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코로나가 휩쓴 모교 캠퍼스를 찾았다.
모교에 도착한 것은 막 점심시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끝날 줄 알았던 오전 미팅은 의외로 한 시간 만에 끝나버렸고, 다음 약속은 함께 대학원 생활을 했던 한 선배와의 만남이었다. 저녁 미팅 전까지 남은 시간을 때울 겸, 오랜만에 추억 이야기도 나눌 겸.
몇 년 만에 어느 동문의 결혼식장에서 마주쳤던 선배는 주름살 하나 늘지 않은 것 같았다. 뭐지. 인간 방부제인가. 축가를 부르기 위해 자리를 뜨는 선배에게 습관처럼 말했다. 조만간 커피 한 잔 해요,라고. 말이 씨가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모교 캠퍼스 근처에서 미팅이 잡혔다. 약속을 지킬 때가 된 것이다.
대학 교정은 변하지 않은 것 투성이었다.
여전히 대학에 남아있다는 선배처럼, 대학 교정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것 투성이었다. 민주화운동 시대에 지어진 낡은 회색 건물 사이로 거대한 나무들이 붉고 노란 낙엽을 바람에 실어 흘려보내고 있었다.
“어쩌지? 나는 회의 때문에 좀 걸릴 것 같은데.”
석사 시절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선배는 졸업 후 당당하게 모교에 자리를 잡았다. 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이건 내 길이 아닌 듯하다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버린 나와는 달랐다. 수화기 너머로 호쾌하게 웃는 선배는 그 시절과 변한 게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아마도 학생들에게 꽤 사랑받는 교수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10년을 머물렀던 곳이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익숙한 문과대 교수연구동 앞에 차를 대고 캠퍼스를 걷기 시작했다. 스물한 살부터 서른한 살 까지, 중간에 듬성듬성 유학이네 군대네 자격증 취득이네 하며 휴학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의 소속은 10년간 이곳이었다. 가족을 제외하고 나를 설명하는 소속 집단으로서는 여전히 가장 오랜 기간을 차지하는 곳.
커피 한 잔을 사서 눈에 띄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을바람이 선선하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어서인지 하늘은 일 년 간 세차를 하지 않은 오래된 흰색 아반떼 본넷 같은 색을 하고 있다. 짙은 햇살을 받으며 오랜 시간 도로 위를 허덕이며 달리던 아반떼는 어느 도심 외곽의 공영 주차장에 자리를 잡는다. 차를 나와 어딘가로 떠난 주인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햇살과 비바람을 맞던 차는 타이어 바람이 빠져 주저앉고, 지나던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깨지고 찌그러져간다. 시간이 흘러 거친 햇살과 먼지로 덮인 채 누렇게 변해가던 아반떼가 눈을 감으며 시원하게 달리던 고속도로를 떠올리자 본넷의 색이 하늘 위로 물든다. 그렇다. 지금 하늘은 딱 그런 누런 회색을 하고 있다. 어디선가 오래된 먼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코로나구나. 캠퍼스는 지나치게 고요했다.
문득 지금이 10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날짜를 세어보니 이제 막 중간고사가 끝날 시기다. 그래서일까? 캠퍼스는 지나치게 고요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고, 대체 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치매 노인 복지 어쩌고 하는 문구가 붙은 트럭이 느릿느릿 캠퍼스를 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배달 오토바이만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요란한 배기음이 남기고 간 자리에는 침묵하는 낙엽만 이리저리 흩어져갔다.
코로나구나. 생각했다. 눈에 들어오는 건물 입구마다 굵은 쇠사슬이 묶여있었다. 커다란 종이에 빨간 글씨로 적힌 출입 통제라는 글귀가 송곳처럼 두 눈을 찔렀다. 코로나가 터진 지 2년. 이곳의 일상은 이런 모습으로 변한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서도 행인이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적막한 아스팔트 도로 위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 관리인들의 기계적인 발걸음만 반복될 뿐이었다.
가방에 어제 읽다 만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책 한 권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자리를 옮겨 호숫가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살면서 만난 가장 못생긴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녀를 만났는지, 왜 그녀와 잠자리를 갖지 않았는지, 어떻게 그녀가 자신의 삶에서 멀어져 갔는지.
어떻게 그녀가 자신의 삶에서 멀어져 갔는지.
내가 처음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만 해도 인문학부, 경제학부처럼 학부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학교가 많았다. 1년간 학부 내의 다양한 필수 교양 같은 것들을 들어본 후 2학년으로 진학하면서 전공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어려서부터 작가가 꿈이었던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국문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국문과에 들어가서 시와 소설을 공부해야지. 좋은 작가가 되려면 많은 작품을 접해봐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아주 아주 단순하게.
하지만 나는 결국 국문과에 가지 않았다. 2학년이 되던 때, 나는 아주 당당하게 영문과를 선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주 별것 아닌 작은 사건 때문이었다.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그래, 나는 시 전공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아주 아주 싫어하는 편이었다.
신입생이 되어 처음으로 맞은 학교 축제에서, 나는 친해진 철학과 선배들과 주점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막을 치고 테이블을 나르고 간이 의자를 반듯하게 내려놓고 각종 안주를 만들기 위한 식재료를 실어 날랐다. 그때 한 선배가 내게 말했다. 복지처에 가서 술을 가져와야 하니 함께 가자고.
