 두는 게 아니라 그날그날 마주치면 간식을 까주는 정도라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시는 분들과 친분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내가 붙여준 이름은 비공식적인 닉네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고양이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의 이름이 더 '공식'에 가깝겠다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주민등록증이 따로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왠지 이 친구와 더 친해진 기분이 들어서 기뻤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그 옆 동네에 커다란 공원이 있어서 산책을 하거나, 사진을 찍으러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월급루팡이란 이런 걸까) 어느 겨울밤, 눈이 샤라락 내려서 서울의 경치가, 특히 그 공원의 모습이 유독 예뻤다. 나와 같은 동네에서 다른 회사를 다니던 친한 동생과 퇴근하고 출사를 갔다. (둘 다 풍경 사진을 잘 찍는다.) 입김을 호호 불며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보이는 눈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인생살이에 대한 애환(?) 등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산책이 길어지면서 점점 공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공용화장실 앞에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이쯤이면 예상했을 것이다. 맞다. 엄청 뚱뚱하고 복실한 고양이가 화장실 입구에 차분히 앉아 있었다. 뭐야, 눈의 요정인가? 길에 살고 있지만 이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고등어냥이. 마침 내 가방에는 츄르가 몇 개 있었다. 동생에게 츄르 한 번 줘보라고 걔 손에 봉지를 쥐여줬다.


경계도 안 하고 잘 받아먹는 뚱쭝한(?) 고양이.


동생이 츄르를 주는 동안, 나는 열심히 이 모습을 찍었다. 고등어냥이는 이미 내가 츄르를 꺼내 들었을 때부터 자기를 위한 거란 것을 알아보고 우리를 향해 다가온 상태였다.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탄 것인지, 경계심이라고는 1도 없었다. 간식을 끊임없이 잘 받아먹었다. 퇴근하고 난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입김이 느껴져...! 오늘 제대로 계 탔다."

동생은 조그마한 입에서 푸쉬익 나오는 온기에 제대로 감동한 표정이었다.

보자마자 이 짤이 떠오름.

 둘의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이게 퇴근 후의 힐링이지.


츄르는 금방 떨어졌다. 고등어냥이는 주어진 간식을 다 먹었다는 것을 칼같이 엉덩이를 홱! 돌렸다. 그러더니 화장실 문쪽으로 가서 풀썩 앉아 식빵을 구웠다. 12월 밤의 한기보다 더 서늘한 쿨향기였다. 우리도 할 일이 끝났으니 일어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스타그램에 고등어냥이가 츄르를 쭙쭙 먹는 영상을 올렸다. 고양이는 어느 계절이나 사랑이니까 영상 반응 또한 예상한 대로 뜨거웠다. 업로드한 지 한 3시간 지났나, 누군가 영상에 남긴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는 제가 매일 챙겨주는데요! 이름은 이중이입니다~
먹을 것을 주기 전과 후가 너무 달라서...이중이..^^"

댓글을 자세히 읽고는 빵 터졌다. 간식이 떨어지자마자 쿨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이중이의 행동이 이제 이해됐다. 댓글 남겨주신 분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해 보니 근처에 사시면서 공원의 여러 아이들을 아침저녁으로 챙겨주시는 듯했다. 알고 보니 아까 츄르를 준 고양이는 워낙 오랫동안 공원에서 살고 있었고, 애교가 많아서 꽤나 유명한 고양이였다. 그 공원의 마스코트랄까. 그니까 이중이의 입김을 맞지 않은 나도 제대로 계 탄 날이었다. 캣맘/캣대디들이 직접 지은 이름을 알고 나니까 이 고양이와 더 친해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퇴사를 하고도 그 공원에 종종 갔다. 혼자 갈 때도 있었고, 친구와 가는 경우도 있었다. 공원을 갈 때마다 이중이라는 고양이를 소개해주겠다며 같이 아이를 찾아 나섰다. 이중이는 우리가 처음 만난 화장실 건물 쪽에 주로 있어서 비교적 마주치기 쉬웠다. 한 10번 중에 8번 성공하는 정도?


낮에 찍은 이중이. 이날도 츄르를 다 먹자마자 휭 뒤돌아서서 자기 갈 길을 갔다.


이중이는 칼 같았다. 심지어 자기 위 크기를 아는 모양인지, 이미 다른 사람한테서 간식을 얻고 배부르면 내가 내미는 츄르를 먹지 않았다. 그러면 한 30분 정도 이따가 다시 다가가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달려왔다. 그리고 간식을 다 먹고 나면 항상 이중인격(?)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한결같은 성격을 다시 보고 싶어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공원을 찾아갔다. 퇴사하고도 우울했지만, 이 친구를 보러 가는 발걸음은 늘 나를 우울에서 잠시 빠져나오게 해 줬다.



지금도 이중이는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나도 그의 입김을 느끼면서 츄르를 짜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겨울에도 이중이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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