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빠 병원 옆 병원에 입원하다.

나는 왜 암..? 그리고 세 명의 보험사정사

by 노라a

국립암병원에서 항암치료 중이셨던 아빠는 더 이상의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셨다. 정상세포들조차 감당하지 못하면서 더 빠르게 몸이 약해졌다. 그리고 결국, 아빠는 병원을 옮기셨다. 조금 더 쉬기 위해, 조금 덜 아프기 위해. 병명보다 마음이 먼저 알아챈 ‘끝’이라는 감각이 병실을 감쌌다. 딸은 옮겨진 병실로 아빠를 뵙고 울고 또 웃으며, 위로를 해드리고 위로를 받으며 시간을 보냈더랬다.

그러던 딸이, 이제는 옆에 붙어있는 대학병원에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산부인과의 경우
의료파업 인원이 많진 않습니다.

의료파업이 가장 심할 때라 바쁘다면 전쟁터 같고 비어있다면 썰렁한 느낌마저 드는 이상한 시기였다. 얼마 되지 않은 인원은 끼니를 거르며 환자들을 치료하고 부재중인 파업인원의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육안으로 봐도 경부암이 맞네요.
제자리암은 이렇게 도려내면 금방이에요.
바로 수술하죠.

그렇게 나는 수술복을 입고 있었다. 수술 당일, 전신 마취였던 것이 마취담당의의 부재로 반만 마취를 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드르륵 문이 열리며 밥도 굶고 이전 수술을 마치시고 오신 마취담당의의 발길에 나는 불안과 안도로 수술을 시작했고 감ㅅ..ㅏ..하다보니 수술은 끝이 났다.

깨어나 보니 남편과 옆 병원의 아빠 병실에 계셨던 엄마가 잠시 나를 보러 병실로 오셨다. 왜 왔어~했다. 수술이 잘 마무리됐음을 전하고 다시 옆 병원으로 돌려보냈다.

내가 한 수술은 보통 일주일 이상의 회복기를 갖는다고 한다. 대형병원의 경우 당일 퇴원이라 하여 나는 수술 후 주말만 쉬고 출근을 하려 했다. 그런데 이는 의료파업시기로 인하여 당일 퇴원 원칙이었던 것으로, 며칠 더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고, 유선으로 예약해 두었던 2차 병원으로 퇴원한 날 입원하여 약 열흘간 치료와 회복의 쉼을 가졌다. 특별한 증상이 육안으로 확인되진 않았다. 2차 감염도 없었고 열도 나진 않았다. 많이 걷고 잘 먹고 잘 자야 했다. 아빠의 병환과 이를 견디는 가족, 그리고 가족들의 사업 등, 흔들림 없이 버티기만 했어야 했던 모든 것들을 두고 나는 쉼을 '노력'했다.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아빠의 병환이 심해지면서 나는 나의 아픔을 애써 무시했었다. 회사일로, 아이들의 육아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푸는 방향이 아니라 아빠는 저렇게 편찮으신데, 이런 게 아픈 건가 하며 그냥 꾹꾹 참았다. 그리고 그 찌꺼기들은 이따금 나의 자궁을 자극했던 것 같았다. 끙! 하며 지나쳤던 묵직함이 스트레스였던가보다. 참지 말았어야 했다. 견디지 말았어야 했다. 아닌 걸 알면 큰 숨으로라도 스트레스를 뱉어냈어야 했다. ‘쌓는 것’과 ‘뱉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났다. 그 결과가 암이었다.


보험가입 후 한 달 조금 넘으셨네요.

입원 중의 나의 업무는 보험청구였다. 청구서류는 각 보험사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다운로드할 수 있고 이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제출했더니 세명의 보험사정사에게 연락이 왔다. 5년간의 의료기록을 조회하고 보험의 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닌가를 조사한다 했다.

보험가입은 어플을 통해 간편하게 하지만 가입할 때 질문은 받지만 사실여부를 조사받지 않는다. 일정 기간 이내에 해당 보험의 청구가 발생될 경우, 보험사정사들이 배정되고, 지난달 가입한 보험일지라도 5년간의 병원기록을 모두 제공하고 조사를 받아야 한다.

내 암보험을 다소 ‘신나게’ 설계하셨던 담당설계사님은 놀람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을 잇지 못하셨더랬다. 사실 저도 몰랐어요.. 멋쩍게 웃었다. 암보장개시일은 계약일로부터 그날을 포함하여 90일이 지난날의 다음날이다. 결국 90일 지나지 않은 나는 보장받을 수 없었다? 아니다. 보험 기간 안엔 한 가지 기간이 또 등장한다. '1년 미만'인 경우 50% 지급. 수술비용은 100만 원 이내, 2차 병원의 입원에 100만 원 조금 넘게 발생했었다. ‘우연히’ 가입했던 보험들로부터 보장받은 금액은 이 금액을 훨씬 웃돌았다.

세 분의 보험사정사들께서 5년 치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셨다. 나의 건강기록에서 신우신염일 뻔했던 적을 제외하고 나의 의료기록은 ‘잦은 감기’와 ‘제왕절개’ 뿐이었다. 보험을 청구하여 보장받는데 변수는 없었다.


만개한 벚꽃이 떨어질 즈음이었다. 몸의 회복과 나를 위한 생각과 보험 청구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꽃 길을 한 바퀴씩 걸었다. 아이들도 한번 왔더랬다.

그리고 나는 퇴원을 하면서, 아빠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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