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동상이몽: 추행의 소용돌이

by 노라a

겨울이 유난히 길었다. 사건들은 동시에 터졌고, 나는 추위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법인 계약을 마무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남편의 개인 채무자들이 사업장으로 전화를 걸어오며 상황은 복잡해졌다.
양도인 대표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계약 후 일정에 대해 논의했고, 실무를 배우는 동생들과의 조율을 반복했다. 점차 일 얘기를 하는 시간과 자금 흐름을 의논하는 시간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일에서 ‘여성스러움’보다 ‘강인함’을, ‘아름다움’보다 ‘단단함’을 원했다. 그분은 그런 나의 태도를 응원해 주었다. 좋은 어른이라 믿었다.


명절 전, 긴 기다림 끝에 택시비까지 챙겨주시던 그날까지도 우리는 좋은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이상했다.


불빛이 꺼진 순간

사업 이야기가 엉뚱한 제안으로 흘러가고,
농담인지 모를 말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들이대는 사람보다, 들이대는 여자가 낫지 않아요.


나는 순간 멈췄다. 지역의 표현인가, 농담인가, 아니면 내가 오해한 걸까. 그러나 불편함은 점점 명확해졌다.

비어 있는 상가를 둘러본 어느 날, 그는 응원의 말 대신 어깨를 감싸며 불을 껐다.
순간, 숨이 막혔다.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만이 우리를 비추었다.

그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아시잖아요. 왜 이러십니까.


나는 분명히 말했다. 그가 나를 도와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 어둠 속에서 신뢰는 무너졌고, 희망의 불은 꺼져갔다. 며칠 뒤 그는 “없던 일로 하자”며 사과했다. ‘친구’가 아니라 ‘사업적 파트너’로 남자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보인 그의 행동은 그 경계를 이미 넘어가 있었다.


침묵의 21일

속이 뒤집혔다. 그가 보여준 신뢰의 언어들 속엔 오염된 권력과 오만이 섞여 있었다. 그날 이후, 당시 옆에 있던 친구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당장 신고하러 가자.


고소를 준비하며 나는 침묵 속에서 정보를 모으고, 감정을 정리하고, 사실을 증거로 바꾸는 법에 대해 고민했고 당장 꼴도 보기 싫었지만 이후 대화의 녹음, 증거 문서, 대화의 문맥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개인이 아니라 법인의 계약 당사자, 그리고 동생들이 그 영향 아래 있었다. 그렇게 21일을 버텼다.

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그 안에는 그의 행동의 인정, 그리고 그로 인해 계약이 파기된 사정이 담겨 있었다. 계약은 결국 무효가 되었고, 동생들은 내가 침묵했던 21일을 함께 버티다 일을 그만두었다.


피 말리는 두 달

그는 계약금을 곧 돌려줄 것처럼 말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변명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새벽,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죽고 싶다는 생각이 3초 동안 스쳤다.
하지만 바로 생각을 거둬들였다.

“아니, 아직 죽을 수 없다.
아이들도, 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사정을 봐주고 또 봐주다 보니

2개월의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그 사이 자금은 묵혀졌고, 나는 정신적으로 말라가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사촌동생의 권유로 내용증명을 보냈고, 그제야 그는 계약금을 송금했다. 좋게만 이해했더니, 그 두 달의 시간이 너무 아깝기만 했다.


전략의 시작

피를 말리며 우리를 기다리게 한 그 시간. 나는 그 시간이 헛되지 않길 바랐다. 그의 정보로, 그의 언행으로,

나는 내 방식의 생존을 배웠다. 그 이후의 나는, ‘조용한 기술’이 단지 생존의 기술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기술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내는 것, 그것이 이 인고의 결과였다. 그렇게 나는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한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생들은 한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존경할 만한 어른도 없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자.

분리하기 어렵다.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감정이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략을 세울 땐 감정보다 사실을 통해 해결 방안을 수립하는 일, 그게 먼저가 아닐까.

나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감정을 싣지 말자. 사실만 보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자.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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