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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Mar 24. 2022

소설 캠프아라리

1화 들풀 어린이집

별이 빛나는 밤          

      

      

만약에    

      

“만약에 우리 상욱이가 지금처럼 살 수 있다는 걸 상욱이가 자폐 판정을 받았을 때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만약 현봉이가 저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기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걸 태어났을 때 알았다면 우리 동렬씨와 그 가족의 삶이 어땠을까요? 아마 여기로 오지도 않았을걸? 아니면 미리 왔던지. 하하        


  

작년 초인가? ‘우리의 내일은’이라는 잡지사의 기자가 찾아왔어요. 그 양반이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세계의 공동체 취재를 끝내고 한국 로컬 풀뿌리 공동체 취재 도중 ‘우리 농원’ 이야기와 상욱이 현봉이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에요.   

  

나한테 와서 인터뷰를 요청했고 내가 꿈꾸는 세상에 관해 물었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능력으로 평가되지 않고 사람으로 존중받는 세상, 그것이 기본 문화로 제도와 시스템을 장착한 세상. 위정자들의 이익을 목적으로 복지제도가 만들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의 존중이 목적인 복지제도가 있는 세상. 그리고 양심과 정의가 중심인 세상을 꿈꾼다고 했죠. 그랬더니 이 양반이 그런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겠냐는 거예요. 완전 이상적인 세상인데 이상적이라는 건 이루어지지 않을 세상이라는 거죠.   

   

그래서 내가 그랬죠. 그게 옳다는 걸 모두 알고, 어떻게 하면 그런 세상이 된다는 걸 안다면 왜 만들어지지 않겠냐? 지금의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은, 세상을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철학과 과학 그리고 정치 이런 것들이 돈과 권력의 이용물로 사용되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원래 그런 철학과 과학은 인권이, 정의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      


사실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할 자산인 자연이나 종교가 개인 소유화되고, 민심을 호도하는 가짜 철학이 세상을 떠도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신이 만물을 창조했다는데 그 만물에는 모든 생명체가 속해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몇몇 종교 계파들은 그들만 마치 하나님을 소유한 것처럼 자기네 교회에 가지 않으면 집에까지 찾아와서 신을 믿으라고 성화를 부리는 건가? 마치 자기네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신을 믿지 않는 거고 그러면 지옥에 간다는 소리를 해대는 걸까? 그게 악마고 세력 불리 기잖아. 그리고 우생학이 뭐야? 기본 시작부터 잘못된 거잖아. 어떻게 그런 학문이 과학이라고 버젓이 세상을 망가트리고 있어? 인간은 다 다르고 그 다름이 인간의 가치를 소중하게 해주는 거야. 태어나는 환경도 다르고 삶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어쨌든 다 다른 게 인간이라는 동물이야.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며? 그런데 그런 신이 우리를 잘못 만들었다는 거잖아. 만물을 창조하신 신이 인간을 잘못 만들었고,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인간의 품질개량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지 않아?   


        

하하 그런 이야기를 한참 했더니 나보고 자기네 잡지에 글을 써 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지금 준비하는 책이 있는데 그걸 이야기했지. 만약에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가 있었다면 우리의 삶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글로 쓴 ‘또 다른 세상’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지. 그랬더니 그걸 잡지에 연재하자는 거야. 그래서 원고료는 주냐고? 하하 그랬더니 자기가 데스크에 이야기할 테니 대략 줄거리를 달라는 거야. 그래서 그러자고 했지. 

          

그런데 그것만 연재하면 독자들의 이해도가 떨어질 거다. 먼저 장애라는 편견이 얼마나 한 가정을 무너트리는지? 또 얼마나 파쇼적인 건지? 내 삶의 이야기를 먼저 솔직하게 써서 사람들이 왜 장애 가족들이 삭발하고 길거리에 나서고 복지제도에 불만족해서 투쟁하고 그러는지 먼저 알게 해야 ‘또 다른 세상’ 이야기가 좀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했지."    


       

그는 자신이 살아 보고 싶은 세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고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고 힘들었는지 그리고 여기 정선의 농원을 만들기까지 생각의 변화와 삶의 여정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일기 쓰듯이 써왔다. 삶의 고비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만약에 이런 세상이 있다면’ 이란 생각을 하며 ‘또 다른 세상’을 상상했었다. 그러다가 생긴 꿈이 그런 ‘또 다른 세상’에 필요한 문화와 제도, 그런 제도와 시스템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를 소설화해서 쓰고 싶었단다.    

