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 남편의 일기 (4)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것은 4개월 전, 10월의 가을이 짙어갈 무렵이었다.
“안녕하세요, 부동산입니다. 유정호 씨 전화가 맞나요?”
갑작스럽게 날아온 전화 한 통. 신혼집으로 잡은 전세 오피스텔이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는 이야기였다.
“구매자분이 같은 오피스텔의 5층에 월세로 사는 젊은 직장인이신데, 거주 목적으로 이번에 구매를 하셨어요. 아마도 재계약이 어려울 것 같아서 미리 연락드렸습니다.”
계약 기간이 반년 남짓 남아있는 시점에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같은 건물의 같은 평수 매물을 알아보니 어느새 전세 시세는 2천만 원이 올라있었다. 침체되어가는 부동산 시장 이야기는 천당 밑에 자리한 분당에게만은 다른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이 집, 재계약이 불가능하다고 해요.
주변 시세도 2천만 원 넘게 올랐어요.
“이 집, 재계약이 불가능하다고 해요. 주변 시세도 2천만 원 넘게 올랐어요.”
아니 남편 양반, 그게 무슨 개똥 같은 말이야? 2천만 원이 올랐다니? 재계약이 안된다니?라는 말을 표정으로 전하는 아내. 적어도 4년은 여기서 살면서 돈을 모으자고 하지 않았던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일이라지만, 재계약이 어려울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1억 6천, 아니, 이제는 1억 8천의 실평수 13평 남짓한 원룸 오피스텔. 널찍한 지하주차장과 잘 꾸며진 옥상 정원. 분당선 지하철 역에서 느긋한 걸음으로 1분 30초. 마트, 쇼핑몰, 영화관, 출퇴근 버스 정류장이 모두 걸어서 5분 이내의 거리에 있는 최상의 입지조건. 그것도 황금보다 귀하다는 전세매물. 오피스텔을 얻을 때 느꼈던 희열이 떠올랐다. 이보다 좋은 환경이 또 있을까.
그랬다. 누구나 부러워할 좋은 입지조건의 시설 좋은 오피스텔. 신혼부부와 혼자 사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눈여겨볼 거주지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나’가 아니었음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편리한 교통편과 화려한 문화공간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교통소음과 취객의 고함을 세금처럼 달고 있었다. 몇 번의 늦은 퇴근길에서 마주쳤던 취객의 추태와 시비는 20대 중반의 어린 아내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창문을 열면 눈 깜짝할 새 바닥에 쌓이는 분진과 콧속 가득한 미세먼지. 15년이 넘어 고장 나기 시작하는 붙박이 옵션 에어컨과 냉장고. 1년 반 동안, 아내와 나는 그렇게 조금씩 불만을 쌓아갔다. 이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억 8천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거기에 이사비용과 복비는 덤이다.
이사 가자
“이사 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 혼탁한 고담 시티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새로운 집주인과의 이야기는 순조로웠다. 월세가 아까워 오피스텔을 구입한 30대 중반의 미혼 직장인은 하루라도 빨리 “내 생애 첫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절약되는 월세 금액의 일부를 우리의 이사비용으로 지불하는 대신 하루라도 빨리 집을 비워주기로 했다.
새로운 장소를 찾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지금과는 정 반대되는 조건을 찾아다녔다. 조용하고, 공기가 좋고, 유동인구가 적은 곳. 그리고 마침내 찾은 경기도 변두리의 어느 산 중턱에 위치한 신축 빌라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였다.
비포장에 가까운 굽은 언덕길을 따라 200미터를 올라가면 나오는 외딴 건물. 뒷산에는 노루가 뛰어다니고 이름 모를 다양한 새들이 지저귀는 곳. 빌라 아래로 작은 공장 몇 채가 있고, 지평선 가까이 높은 아파트 단지와 이를 둘러싼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꼭대기 복층구조 빌라. 전세가는 13평 오피스텔과 같은데, 실평수는 2배가 넘게 늘어난 쾌적한 집. 모든 방에서 하늘이 보이고 거실 천장에 난 창으로 달님이 얼굴을 비추는 집.
늘 도시에서 생활했던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신선했고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아내에게는 추억이 묻어나는 환경이었다. 우리의 근교 전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4개월 후에는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장소에 따라 백수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