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빠지다

중독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 자

by 교주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도우미견 캐프리와 저녁산책을 나갔다. 캐프리에게는 산책이라기보다는 나의 빠른 휠체어 속력과 맞추느라고 조금 숨이 차오르는 경주일 듯하다. 매일 5-6Km를 다니는 산책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 캐프리가 가장 좋아하는 바나나를 사러 가는 것이다. 한 2Km 정도 떨어져 있는 바나나 가게까지는 참 기분 좋은 코스이다.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는 프리웨이 육교를 건너서 북쪽 부촌 산마을로 통하는 초입의 주택가를 지난다. 곧 수십 년 만에 재회를 했던 수줍은 소년이 머물던 호텔 앞을 지나서 대나무가 정렬해 있는 긴 램프길을 오른다. 언제 걸어도 나는 이 길이 참 좋다.


마치 울릉도 대나무골인양 상상하며 길을 지나면 대형 비즈니스 빌딩들이 좌우로 늘어선 큰길이 나온다. 큰길 끝 사거리에서 횡단을 하면 바나나가 반겨주는 Trade Joe's라는 식품점이 있다. 바나나 향이 가까워 올 수록 나보다 내가 외치는 "바나나!" "바나나!"에 고도의 집중력으로 열심히 속도를 맞추는 캐프리의 심장은 가득히 부풀어 간다. 아뿔싸! 오늘은 멀리서 봐도 원근감을 무시하는 커다란 등치의 경찰 3명이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나처럼 길을 건너려고 서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도 가까이 가기가 싫었다. 내가 서서 주춤대는 동안 캐프리는 주변 화단에 정신을 팔며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있다.


잠시 시선을 캐프리에게 떨어뜨렸다가 사거리를 바라보니 경찰이 사라졌다. 조금 더 가까이 가니 한 20-30명이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불법체류자를 "체포"해서 바로 "추방"하는 나랏님의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요즘 LA에는 불법체포를 반대하는 평화로운 시위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중 몇몇이 과격하다는 핑계로 연방정부에서 군인을 투입한 지 벌써 4일째가 되고 있다. 주정부가 요청하기 전에 연방정부가 군대를 투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주지사와 LA시장은 시위대를 자극하여 폭동을 조장하며 독재를 하려는 수작이라며 성토를 한다. 트럼프가 K-지도자를 보고 배운 것이 역력하다.


미국에서는 한국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시위에 참여하기가 어렵다. 1963년 마틴루터 킹 목사가 시민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수도 워싱톤에 25만 명이 한자리에 모였고, 2000년 총기류 규제를 위해 75만 명의 엄마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다. 같은 목적으로 수많은 도시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시위의 총인원을 수백 수천만으로 보도하지만 우리나라 땅의 44.5배, 남한의 95배가 되는 곳에 나뉘어 시위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다. 시간이나 장소, 또는 시위 방법들에 대한 규제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시위가 합법적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이유로 피켓시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피켓시위대를 지지하는 의미로 지나가는 차량들이 빵빵하고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것이 관습적이다.


나는 시위대를 지나쳐 바나나를 사러 갈까 말까를 망설이다 캐프리에게 미안하지만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 순간 좌회전을 해 내가 있는 쪽으로 오던 차가 "빵~빵~빠앙~" 열심히 자신의 동조의사를 밝히며 응원을 했다. 눈에 띄지 않던 경찰이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타고 쏜 살같이 나타나 번쩍번쩍 경찰 비상등을 켜고 빵빵대던 자동차의 뒤를 쫓으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국에서 겪는 첫 폭력적인 장면이라 조용한 시내가 마치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유튜브에서 LA시로 군인들이 들어와 최루탄을 쏘아대고 사람들을 잡아 연행하는 장면들을 보았지만 처음으로 내가 사는 시까지 가까이 다가온 첫 폭력이다.