       

그의 그 말속에는 깊은 회한과 후회 그리고 꿈이 모두 담겨있었다.  

   

그는 나름대로는 공동체를 만들어 보려고 많은 시도를 했었다. 십수 번의 모임을 만들었고 모두 실패를 했었다. 여러 번의 부모들 모임은 정선을 찾아온 부모들에 의해서였고, 또 여러 번의 모임은 블로그를 보고 찾아온 사회복지사나 특수교사들과의 모임이었단다. 그런데 다 흐지부지되고 지금 그저 가끔 안부들만 묻고 있단다. 쓸쓸한 그 표정에 서유재는 이유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다들 원하는 세상이 달랐어요. 장애에 관한 인식이,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인식이 다 달랐던 거죠. 각자의 직업이나 조건에 따라 생각하는 게 달랐던 거예요. 육아 시기의 부모는 아이의 육아와 막연한 미래를 생각하고, 교육 시기의 부모는 대안교육이나 안전한 학교생활을, 성인기의 부모는 취업이나 돌봄, 독립, 시설 등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만 어떻게든 피하거나 해결해 보려는 고민만 하죠. 부모들만 해도 그렇게 갈라지는 데 사회복지사나 특수교사들은 어떻겠어요. 결국에는 장애 당사자의 욕구는 반영하지도 못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 욕구의 성장도 당연히 일어나지 않는 거죠. 사람의 발달은 욕구의 성장이 끌어가는 거잖아요. 이건 장애에 관한 인식의 문제였어요. 그럼 이런 인식을 어떻게 개선하느냐? 누구부터 하느냐?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한 번은 한 복지관 관장 양반이 장애인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그들의 선택권을 존중한다고 자랑합디다. 내가 물어보았죠. 어떤 선택을 존중했냐고 그랬더니 이것저것 이야기하길래 내가 그게 어떻게 선택권 존중이야? 하고 말을 막았죠. 먼저 선택은 경험에 의해해야 합니다. 그게 선택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죠. 어떤 게 자신에게 유리한지도 모르면서 선택하는 것은 복불복이지 선택의 의미는 아니죠. 선택의 능력을 만들어 주고 선택의 조건을 만들어 주고 해야 선택의 자유가 보장받는 거죠. 그랬더니 얼굴이 빨개지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 뒤로 보지는 못했지만 내 말을 잘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을 정리해 보면 


부모부터, 그중에서도 가장 포기하기가 힘든 육아기의 부모부터 인식개선이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장애에 관한 인식은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인간을 생산의 도구로 생각하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된 거라고 봐야 한다. 이런 잘못된 방향이 우생학이라는 괴상한 학문을 만들어냈고 그런 문화가 괴상한 제도를 양산해 낸 것이다. 당연히 그런 문화에서 배우고 자란 우리는 원하든 않든 간에 그런 사고에 세뇌되어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세뇌되었던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럼 그걸 어떻게 하는가? 그래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인식개선이란 그냥 이렇게 바꿔!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인식을 깨닫고 왜 그런 인식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먼저 되어야 바꿀 수 있다. 우리 인식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게 하려면 다양한 다른 면을 봐야 하고 그 문제를 화두로 토론해야 한다. 그러려면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육아기의 엄마들에게 많은 정보가 있어야 하고 그 정보로 그들이 깨어나야 한다. 그들이 현실의 장애인식에 관해 왜 그런 인식이 생겼는지 이해하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깨닫고, 어떻게 고치고 어떻게 살 수 있는지 희망을 구체적으로 재장전하고, 전사로 나서야 사회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고, 세상이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구상하고 글을 썼단다.     

     

서유재 일행의 가슴이 멍해진다. 그래,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런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가 꿈꾸는 그런 세상에서 우리 선우에게 미안함 없이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갑자기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에 올려다보는 밤하늘의 색이 다양하다. 그냥 시커멓다고만 생각했는데 끝없이 깊은 투명함이다. 그 깊은 하늘을 집중해 보니 온갖 맑은 색들도 어우러져 보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작은 별들도 뚜렷이 반짝이는 큰 별들도 다들 자신이 있음을 보여준다. 구름에 잠시 가렸던 별이 나타나고 다시 가려진다. 그러다가 가끔 별똥별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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