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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길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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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Jun 25. 2021

혹시 손편지의 기적을 아니?

나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라

 

천 번의 기도보다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단 한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것이 낫다.

-마하트마 간디-     


 누구나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받으면 가슴이 설레고 기쁠 거야. 편지를 쓴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 그래서 편지를 쓰는 동안 상대방을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쓴 편지는 기적을 일으키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희망의 마중물이 되기도 하고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늪을 빠져나올 동아줄이 되기도 해. 그런데 요즈음은 이런 기적의 손편지를 쓰는 사람이 드물어.          


 왜냐하면, 컴퓨터로 이메일을 보내면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데 손편지는 우체국을 통해 발송하고 2-3일이 지나야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이야. 현대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손으로 편지 쓰는 것을 멀리하도록 만들고 있어. 또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쓴 편지는 글씨가 가지런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데 손으로 쓴 편지는 글씨가 삐뚤삐뚤 제멋대로야. 내가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감추고 싶지. 그뿐만 아니라 편지를 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 못 쓴 것을 수정하기도 어려운 것도 편지를 안 쓰게 하는 요인이기도 해.     


 엄마는 60년대 초반에 태어났으니까 손편지 세대라고 할 수 있어. 처음으로 편지를 쓴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야. 학교에서 편지 쓰기를 했는데 서울에 계신 삼촌께 편지를 썼지. 편지를 쓸 사람이 삼촌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 조카가 벌써 커서 편지를 쓰다니 너무 기쁘다.”라는 내용의 답장이 왔어. 우리 반에서 답장 온 사람은 엄마 혼자였으니 얼마나 기뻤겠니? 엄마는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기뻤단다. 그때부터 편지 쓰기는 엄마의 즐거움이고 행복이었어. 엄마만 그런 것은 아니야. 아이들이 쪽지편지를 썼는데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잠깐 눈을 돌리는 사이 쪽지편지가 교실을 날아다녔어. ‘수업 끝나고 어디 가자’ 거나 선생님 어떻다거나 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소통을 쪽지편지로 한 거지. 그러다 들켜서 혼나기도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쪽지편지를 날렸어.     


 손편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또 있어. 서울에서 일하며 야간학교에 다닐 때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손편지를 보내준 사람 덕분이야.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살던 분인데 6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편지만 주고받았어. 야간에 공부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오면 우편함부터 뒤적였었지. 흑산면은 목포에서 배로 2시간 가까이 가야 하고 흑산면에서도 다시 영산도라는 작은 섬으로 이동해야 해서 태풍이라도 올라오면 편지가 오는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어. 평소에도 2주는 걸린 것 같아. 그러니 우편함에 흑산도에서 온 손편지가 있으면 읽기도 전에 그날의 피로가 수증기처럼 증발할 수밖에.          


 아빠와 결혼한 것도 8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인연이 된 거야. 엄마가 두 번쯤 보내면 아빠는 한 번 정도 보냈던 것 같아. 유년기를 농촌에서 보낸 엄마는 서울보다 시골이 좋았어. 그래서 농촌 총각하고 편지나 해볼까 하고 농촌 총각 도시 처녀 짝짓기 모임에 나갔다 모임의 성격을 잘못 알고 왔다는 것을 알았어. 그 모임은 결혼하기 어려운 농촌 총각과 도시 처녀를 만나게 해주는 모임이었거든. 엄마는 결혼할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그곳에서 아빠를 만났고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지.      


엄마에게 손편지는 엄마를 정화하는 용광로였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충전소였으며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던 것 같아.     


 지금도 가끔은 아빠에게 편지를 써. 말로 하면 감정이 앞서거나 엄마의 마음을 잘 전달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편지를 써서 주는데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 것 같아.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편지는 고쳐 쓸 수 있잖아. 다듬고 또 다듬어서 최대한 엄마가 하고 싶은 얘기를 설득력 있게 할 수 있거든. 너를 키우면서도 편지가 활용되었어. 말이 안 통할 때 편지가 도움을 주었잖아. 너는 감정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쪽지에 적어 툭 던져주고는 했지.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생각하게 했던 것 같아.         

 

 아이들에게도 손편지를 써서 줄 때가 있는데 아이들은 손편지가 익숙하지 않아서 시큰둥하더라. 컴퓨터로 쓴 글씨에 익숙한 아이들은 엄마가 쓴 글씨를 읽는 것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든가 봐. 그래도 일상적인 일은 카톡을 통해 소통하는데 특별한 일이 있거나 엄마 곁을 떠나 독립할 때는 엄마의 마음을 담아 손편지를 주려고 해.     


 시대가 변하고 삶의 방식이 디지털화된다고 해도 때로는 아날로그 방법이 더 좋을 때가 있어. 바로 사춘기 자녀들과의 소통에서 그런 것 같아. 말로 하면 잔소리지만 손편지를 써서 주면 잔소리로 읽지 않고 엄마의 마음을 읽게 되는 것 같아. 손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적을 만드는 마력이 있거든. 지금도 이 글을 손편지로 써서 주면 좋으련만 지금은 엄마도 손편지보다는 이메일이나 카톡을 사용하게 돼. 자판을 두드려 쓴 편지지만 엄마의 마음이 너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항상 너를 응원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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