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치열한 신경전
매일 산책을 나가겠다던 나의 다짐과 달리, 산책절을 맞이한 그 화요일이 지나고 그 주에 계속 일정이 겹쳐서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토요일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아침 바람을 다시 쐬러 나갈 수 있었다. 닭가슴살을 두둑이 챙기고 현관문을 나섰다.
힘찬 발걸음으로 턱시도냥이를 만났던 공원에 들어섰다. 기대와 설렘으로 심장이 살짝 아파왔다. 오늘도 있을까? 나는 공원 구석구석을 빠르게 스캔하며 걸음 속도를 늦췄다. 그때였다.
주황색 무언가가 샤샥 지나갔다. 낙엽이 휘날렸나. 눈을 비비고 다시 살폈다. 이내 움직임의 정체를 알게 됐다.
역시나 고양이였다! 첫날 봤던 턱시도 냥이와 비슷한 덩치에, 여유로운 표정이 일품이었던 치즈 고양이. 나는 간식 봉지를 꺼내 들면서 살금살금 고양이를 향해 다가갔다. 주황색 고양이는 슬금슬금 도망갔다. 내 눈치를 조심히 살피며, 적당한 거리로.
고양이는 한 풀숲에서 종종걸음을 멈췄다. 그곳에는 고양이집과 밥통이 있었다. 누군가가 이 구역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고 있었구나.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주는 닭가슴살만으로는 배가 다 차지 않을 텐데, 다행이었다. 비어있는 밥그릇에 닭가슴살 두 개를 뜯어서 넣어줬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나의 행동을 지켜보던 고양이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공원 출구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애옹-애옹-
풀숲을 향해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냈다. 쟤가 뭘 하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그를 지켜봤다.
파다닥-
첫날 봤던 턱시도 고양이였다! 턱시도 냥이는 푸드덕 대며 산 쪽에서 튀어나왔다. 치즈냥이랑 아주 친근한 사이인 모양이었다. 둘은 얼굴을 마주한 채 잠시 멈추다가, 밥그릇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오늘도 턱시도냥이는 꼬리를 바짝 세우며 내게 다가왔다. 야옹야옹 거리며 내 주변을 계속 빙빙 돌았다.
신이 났다. 하루에 1 키티만 성공하자는 게 버캣리스트의 목표인데 아침부터 2 키티를 하고, 거기다가 한 냥이는 나를 알아보다니! 닭가슴살을 많이 챙겨 오길 잘했다. 나는 연신 애옹거리며 내게 몸을 비비는 턱시도냥이에게 닭가슴살이 있는 밥그릇으로 인도했다. 아무래도 치즈냥이가 턱시도냥이와 간식을 같이 먹으려고 부른 게 틀림없었다. 저 조그마한 머리로 친구를 부르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에 심장이 아파왔다.
그때였다.
턱시도냥이는 갑자기 경계 태세를 갖추며 털을 곤두세웠다. 그러고는 산 쪽으로 돌진했다. 턱시도냥이가 달려간 방향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또 낙엽색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외딴 고양이 얼굴이 보였다. 닭가슴살 냄새를 맡고 나타난 것 같았다.
애애애---무와아아앙---
턱시도냥이는 꼬리를 잔뜩 부푼 채 침입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세 번째 고양이는 잔뜩 쭈그러든 표정으로 턱시도냥이를 겨우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기세는 턱시도냥이 쪽이 우세했다. 문득 치즈냥이의 행방이 궁금해져 두리번거렸다. 치즈냥이는 나와도 다른 두 고양이와도 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식빵을 굽고 있었다. 놀란 기색도 없이 아침 싸움을 구경하던 치즈냥이. 가자미눈을 하며 버티는 침입 고양이, 그리고 홀로 심각해져서 짜증을 잔뜩 부리는 턱시도냥이. 이 상황이 닭가슴살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어이가 없어서 나는 영상을 찍었다.
이 닭가슴살 브랜드를 추천해 준 고양이 집사인 친구 왈, 자기는 이 닭가슴살을 길냥이들에게 쉽게 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고양이들이 서로 닭가슴살 먹겠다고 종종 싸움이 난단다. 그만큼 기호성이 뛰어난 간식이었던 모양이다. 5분이 지나도록 턱시도냥이와 가자미눈냥이의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다. 공원 바로 옆에 아파트 단지가 있던 터라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고양이가 목청 높여 싸우는 소리를 듣고 좋아할 주민은 없을 테니. 괜히 내 오지랖으로 소음 공해를 일으킨 것 같아 얼굴도 모르는 주민들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고양이들을 말리지도 못하고 방황하며 자리를 뱅뱅 돌았다.
잠시 후에 가자미눈냥이가 백기를 들고 도망쳤다. 턱시도냥이는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다시 도도도 내쪽으로 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간식을 해치웠다. 황당해서 허! 헛웃음을 쳤다. 치즈냥이는 여전히 거리를 지키며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친구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뭘 먹지 않으려나보다. 나는 닭가슴살 한 봉지를 더 뜯어 옆 그릇에 놓았다. 둘이 알아서 나눠 먹어라.
우당탕했던 산책을 마저 마치고, 찍어놨던 영상들을 돌려보며 다짐했다.
닭가슴살은 함부로 주지 않겠다고.
물론, 지킬 수 없는 약속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고양이들을 동반한 산책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