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계속 외출하게 홀린 길요정들
산책은 계속되었다.
나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우울을 털어내기 위해서 시작한 산책이 고양이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으로 변하면서 산책에 대한 즐거움이 커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매일 오전 7시쯤 눈을 뜨게 되면서 1분 동안 고민을 했다. '나가지 말까...?' 그러다가도 고양이들이 닭가슴살을 찹찹 뜯어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아침 산책이 지속 가능하도록 다가온 산책 요정들을 만난 게 아닐까.
나의 하루 루틴은 대충 이렇게 자리 잡았다. 집을 나서서 턱시도냥이와 치즈냥이가 머물고 있는 공원으로 빠르게 걷는다. 가면 한 95% 이상의 확률로 턱시도냥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건 도끼병이 아니다.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 고양이집 근처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고양이가 나를 보면 꼬리를 세우고 후다닥 달려온다. 이 모습을 몇 차례 확인하며 내가 고양이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치즈냥이와는 여전히 어색해서 얼굴을 보게 되더라도 적정 거리에서 서로 눈치 본다. 나는 두 고양이가 먹을 수 있도록 닭가슴살을 꺼내고 잘라서 밥통에 넣어준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 쭈그리고 있다가, 산책을 재개하기 위해 일어난다. 그러면 턱시도냥이가 나를 배웅해 준다. 다음 날 내가 또 올 것이라는 걸 저도 알고 있다는 듯.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느라 우물쭈물하다가도 내일의 나를 기다리는 턱시도냥이의 표정을 보면 안심하고 뒤돌아설 수 있게 된다. 공원을 나오고 나서는 동네를 크게 빙 돌아서 산책을 마친다.
하루는 공원에 도착했는데 턱시도냥이도, 치즈냥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날들도 가끔 있었다. 쟤네도 나름 사정이 있었겠지. 고양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을 걸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리번거렸다. 그때 웬 검은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조심조심 다가가더니 덩어리는 눈을 깜빡깜빡하며 나를 주시했다. 역시. 검은 덩이도 고양이였다.
턱시도였다. 것도 미니 사이즈. 처음 본 턱시도냥이와 치즈냥이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것이 성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눈 한쪽이 조금 불편한 건지 눈을 짝짝이로 떴다. 이 친구는 그리 살가운 타입은 아니었다. 나를 슬쩍 노려보며 언제든 도망갈 태세로 발을 들고 있었다.
"안녕?"
나는 미니 턱시도를 향해 '난 당신을 해칠 생각 없습니다'를 열심히 설파했다. 난 그저 간식 주러 온 산타야! 나의 존재를 설득(?) 하기 위해서 미니 턱시도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닭가슴살을 까주고 후다닥 멀어졌다. 멀리서 미니 턱시도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 친구는 잠시 망설이다가, 나를 향해 곁눈질을 하면서 간식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닭가슴살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원래 보던 아이들은 보지 못했지만 새로운 고양이 덕에 오늘도 1일 1 키티 성공이었다.
우리 동네는 고양이가 흔히 보이지는 않아서 그동안 고양이가 없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고양이를 잘 유기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고양이가 살아남기에 혹독한 곳이라 다들 떠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숲 대신 나무의 결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기분으로 동네를 걷기 시작하면서 숨어 있던 세모귀를 거의 매일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에 한 일들을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느라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던 우울증 환자는 고양이들과 놀 때만큼은 현재의 감각; 고양이를 발견한 나의 기쁨, 내가 내민 간식을 먹었을 때의 뿌듯함, 그리고 퐁실퐁실한 외모로부터 오는 사랑스러움을 맘껏 감각했다.
진정으로 이 존재들은 나의 산책을 도우러 온 요정들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