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근길을 소소하게 즐겁게 해 준 친구
아직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내게 출근길 루틴이 하나 있었다. 곳곳에 숨어 있는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것. 사무실이 위치한 동네에는 고양이들이 은근히 많아서 잠시 바람 쐬러 나가거나 밖을 돌아다닐 때 손쉽게 1 키티를 하곤 했다. 사람이 항시 북적대는 동네치고는 고양이들이 살 만했던 곳이었던 모양이다.
사무실 가는 길에는 작은 아파트 단지와, 잔디가 살짝 깔려 있는 공터가 있었다. 공터는 암묵적인 흡연장소였다. 비흡연자인 나는 담배 연기를 피해 공터를 빠르게 지나가곤 했다.
어느 평범한 겨울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서둘러 출근 중이었다. 공터를 지나가는데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싹 드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나) 검은색 털이 온몸을 거의 다 덮는 턱시도냥이였다. 올리브색 눈으로 날 그윽하게 쳐다보는 고양이와 몇 초 동안 눈싸움을 했다. 한 5초 지났나, 나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가방을 뒤져서 츄르를 꺼냈다. (그날은 닭가슴살이 다 떨어졌다.)
츄르 봉지를 바시락바시락 대며 고양이를 불렀다. 이렇게 했을 때 (주로 사람들의 돌봄을 받는) 몇몇 냥이는 간식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봉지를 꺼내자 눈이 살짝 커진 고양이는 내쪽으로 조심스럽게 기어 왔다.
길고양이에게 츄르를 줄 때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깡(?)이 있는 고양이에게는 손에 쥔 간식을 짜주며 직접 먹인다. 반면 경계가 좀 심한 고양이를 만날 경우 바닥이나 나뭇잎 등을 그릇 삼아 츄르를 짜주고 고양이가 먹기를 기다린다. 이때 츄르를 거부하는 고양이도 있고, 먹다 마는 애들도 있기 때문에 뒤처리를 생각해야 한다. 청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츄르를 조금씩 짜준다.
이 턱시도냥이도 후자의 방식으로 츄르를 짜줬다. 츄르에 이끌려 내 코앞까지 왔지만 간식을 절대로 받아먹지 않더라. 츄르의 1/3 정도를 짜고 거리를 유지했다. 고양이는 순식간에 간식을 해치웠다. 다시 츄르를 짜주기 위해 다가갔다. 고양이는 별안간 내게 냥펀치를 날렸다. '빨리빨리 간식 안 내놓냐?'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손에 할퀸 자국이 남았다.
발톱까지 세워서 츄르 봉지를 향해 돌진하던 고양이의 모습을 담았다. 그의 다급한 손짓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알았어, 알았어 이씨. 기다려봐."
남은 츄르를 잔뜩 짜주고 나서야 고양이가 냥펀치를 멈추고 다시 식사를 했다. 싹수가 노란 녀석 같으니. 그래도 간식이 입에 잘 맞는 것 같아 안도를 했다. 고양이가 츄르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회사는 이미 지각이었다.
턱시도냥이는 내가 퇴사를 하는 날까지 내 앞에 자주 나타났다. 가면을 쓴 듯한 얼굴의 무늬가 인상적이라 그를 '배트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배트맨은 한결같이 그윽한 눈으로 나를 지켜봤고 간식을 줄 때마다 냥펀치를 날렸다. 초심을 잃지 않는 싸가지 고양이였다. 나도 초심을 잃지 않고 매번 맞으면서 간식을 그 앞에 대령했다. 배트맨 덕분에 손에 상처가 늘어났지만 남은 몇 달의 출근길이 즐거워졌다.
퇴사 후에는 배트맨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래도 회사 동료들이 가끔씩 내게 배트맨 사진을 보내며,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며 소식을 업데이트해 줬다. 배트맨과 쌓은 추억을 떠올리며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그림은 내 고양이 인스타 계정의 프로필 사진이 되었다.
배트맨을 보지 못한 지 1년 반이 넘었지만, 그의 깡과 싸가지로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언젠가 배트맨과 또 마주하게 되면 그동안 못다 준 간식을 양껏 주기 위해 나는 외출 때마다 츄르와 닭가슴살을 챙기고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