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답노트 02화

아랫집에 빌런이 산다

03.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빌런이었는지 모른다

by Kyle Lee
아랫집에 빌런이 산다.

아랫집에 빌런이 산다. 때는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밤.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에 낮동안 집안 가득 쌓인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우리 집은 맞바람이 잘 들어와서 통풍이 잘 되는 것 같아. 참 다행이에요. 그렇게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강아지가 고개를 들어 올리고 냄새를 찾듯 코를 몇 차례 킁, 킁, 하던 아내가 말했다.


“어디서 담배 냄새나지 않아요?”


혹시, 담배 폈어요? 하는 표정으로 아내가 나를 바라본다. 아니다. 만 3년 넘도록 금연을 이어오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는데. 그 숱한 위기들을 이겨내고 자신만만하게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노라, 앞으로도 피지 않겠노라 말할 수 있는데. 억울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본다. 나는 아니에요. 진짜 나는 아니에요.


갑작스러운 담배 냄새의 출처를 찾아 방충망을 열어젖히고 고개를 내밀었다. 드르륵. 탁. 갑작스러운 소리에 흠칫 놀란 아랫집 사람의 움직임이 급박하다. 방충망과 창문을 닫고 급하게 집 안으로 들어가던 담배를 든 손이 보였다. 내가 한 발 빨랐다. 범인은 아랫집이다.


범인은 아랫집이다.


거실부터 침실까지 담배 냄새가 가득 찼다.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도 집에 냄새가 밸까 싶어 조심스러웠는데. 담배를 끊은 이유도 비슷했다. 어떻게 해도 지워지지 않는 나의 담배냄새가 아내를 괴롭혔기 때문에. 잠자리에 누워 아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 아내가 말했다. 머리카락에 담배냄새가 배었어요.


“이제 연초는 끊고 아이코스만 피우는데. 그래도 냄새가 나요?”


나의 소극적인 항변에 아내가 말한다.


“응. 원래 피우던 담배만큼은 아니지만, 특유의 냄새가 있어요.”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나아요. 하고 아내가 말하지만, 희미하게 남은 냄새만큼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아내에게는 내가 누리는 흡연의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 될 것이기에.


그렇게 시작되었던 나의 금연이었다. 그랬었는데, 그렇게 지킨 우리의 보금자리에 타인이 남긴 흡연의 여운이 진하게 맴돌고 있는 이 상황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이 무더운 여름날에, 집안에서 담배라니. 아무리 귀찮기로서니, 다 함께 사는 아파트 집안에서 담배라니. 담배라니!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나 또한 비흡연자로 산 기간보다 흡연자로 산 기간이 더 길다. 그래서 흡연자의 고충에 대해서는 꽤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귀찮겠지. 담배를 피울 만한 외진 장소로 이동하는 것만도 최소 5분은 걸릴 것이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최소한의 외출복도 차려입어야겠지. 게다가 마스크까지 걸치고.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길에 쓴 마스크 내에서 담배 쩐 냄새가 맴돌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겠지. 뭐,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시작된 일탈은 점점 쉬워질 것이고, 그때마다 나를 포함한 이웃들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이대로 둘 수는 없지.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갑작스러운 테러를 당한 이 분노를 풀 수 있을까.


당장 아랫집에 찾아가 난동을 부릴 것 같은 기세로 옷을 갈아입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진정해요. 진정하고 일단 물 한 잔 마시고.


“저 사람이 우리한테 폐를 끼친 건 맞지만, 너무 흉악범 내몰듯이 그렇게 격하게 싸울 태세로 가지는 말아요.”


그 사람의 행동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낮추어보고, 마치 죽을죄를 지은 사람인 것처럼 대하지 말라는 아내의 말이었다. 그렇게 흥분해서 따지고 몰아붙이면, 상대방도 공격당했다 느끼고 흥분해서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으며,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문제를 감정싸움으로 만들어 더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면서.


차분히 화를 가라앉히고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오래전 나를 괴롭혔던 한 사건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의 빌런은 내 차지였다.


이 사건의 빌런은 나다.


한창 석사 논문을 쓰던 때였다. 제출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며칠 동안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기껏해야 두어 시간 쪽잠을 자는 게 전부였던 그때, 나의 체력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사건이 벌어진 날은 정말 기진맥진한 상황이었다. 도서관의 열람실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이 글자인지 지렁이인지 알 수도 없었다. 저 멀리 날아가버린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1시간가량이 지난 후였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몸을 일으키자, 눈앞에 낯선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있다.


“잠은 집에서 자세요.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심하네요. 남들에게 피해 주지 말고 잘 거면 집에서 자세요.”


순간, 얼굴로 온 몸의 피가 쏠리고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군대에서도 이보다 빠르진 않았을 거다. 빛의 속도로 짐을 싸서 그대로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복잡한 감정이 내 안을 채웠다. 수치스럽고 분했다. 반박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토대로 자리 잡은 내 얄팍한 자기 보호본능이었다.


20211212_03화_아랫집에 빌런이 산다.jpeg instagram : @maywithmayday


생각해보았다. 그때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빌런이었다. 나는 거기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메모를 붙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기에, 사실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너무 힘든 상황에 정말 난생처음 저지른 실수였다고 말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영원히 그 사람에게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코골이 빌런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영원히 그런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이 나를 무척 오랫동안 괴롭혔다.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에 정성스럽게 글을 써 내려갔다. 인사말과 함께 윗집의 누구라고 밝히며, 최대한 예의를 차려 가급적 외부에서 담배를 피워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 때 흡연자였던 사람으로서의 공감의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깨알같이 빼곡하게 적은 포스트잇을 아랫집 대문 앞에 붙였다.


설마, 아니야, 아니, 혹시, 에이, 그래도…


메시지를 붙인 것은 새벽 2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다. 잠자리에 들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랫집에서 화가 나서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며 얼굴 한 번 보자고 하지는 않을까. 오히려 감정이 상해 더 보란 듯이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워대지는 않을까. 살면서 경험해본 수많은 또라이들의 표상이 아랫집 대문과 겹쳐 지나갔다. 설마. 아니야. 아니, 혹시. 에이. 그래도….


다음 날, 그리고 다다음 날. 우려하던 것과는 달리 아랫집은 조용했다. 그 어떤 항변이나 분노도 없었고, 아주 조용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 깊고 푸른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 집은 거의 창문을 닫지 않고 지내고 있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느끼면서, 쾌적하고 맑은 공기를 매일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집안 가득 채우면서. 메모를 붙였던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집안에서 담배 냄새를 느낀 적이 없다.


그 이름 모를 빌런은 사실
그렇게 나쁜 빌런이 아니었던 듯하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아랫집의 그 이름 모를 빌런은 사실 그렇게 나쁜 빌런이 아니었던 듯하다. 마치 오래전 나도 모르게 뻗어서 우렁차게 코를 골았던 나처럼, 그 사람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게 되면 아주 밝게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쉽게 한 가지 행동으로 타인을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자주, 나는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재단한다. 도로 위에서, 공공장소에서, 일터에서, 나는 나 자신이 받기 싫어했던 그런 가벼운 평가를 아주 쉽게 남발한다.


가을 하늘이 깊다. 저만큼은 아니어도, 아주 조금이라도 저 깊이를 닮아보고 싶다. 불필요한 싸움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알고 보면,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을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세상에는 사실 그렇게 대단한 빌런이 많은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오늘도 도로에서 빌런을 마주했습니다. 도 닦는 기분으로 스스로 달래 봅니다. 이너 피스..."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저도 누군가에게는 빌런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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