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Kyle Lee Nov 20. 2022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준다더니?

16. 임신 11주 차, 우리의 삶이 변해간다.

“이제 다음 주면 12주 차예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구나. 보통 12주 차에 입덧이 피크를 찍고 내려오기 시작한다던데. 어떨 것 같아요?" 


나의 물음에 아내가 답한다.


“글쎄, 어떨까. 지금은 그냥 죽을 것 같아요. 갈수록 심해져. 나아질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들은 15주, 16주 까지도 많이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도 그럴까 봐 걱정이에요. 심각한 표정을 짓는 아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몇 주 동안 아내는 무척이나 고되고 지친 사람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장모님의 입덧 경험기를 통해 예상했었던 대로 아내는 입덧이 심한 편인 듯하다.


보통 12주가 지나면 입덧도 좀 나아진다던데.


임신 11주 차에 겪는 아내의 입덧은 처음 입덧이 시작되던 임신 6주 차 때와는 또 달랐다. 뱃속의 아이가 커지는 비율에 따라 입덧의 증상도 함께 커지고 추가되는 것 같다는 아내. 아내의 설명에 따르면, 달라진 입맛과 미각, 그리고 예민해진 후각과 멀미를 하듯 울렁거리는 속이 문제였던 6주 차의 입덧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등 뒤에 새롭게 스위치 하나를 추가했다고 한다. 


“등에 스위치가 달린 것 같아요. 등의 어느 지점을 탁 건드리면, 위에서 식도로 통하는 입구가 활짝 열리면서 위에 있던 것들이 비상탈출이라도 하는 것처럼 일시에 확 치고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차라리 시원하게 게워내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느낌만 그렇고 실제로 나오진 않으니 더 미치겠어요. 아내가 말한다. 그러니, 백허그는 꿈도 꾸지 말라고. 


실제로 아내는 새벽에 깨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옆으로 누워있다가 몸을 뒤척이는 순간, 로켓처럼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튀어나간다. 등이 침대에 닿은 것이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인간 분수가 될 것 같다는 아내. 농담인데 웃지도 못하겠다. 꼴이 말이 아니다. 입덧을 시작하고 단 5주 만에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 줄었다. 


우리 누나도 입덧을 출산할 때까지 했어요.


“사람마다 입덧을 하는 기간이 많이 다르다고 해요. 보통 12주가 지나면 나아진다는 거지, 다 그런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15주 까지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더 짧기도 하고. 아내가 말한다.


“그리고 12주가 지났다고 마법처럼 ‘뿅’ 하고 입덧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얼음이 녹듯 천천히 증상이 잦아드는 거래요. 그러니까 실제로는 12주가 지났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좋아지거나 할 일은 없다는 거죠.”


아내의 말에 내가 답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누나도 입덧을 정말 오래 했었던 것 같아요. 거의 임신 기간 내내 했던 것 같아. 출산하기 직전까지도 갑자기 후다닥 화장실로 가는 걸 심심치 않게 봤어요.”


나의 말에 아내가 끄덕인다. 새언니는 정말 운이 좋지 못한 케이스였던 것 같다고 하면서.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그런 표정으로. 과연 아내의 입덧은 어떨까. 12주가 지나면 조금씩이라도 나아질까? 아내는 지나치게 심한 입덧 증상 때문에 병원에서 타 온 입덧 약을 부지런히 먹었는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며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12주가 지나면 바로 그 약을 끊고 싶었는데, 지금 같아서는 그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많은 것이 변해간다.
체형, 생활습관, 우리의 마음가짐도.


임신 12주 차를 코앞에 둔 우리의 삶은, 예전보다 꽤 많이 변해있었다. 씩씩하고 용감한 세 남매 중 장녀인 아내는 찜기에 들어갔다 나온 쪽파처럼 숨이 죽어 조금만 움직여도 폭 고꾸라질 것 같이 쉽게 지쳤다. 늘 작아서 불만이라던 가슴은 눈에 띄게 부피가 늘었고 분비물이 흥건할 정도로 나와 팬티라이너라도 써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여 일상 속 불편함은 자꾸만 더해갔고, 그만큼 아내는 다시 지치고 늘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가급적이면 집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코로나에 무뎌진 사람들과 길거리의 흡연자들이 불편하기도 했고, 기왕이면 일찍 집에 들어와 편안한 옷을 입고 늘어진 포즈로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 덕분인지, 아내는 저녁을 먹고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드는 일이 잦았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잠을 이기기 어려워 보였고, 자도 자도 잠이 부족해 보였다. 


단축근로가 있음에 감사한다.


“다음 주면 단축근로도 끝이 나요.”


8시가 조금 넘어 잠이 들었던 아내가 10시쯤 일어나 화장을 지운다. 반쯤 감긴 눈으로 잘 준비를 하던 아내가 말한다.


“그나마 단축근로 덕분에 버텼어요. 단축근로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그 말이 맞다. 단축근로가 없었다면 아내는 몇 번쯤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단축근로는 왜 굳이 초반 12주까지인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출산일이 되면, 왜 단축근로를 마지막 4주 동안 더 주는지도 알게 되겠지. 이 부분은 아직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2주 전에 2.8센티미터였으니까, 아마 지금쯤은 3센티미터가 넘었겠죠?”


이제 자연유산 확률은 크게 낮아졌을 거예요. 아내가 말했다.


“15%에서 1.3% 정도로 자연유산 확률이 낮아졌다고 보면 돼요. 자연 탈락할 정도로 작지 않은 거죠. 자궁경부가 3센티미터 이상 벌어질 일은 잘 없거든요.”


심한 입덧 때문에 혹시 아이와 아내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주는 말이다. 1.3%면 콘돔 피임 실패 확률보다 낮다. 제법 위안이 되는 말이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준다더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총 40주를 지나야 하는 여정에서 이제 겨우 11주. 아내의 몸은 아이를 만드는 생산공장이 되어가고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가용 가능한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있는 게 느껴졌다. 독립적인 한 사람이던 아내를 어느 한 생명의 종속체로 바꾸고 있는 느낌. 자연의 신비란 이토록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지금의 공정률은 약 28%. 생산품은 아마도 큰 문제없이 계획대로 차근차근 만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다행히 공장에도 큰 비상상황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조금은 위태위태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결혼할 때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요. 그러니까 주방에 얼쩡거리지 말고 저리 가요. 자신만만한 아내의 이런 태도가 얼마나 갈까 싶었는데, 실제로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아내는 내가 집안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진심으로 내가 주방에 있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차츰 나도 주방일을 멀리하게 되었었는데. 그랬었는데. 아내는 내게 ‘마지막 황제처럼 살게 해 줄 테니 감사하라.’고 말했었는데.


아내의 몸이 바뀌는 것처럼, 나의 생활도 꽤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아내가 잠든 시간이 늘어난 만큼, 나도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집안일의 비중을 늘려가는 것도, 홀로 깨어 집안일을 하고 있는 순간을 외로워하지 않는 것도 내게 주어진 숙제다. 늘 두 사람이 함께하던 그 패턴에서 벗어나, 이제는 협력자의 입장에서 각자 해야 할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태어나면 24시간 공동 대응체계가 되어야 할 테니까.


우리의 삶이 변해간다.


우리의 삶이 변해간다. 공정률 28%. 아내의 생각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감히 아직까지는 순조롭다고 생각하는 초보 예비 아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산부 아내의 주변을 코로나가 맴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