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2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주 Sep 01. 2019

왜 '이 남자'죠?

MBC 스페셜 <이 남자, 분노하다>와 <이 남자의 피 땀 눈물>

MBC 스페셜에서 ‘이 남자’에 대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여기서 ‘이 남자’는 20대 남자의 줄임말. 20대 남자라는 제목을 보자 <시사IN>의 ‘20대 남자 현상’에 대한 기획 기사가 떠올랐다. 무려 208개의 설문 조항을 통해 ‘20대 남자 현상’은 도대체 무엇이고, 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것인지 밝힌, 꽤나 이슈가 된 기사였다. 특정 세대, 특정 성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을 어렴풋하게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방대한 질문을 통해 분석적으로 접근한 기사로,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MBC 스페셜 <이 남자, 분노하다>와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이라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각각 페미니즘과 취업난을 다루고 있다. <시사IN> 기사에서 워낙 20대 남자 현상을 흥미롭게 다루었기에 MBC에서는 '이 남자'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그러나 두 다큐멘터리를 본 후, 이 호기심은 무색해져 버렸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연결되지 않은 채 중구난방이었고, 도대체 왜 제목에 ‘20대 남자’를 넣었는지 근본적인 의문마저 들었다. 


◇ 그러니까 이 남자’ 왜 분노했나요

먼저 <이 남자, 분노하다>는 페미니즘에 대한 20대 남자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속 남성들은 페미니즘을 남성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여성 우월주의라고, 나쁘다고 표현한다. 페미니즘 동아리의 대자보가 찢기고, 에브리타임에는 혐오 발언이 올라오고, 페미니스트라고 낙인찍히는 일은 꽤 자주 벌어진다. 

궁금했다. 왜 이렇게 페미니즘을 거부하고 혐오하는지. <이 남자, 분노하다>가 그 궁금한 이야기를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청을 시작했다. 하지만 끝까지 ‘왜’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지 않았다. 



<이 남자, 분노하다>는 빅데이터를 통해 20대 남자의 분노에 접근했다. 7개 대학 익명게시판을 빅데이터 분석하여 2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남성은 자신을 희생과 역차별의 존재로 인식했고 페미니즘에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빅데이터 회사 대표는 "여혐 담론이 두려움과 얄미움의 감정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아니 그래서 왜 그러는데?' 좀 더 듣고 싶었다. 20대 남성이 왜 스스로를 희생과 역차별의 존재로 생각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감정적이었으며 왜 이성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이 사실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원인에 의한 착각인건지 파헤쳐 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저 빅데이터 결과를 표면적으로만 훑는 것에서 그쳤다. 



▲ ‘이 남자의 분노 원인을 찾기 위한 하나의 제안


그럼 어떻게 '이 남자'가 분노한 원인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 남자’의 분노를 현상으로 인식하고 파악하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정확한 원인을 지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분석해볼 수 있다. ‘페미니즘은 이러이러해서 사라져야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저러해서 문제야.’라는 식의 이야기는 여러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이 설명하는 그들의 분노 원인은 무엇인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러한 원인과 논리가 합당한지, 만약 합당하지 않다면 어떻게 저러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인지 살펴본다면 ‘이 남자’가 왜 그러한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바탕으로 ‘이 남자’의 분노 원인에 대한 몇몇 가설을 세운다면, 그러한 가설이 합당한지 ‘이 남자’와의 인터뷰와 ‘이 남자’의 삶을 통해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초반에 등장한 페미니즘에 대한 분노를 콘텐츠 삼아 진행하는 BJ와 그의 방송을  깊숙이 분석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BJ가 무엇을 콘텐츠로 삼고, 왜 그러한 콘텐츠가 잘 팔리는지, 시청자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등을 파악하여 그들의 분노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 남자'들의 분노가 나타나는 경로를 다큐멘터리 형식을 이용해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면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이 남자는 왜 넣은 건가요?


다큐의 주제는 '20대 남성'의 분노다. '이 남자'라는 호칭까지 만들어 불렀다. 하지만 정작 내용은 20대 남성과 페미니즘의 교집합을 집중해서 다루지 않는다. 페미니즘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그에 분노하는 남성들을 보여주다가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듣는 등 각각의 이야기가 따로 논다. 페미니스트와 분노한 20대 남성 사이의 소통도, 그들의 분노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저 각자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보여준다. 이게 페미니즘 소개 다큐인지, 20대 남성들의 분노에 대한 다큐인지 정확한 주제도 잡혀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굳이 ‘이 남자’라는 명칭은 왜 붙여 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속편인 <이 남자의 피 땀 눈물>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청년들의 취업난, 일하기 어려운 사회에 대해 다루었다는데, ‘이 남자’는 왜 붙었을까? '이 남자'만의 독특한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 다큐멘터리가 20대 남성들만의 취업난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회사 내에 여전히 존재하고, 여성들이 취업과 승진에 있어 겪고 있는 성차별과 어려움도 이야기한다.  


한편 다큐 중간에는 국민연금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오래 나온다.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장년층이 나와 ‘노년에 몇십 만 원은 큰돈이다.’라는 말씀도 하신다. 

20대 청년들은 현재를 사는데 바쁘기에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신뢰가 적어 국민연금을 믿지 않는다는 맥락으로 이으려고는 했다. 그러나 이게 ‘이 남자의 피 땀 눈물’과는 무슨 상관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국민연금을 20대 남성들만 신뢰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취업난을 이야기하다 노후와 국민연금까지 주제가 뻗어나가는 건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시사IN> 기사에서도 국민연금과 20대 남자 현상을 연결지은 바 있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는 맥락이 있었다.


'세대 계약을 불신할수록 반페미니즘 정체성도 강하다...“내가 낸 국민연금은 어차피 못 돌려받는다”라는 문장에, 반페미니즘 정체성 집단의 82.6%가 동의했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기회를 빼앗고 있고, 자신들은 기성세대를 부양하나 그것을 후속 세대에게 돌려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중략)...기성세대에 의한 착취와 여성에 의한 착취가 동시에 쏟아진다고 느끼는 이들이 강고한 정체성 집단으로 뭉친다.'


국민연금과 세대 계약의 신뢰도를 연결지었고, 세대 계약에 대한 불신과 기성세대의 착취가 반페미니즘 집단이 스스로를 약자라고 인식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에서도 ‘이 남자’의 분노 원인이 무한경쟁과 줄어든 기회라고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화난 이유는 사회가 나에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인지하기 때문이라며. 빅데이터 분석 결과 그들은 스스로를 역차별을 받는 약자로 여성들은 혜택을 받는 경쟁자로 인식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보여주고 있는 피, 땀, 눈물을 흘리며 무한경쟁 속에서 기회를 잡으려 열심히 일하는 남성들 그리고 그들의 사회에 대한 불신을 페미니즘에 대한 분노와 연결지어 보여주지 않는다. 만약 피 땀 눈물 나는 취업난을 분노의 원인 중 하나로 이야기할 것이었다면 , 이 둘의 연결고리를 더 명확히 드러냈어야 했다.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은 마치 취업난 속에서도 열심히 사는 청년들에 대한 다큐로 보였다.


 MBC 스페셜 ‘이 남자’ 시리즈는 페미니즘과 취업이 20대 남성 안에서 어떻게 독특하게 여겨지고, 왜 그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살펴야 했다. ‘이 남자’라는 이름을 걸려면 말이다. 그저 #20대 #페미니즘 #취업과 관련된 모든 키워드들을 끌어 들여와 엮어 놓는다면 공감도 이입도 할 수 없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파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20대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교육비 얼마? 현실적인 교육상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