복지처에 도착하자 소동이 벌어져 있었다. 한 나이 지긋한 교수가 학생복지위원과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슬그머니 곁으로 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내용은 단순했다. 교수가 주차한 곳 근처에 천막 텐트를 실어 나르는 트럭이 들어와 물건을 내릴 예정이니, 잠시만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계획서에 주차해도 된다고 써놓고선 왜 주차하면 안 된다는 거야?!”
날 선 교수의 호통 소리에 복지위원이 답했다.
“주차가 안된다는 게 아니에요. 혹시라도 물건을 내리다가 차가 상할까 걱정되어 말씀드린 거예요.”
“대체 계획서에 주차구역으로 표시해둔 곳에서 차가 상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돼?!”
너 같은 놈들이 나중에, 일을 하다 보면,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뒷돈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거 아냐! 너 같은 놈들이 나라를 좀먹는 거야. 폭풍처럼 말을 쏟아낸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고 휙 돌아섰다.
“너 같은 놈들하고 무슨 말을 해!”
휙, 몸을 튼 교수는 선배와 나 사이를 비집고 거칠게 지나쳐갔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발 끝에 교수의 신발이 부딪혔다. 교수는 몇 걸음을 더 가다 말고 다시 돌아와 내 어깨를 밀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비켜야 할 것 아니야!”
정강이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다리를 붙잡고 주저앉은 나를 잠시 내려다보던 교수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당당하게 어딘가로 걸어갔고, 나와 선배는 벙 찐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교수의 뒷모습만 볼 뿐이었다. 애꿎은 선배만 거듭 사과했고, 나는 오래도록 그 교수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12월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그 교수를 만나게 된다. 학교 신문사에서 주최한 문학상 공모전에 내 시가 뽑혔을 때였다. 심사평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심사위원은 시상식에서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이 우리 학교 국문과 시 전공 교수였구나. 내 정강이를 기분 좋게 날리고 산뜻한 걸음걸이로 멀어져 갔던 그 사람이 우리나라 시 부문 문인 사이에서 상당한 권위를 가진 바로 그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자신이 홧김에 날린 발길질에 차였던 학생 1은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다른 시공간으로 날려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사람에게 그때의 사건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도무지 이 사람 밑에서는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이 정통 문단의 권위자라는 사실이, 어쩌면 문학계라는 곳은 지구와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내게서 먼 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길로 나는 영문과로 전공을 정하게 되었다. 그 결과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문학 월간지를 통해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을 하고도 나는 문단에 정착하지 못했다. 거대한 바다에 줄 없이 표류하는 부표처럼, 나의 글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깊은 심해로 침전할 뿐이었다.
악연은 계속되었다.
나 혼자만의 악연이었다.
그 후로도 이 교수와는 악연이 계속되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악연이었다. 요컨대 이런 종류다. 국문과를 회피했던 내가 국문과 후배와 연애를 하게 되었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교수가 자꾸 내 여자 친구를 술자리에 불러낸다던가, 술자리에서 남녀를 짝지어 스킨십 진한 술 게임을 주도한다던가, 그런 술자리에 가지 않으면 학점에 불이익이 생기는 것이 불문율로 자리 잡은 문화를 만든 것에 분노가 차오르는 그런 분노 섞인 나만의 악연.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교수에게 잘못 보이면 여러 가지로 삶이 불편해졌다. 지금보다는 권력이 좀 더 날것으로 작용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국문과 후배 여자 친구와는 3년을 만난 후 헤어졌다. 군대 말년 휴가를 2주 앞둔 어느 주말, 혹독했던 추위가 조금씩 물러가는 게 느껴지는 따스한 초봄, 햇살이 지저귀는 참새의 등을 어루만져주던 때, 수화기 너머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어졌으면 좋겠어. 이제 그만하자. 그녀는 헤어짐의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떠나간 이유에 대해 여러 차례 물었지만 입을 꽉 다문 조개처럼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몇 년이 지나고 몇 차례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낸 후, 나는 자연스럽게 이별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각 같은 것이었다. 그 감각 속에, 그녀가 느꼈을 아픔이 녹아있었다. 나는 그 아픔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했고 아마도 분명히 나의 잘못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캠퍼스가 변한 만큼,
나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오후 4시가 되었다. 선배는 길어지는 회의에 집중한 것인지 연락이 없었다. 아마도 무척 중요한 회의였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캠퍼스가 변한 만큼, 나도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과대 앞 벤치에는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5층 높이의 느티나무가 있다. 10년 전보다 더 거대해진 그 나무는 보이지 않는 사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키를 더해갔을 것이다. 매일매일 눈치채지 못하게 깊게 내린 뿌리로 토양의 양분을 빨아들이고 매 가을마다 벤치 위로 변함없는 낙엽을 흩뿌리면서.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주 아주 화창한 날에, 그러니까 내 지도교수님도, 대학이나 대학원 동문도 더 이상 학교에 남아있지 않게 될 그런 날에 다시 한번 캠퍼스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도 문과대 앞에 느티나무가 남아 있다면, 그 그늘에 앉아 가을바람을 맞으며 지나간 것들을 낙엽과 함께 흘려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오늘, 선배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그 시절과 변함없을 선배를 만나기엔, 내가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가끔은 추억이 가득한 장소가 변해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 ‘Tiny riot’이라는 곡을 들으며 작업했어요. 훌륭하게 혁명의 불씨를 자극하는 곡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