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곰팡이 집에서 피어난 계획

발리에서 <내 집 찾기>

by JEN

홈스테이로 이사 온 지 일 년이 지났을까? 지은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은 건물이 점차 거뭇거뭇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계단 벽, 계단 벽과 이어지는 부엌의 벽이 점차 색이 바래더니 녹조가 생기면서 검게 변하는 게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보였다. 이 거뭇한 것의 정체는 곰팡이었는데 아무래도 건물 자체에 누수가 있는 것 같았다.

하루는 인부들이 건물 외벽에 파이프가 있는 곳을 다 허물더니 누수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엔 누수 지점을 못 찾았는지 임시방편으로 파이프에 흐르는 물들이 벽에 고이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임시 물길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밑에는 임시 물길에서 흘러 떨어지는 물을 받기 위해 검정 양동이를 놓았다. 결국 이 허물어진 벽은 정리되지 않은 채, 양동이와 함께 흉물스럽게 방치되었고 그 뒤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최근 해당 홈스테이에 올라온 리뷰글

4층 짜리 건물인데 아무래도 이곳 건축의 특성상 도면 없이 지어진 건물임이 분명했다. 만들기 급급해서 계획 없이 무작정 파이프를 설치한 게 아닐까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수를 찾으려면 건물 전체를 다 뜯어봐야 할 텐데 이게 될 리가 없었다. 누수가 생기면서 건물이 전체적으로 급격하게 노화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수의 문제도 있었지만 장소 자체도 다른 곳 보다 습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비가 오지 않아도 오토바이 시트가 젖어 있었고 사이드 미러에는 항상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렇게 땅의 습기, 공기의 습기, 건물의 누수 모든 것이 만나 반짝이었던 새 건물은 일년만에 지어진 지 10년 정도 된 것 같은 몰골로 변했다.

내 방 벽면에 생기기 시작한 곰팡이

그리고 이내, 내 방 벽 곳곳에도 없던 곰팡이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켜면 꿉꿉한 곰팡이내가 코를 찔렀고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도 들어오는 문을 제외하고는 창문이 없는 구조라 사실상 환기가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번 자라기 시작한 곰팡이들은 옷, 책, 가방 할 것 없이 나의 모든 물건으로 퍼져서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는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가면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곰팡이로 인해 알레르기가 심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감기를 앓았다. 처음엔 코로나인 줄 알고 걱정했는데 검사 결과 코로나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곰팡이가 집을 삼키더니 나를 병들게 했다.


장기로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발리에서 집을 구할 때 제일 먼저 제시하는 조건은 ‘No Mold!(곰팡이 없는 집)‘

홈스테이 측에서는 아무래도 외관상 보기에 안 좋으니 나름의 조치를 취하려고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스크래퍼로 곰팡이 낀 페인트를 벗겨내고 새로운 페인트를 그 위에 덮었다. 지금 당장은 보기에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알았다 이것도 또 한 번의 우기를 지내고 나면 새로운 페인트 위로 다시 곰팡이가 스멀스멀 올라올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곰팡이집에서 연신 흐르는 콧물을 훌쩍이며 알레르기 약에 취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동시에 내가 장기 렌트하게 될 집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아직 일어난 일은 아니다만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발리를 생각하면 더한 일이 생겨도 크게 놀랍지 않다.


그래서 문득 든 생각이,

리스크를 가지고 이상한 집을 골라 후회하느니,
그냥 내가 집을 짓자! 지어 보자!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운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문제없는 집을 고를 자신이 없었다. 또 잘못 골라 거지같이 만들어 놓은 건물을 고생하며 리모델링하느니 차라리 내가 처음부터 짓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혹시 잘못되더라도 적어도 억울하지는 않겠다 싶었다.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고구마 백개 정도 먹은 것 같았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맑아지면서 뿌옇던 시야에 안개가 걷히듯 선명해졌다. 그 후로, 더 이상 나의 결심에 그 어떤 의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 집을 짓는거야, 발리에!’

본격적으로 집 짓는 이야기는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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