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 고양이 계정을 따로 팔 거야. 이름은 버캣리스트."
격주마다 참석하는 독서모임에서 토론을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 읽어온 책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SNS와 퍼스널 브랜딩 관련된 질문에 다 같이 답변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계정을 만든다면 어떤 주제와 콘텐츠로 기획할 예정인지?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들 머리를 싸매며 가상의 계정을 아주 열심히 짜고 있었다.
나는 고민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는 사진 계정이 있었고, 고양이를 좋아해서 이따금씩 길냥이를 마주치면 스토리에 열심히 올렸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공통 관심사로 친해진 인스타 지인들은 스토리에 열심히 답장하면서 말했다. "카일라 님의 고양이 계정이 시급합니다!" 새로 계정을 판다면 그 주제는 확실했다. 계정명만 이제 지으면 되었다.
불현듯 '버킷리스트' 단어가 내 뇌리를 스쳤다. 그래, 이것이었다. 하루 한 마리 이상의 고양이를 발견하는 나만의 소소한 버킷-아니 '버캣리스트'. 계정 테마와 이름을 말하자 독서모임 멤버들은 이름이 신박하다고 칭찬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버캣리스트 작명에 꽤나 흡족했던 나는 집에 가자마자 계정을 개설했다. 내 고양이 계정은 그렇게 시시하고(?) 갑작스럽게 탄생을 했다.
어렸을 때는 고양이를 무서워했고, 청소년으로 커갈 때는 고양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 그것도 대학원 들어갈 즈음이 되어서 갑자기 고양이의 매력에 빠졌다. 큰 계기는 없었다. 고양이와 동거한 적도 없었고, 갑자기 친해진 냥이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 그러나 어느새 그 세모 귀와 애옹하는 목소리, 뱃살인지 원시주머니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흐물흐물한 배에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묘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어서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고양이는 나의 최애 동물이 되었다.
고양이를 사모하기 시작한 비슷한 시기 즈음에 우울증을 처음 진단받았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코를 팽 푼다고 해소되는 병이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고양이가 내 우울증을 없애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길 가다 고양이를 마주하면 그날 기분이 상당히 산뜻해졌다. 음울한 현실 속에서 한줄기 햇살을 맞이하는 듯했다. 소소한 행복이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을 맞춘 고양이를 발견하는 순간들이었다.
약 2년 전, 보송보송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고양이를 사진으로 담는 유명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했다. 그는 경계심이 많은 길고양이들의 편안하고 장난기 어린 모습을 잘 담아냈다.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참여자 중 한 명이 질문을 했다.
"처음 보는 고양이들도 많을 텐데, 어떻게 하면 고양이들의 편안한 모습을 담을 수 있나요? 친해지는 비법이 있나요?"
작가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항상 가방에 츄르와 닭가슴살, 장난감 등을 가방에 챙기고 다녀요. 고양이와 마주치면 경계를 좀 낮출 수 있도록. 물론 너무 경계가 심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사진을 과감히 포기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길고양이들에게 츄르보다는 물과 닭가슴살을 줄 것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츄르는 고양이들에게 치킨과 같은 존재라 너무 많이 먹이면 좋지 않다면서. 나는 그날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았던 작가와 안면을 트고 고양이에 대해서 끝없이 수다를 떨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을 검색해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 않는다는 닭가슴살을 시켰다.
그 북토크 이후로 나는 가방에 항상 닭가슴살 다섯 조각 이상은 넣고 다닌다. 내 눈에 띈 고양이를 주린 배로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도 매일 챙겨나갔다.
우울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일상에서, 하루 한 마리의 길고양이를 만나고, 쓰다듬고, 간식까지 입에 넣어주면 기분이 그렇게 끝내줄 수가 없었다. 그날 하루 투두 리스트에서 한 개의 과제를 체크하는 듯 속이 후련했다. 나의 경우 우울증세가 심할 때는 씻지도 않고 집에 칩거하면서 썩어가는데,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내게 밖에 나갈 힘을 심어줬다.
버캣리스트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밖에 나갈 기력조차 없는 우울증 환자에게 하루 한 마리의 고양이를 발견하고, 간식을 주고 오는 하루하루의 버킷리스트. 집에만 있으면 고양이를 만날 확률이 0%지만 외출을 하는 순간 확률이 단 0.5%라도 높아지니까.
버캣리스트를 시작하며 다양한 묘연을 맺을 수 있었다. 이 묘연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으로만 남겼던 버캣리스트를 글로 옮겨 적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