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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Apr 02. 2020

사랑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이미지는 너무나 편협하여 나와 다른 타인 사이의 관계의 형태(우정, 연애 등)로 규정되거나, 혹은 제도의 형태(결혼, 가족)로 규정되거나,  나의 경계 안에 들어와 있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만을 지칭하는 단어에 불과했다.


하지만 요즘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며 생각했던 것이 한번 더 명확해지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셀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표면적으론 각기 다른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했지만,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정말 결정적인 원인은 공동체의 와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다. 


공동체의 와해가 왜 이러한 사회문제를 야기하는가에 대해서는 일차원적으로 생각할 수 있듯, 산업 기술의 변화로 생활양식과 사회구조가 변화되었고, 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모습의 관계망이 발전되어 연결되는 만큼 물리적으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 속 공동체 대한 관심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모습의 모든 관계망은 실재하지 않으며, 가시적이지 않으며,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항시 연결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지 않고 물리적인 시간을 함께 향유하지 않음으로 우리는 점차 공통분모를 잃어간다. 공통분모는 잃은 채 각자 물리적으로 구별된 공간에서 자신의 이익을 분모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일상생활 안에서 내리는 수많은 결정들 속  다수의 선을, 공통분모를 유념하는 마음을 흐릿해진다. 


이런 나와 관련 없는 것들을 일절 배제한 일련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세계시민교육 관련 수업을 듣는 날이었다. 세계시민교육의 목표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남의 문제가 아님을, 나의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 했다. 

수업을 듣는 내내  마음속에 들었던 생각은 '그래. 나는 남의 문제를 나의 문제라고 어느 정도 인식하고 생각해. 그에 따른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양식을 실제로 이행하기도 해. 그래서..?'


나는 사실 환경문제에, 난개발 문제, 제주 난민으로 비롯된 난민 이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절대빈곤을 겪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도, 나의 문제 같이 아프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임이 있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대안이 없는 공감은 사람을 피로하게 할지도 몰라." 


저 한 마디가, 언제나 묵직하게 나를 누른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누군가의 고통이 점점 더 선명하고 현장감 있게 매일 우리 식탁 앞으로 배달될수록, 우리는 그 자극적인 이미지로 인해 누적되는 피로감 때문에 점점 더 고통에 무뎌지며 오히려 그 사건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9.11 테러를 본 미국인들이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라고 대답하듯.  


그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찔렸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나 또한 우리 사회 속 여러 문제들을 접하면서, 거대하고 큰 세계 속 수도 없이 발생하는 문제들에 촉각을 곤두 세우며  마음이 무너질 듯 아파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과 저 멀리 그 현장에서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본질적으로 다르기에, 내가 느낄 수 있는 고통은 제한적이며 나의 고통으로 인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복되는 사건들을 보며  '왜 세계의 이런 모습들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걸까? 나 하나가 마음 아파한다 한들 이렇게 작은 행동 하나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 게 있을까?' 때론 사회적 문제의 무게에 압도되어 이런 무력감까지 느껴질 때도 있었다. 되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여 그 모든 것들을 고려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 것이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었고, 알기에 더 쉽게 눈에 띄는 사건들 때문에 느껴지는 막연한 부담감 때문에 차라리 무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들도 있었다. 어쩌면 벌써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둔감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강의와 읽고 있는 책들을 통해서 이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방법은 공동체 정신의 회복에 기여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규모도 성격도 다양한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적시에 제시하거나 매번 그 현장에서 도움을 주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 근원을 알 수 없는 부담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개인, 그리고 공동체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동체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을 바꿀 수 없지만, 사랑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를 사랑 없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사랑에서 비롯되는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나와 사랑 없는 나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느껴지는 부담감 또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내가 속한 어떠한 형태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 두 사랑은 범위가 달라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연속선 상에 있는 하나였다. 이번 기회에 사랑의 의미를 재정립하고자 사랑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제일 먼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사랑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5.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6.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사실 사랑이란 것이 몹시도 숭고하여 그 단어를 입에 담고 마음에 품고 살기가 버거웠던 적도 있었다. 다시 보니, 크고 거창하지 않아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도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얻었다. 나는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더 열심히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신 나간 선행과 엉뚱한 친절을 베풀며 내가 속한 공동체의 한 사람을, 한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고자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언제든지,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구에게나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언젠가는 어떤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그 한 사람이 한 공동체를, 그 한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길이 더 바른 길이라고 믿기에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더 많은 것을 사랑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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