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 따로 살게 된 둘째와 오랜만에 밥을 먹었다.
근처 맛집을 검색해 간장게장 집으로 갔다. 간장게장 한번 배 터지게 먹어봤음 좋겠다던 놈이었다.
그런데 그 비싼 걸 시켜놓고 먹는 폼이 영 시원찮다.
"왜? 맛 없어?"
"아냐.. 맛있어요."
"근데 왜 그렇게 깨작거려?"
"아니 그냥.. 오늘은 간장게장이 좀 안 땡기네.."
아이를 자취방에 데려다 주는 길.
"엄마. 혹시 이 시 읽어봤어요?"
"무슨 시?"
"이번 주에 교양 글쓰기 수업 때 들은 건데.. "
핸폰으로 아이가 시 하나를 보여준다.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중..
"너무 슬프지 않아요? 간장이 울컥울컥 부어지고 엄마는 자기 몸속의 알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젠 잘 시간이라고.. 이 시를 듣는 순간 게들한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야..."
아이를 자취방 앞에 내려주고 집으로 오는 길.
내가 무거운 입을 먼저 열었다.
"쟤 미친 거 아냐?"
"돈 아깝게 짜식이.."
"근데.. 그 시 읽고 나니까 쫌 그렇긴 해."
"그니까. 간장게장을 뭐 그렇게까지 써 가지고.."
"담엔 고기 먹자."
"쟤가 또 이상한 시 들고 나오는 거 아냐?"
"소. 돼지. 닭 이런 거?"
"아 몰랑~~ 담엔 우렁쌈밥이나 먹어!!"
"우렁이 시는 없을까.. "
" ...... "
세상엔 차암 다양한 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