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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Oct 22. 2019

퇴직인사

어느 백수 남편의 일기 (2)

어느 거대한 낯선 도시에

들어서게 되면

나는 낯선 방에서의 잠

낯선 곳에서의 식사를 사랑합니다


이름 모를 거리를 거닐며

스쳐가는 모르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을 사랑합니다


나는 즐겨

외로운 나그네이고자 합니다.


- 칼릴지브란 -




안녕하십니까,

인사팀 유정호 퇴직인사 올립니다.


설레는 나그네의 마음으로 회사에 발을 들이고 

수년의 시간이 꿈결같이 흘렀습니다. 

낯선 도시 같기만 했던, 

그래서 기대감과 두근거림으로 가득했던 이곳이 

이제는 제 방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연이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털어버리려 해도 털어낼 수 없고, 

당기려고 해도 당겨지지 않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거대한 조류같이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아쉬움이 참 많이 남습니다. 

어떤 분은 제 얼굴에서 웃음을 떠올리실 테지만, 

또 어떤 분은 씁쓸함을 남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갑작스럽지 않은 만남과 이별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짧은 인연에 깊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또 언젠가 인연이 닿아 

다시 뵐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신입으로 들어와 그간 실수도 많이 하고, 또 민폐도 많이 끼쳤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따듯하게 받아주셨던 선배님들과 후배님들께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마땅하지만, 

주어진 시간의 한계로 이렇게 메일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많이 부족했지만, 흠은 덮어주시고 예뻤던 기억만 남겨주시는 

아량을 베풀어주시길 바랍니다. 


언제고 생각이 나실 때면  

편안하게 연락을 주실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 곳에 머물었던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고 싶었기에 늘 주고받는 메일 말미에 

‘행복한 하루’가 되시라 전했습니다. 

진심을 담아 마지막 메일을 올립니다. 

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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