조금 길을 따라 내려오니 경찰이 빵빵이던 차를 정지시킨 후 운전자를 밖으로 불러내 세워놓고 그의 신분증을 뒤지는 것 같았다. 나는 무력하게 한참을 바라다보았다. 정부의 폭력과 억압이 내 몸 깊숙이 침범해 들어오는 느낌이다. 그러지 않아도 유튜브 속 시위대를 보며 "한국을 배워!" "절대 과격해지거나 약탈하지 마"라고 혼자 소리 지르다가 산책을 나온 것이다. 시위는 점점 한인타운 쪽까지 번지고 급기야 LA시는 화요일에 통금이 발표되었다. 집에 들어와 유튜브를 보니 다른 큰 도시에서도 시위가 벌어진다는 소식과 함께 어제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법원에 임시명령으로 막아줄 것을 요청한 사안이 기각되자 트럼프는 의기양양하게 더 많은 군인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승! 어째?


세계에서 제일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미국 군대를 동원해 무기도 없고 조직적으로 싸울 힘도 없이 하루하루 벌어먹기에 바쁜 이민자에게 서류미비자라는 이유로 체포, 구금하는 일이 가당키나 한 결정인가? 제정신들이 아니다. 바나나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유튜브를 켜니 임시명령 정지요청이 기각된 지 하루 만에 캘리포니아가 냈던 정식 소송에서 "주정부의 요청이 없이 군대를 투입하는 것이 불법"으로 결정이 났다며 주지사는 6월 14일 오후 12시에 모든 군대가 떠날 것이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단호하게 트럼프를 질책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승! 와우!


캘리포니아나 텍사스등 국경과 가까운 주에는 많은 서류미비자들이 있으며 사회 전반에 걸쳐 미국경제의 밑바닥을 받치고 있다. 내가 아는 몇몇 친구들도 현 시국에 가슴이 졸이고 두근대고 두려움에 떨며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유색인종 프로파일링으로 잡아들이고 가족이나 법적 권리등은 아랑곳없이 바로 추방을 시키는 비인간적인 일을 자행하는데 무장한 군인을 투입했던 것이고 내일이면 군인들이 떠난다는 것이다. 역시 정의는 국민들의 편이야라고 생각을 하는 좁은 틈을 비집고 또 다른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항소를 해서 그 결정이 나올 때까지 군대를 철수하지 않아도 된다며 캘리포니아를 향한 트럼프의 비아냥이 갑자기 유튜브를 달구고 있다. 다시 트럼프 승! 오 마이 갓!


작년 12월 3일 갑자기 한국의 계엄령 때문에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속이 답답해지는 긴장의 순간과 잠시 휴우~하고 숨이 쉬어지는 짧은 안도감 사이를 오가며 한국에 일어난 혼돈의 시간을 함께했다. 이제 어느 정도 한국이 안정을 찾는 듯하여 지난 6개월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던 유튜브를 끊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미국상황의 긴박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한국에 대한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캘리포니아와 미국의 문제가 초를 다투며 엎치락뒤치락 정세가 어둡다.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유튜브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지구촌의 좋았던 시절은 진짜 다 지나간 것일까?


아니다! 한국의 못난 지도자가 K-문화로 자존심이 한참 고조되고 있던 한국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미국의 더 못난 지도자가 K-지도자를 따라 하며 미국뿐 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국가들을 흔들고 있다. 못난이들의 흔듦으로 세상이 혼돈의 시기 속에 있지만 결코 좋았던 시절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나는 지도자의 힘을 믿는다. 많은 훌륭한 지도자 중에 나는 특히 요한 바오로 전 교황을 통해 지도자 한 사람이 세상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의 크기를 경험해 봤다. 아무리 한국과 미국, 전 세계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도 그것을 이겨내는 한 가지 비법은 지도자의 발현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한 표라도 더 받은 사람은 잘 났거나 못났어도 대통령이 되는 것이 기본이고 나는 그것을 존중한다. 다만 시민들이 자신의 이득과 맹목적인 집단의 믿음으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행동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 중에 한 명이라도 더 우리나라를 이끌 능력 있는 "지도자"를 현명하게 선택하면 된다. 그것은 학문에만 치우친 교육방법에서 문제해결능력을 가지고 미래를 이끄는 "지도자"를 키워내는 교육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정치인의 경우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모든 곳에서 지도자 양성에 힘써야 한다.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를 계발해야 하듯이 다양한 그룹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육성되어야 한다.


나는 어서 빨리 내 일상으로 돌아가 조용히 내 일에 집중하고 싶다.

좋은 지도자가 나와 나의 유튜브 과잉시청을 끝내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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