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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Oct 26. 2021

나는 들꽃이다

말씀 쿠키 153


들에 나가면 계절에 따라 이름도 알 수 없는 꽃들이 나름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피고 지는 것을 봐요. 수채화같이 화려하지 않아 사람의 눈을 확 잡아끌지 못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어떤 것은 너무 작아 잘 눈에 띄지 않는데 해마다 그 자리에서 피고 지고 있지요.     


저는 들꽃이에요. 들꽃을 닮았어요. 세련되게 옷을 갖추어 입을 줄도 모르고 화장하고 머리를 매만져 예쁘게 변신하는 기술이 없어요.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생긴 대로 살지요. 특별한 것이 없으니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알아주는 이도 없어요. 그렇다고 속상해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지 않아요. 해마다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들꽃처럼 저 또한 언제나 이 자리에서 먹고 자고 일해요.     


그런 저를 어머니는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어요. 어머니는 저와 완전히 다르거든요. 3일 굶은 것은 몰라도 행색이 초라하면 가난이 뒷꼭지에 따라다닌다고 역정을 내셨어요. 시장에 갈 때 추리닝 바지에 티 하나 걸치고 가는 것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그때는 정말 가난해서 갈아입고 갈 옷이 없어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보다 나아진 지금도 집에서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입고 마트에 가요. 마트에서 아이들 학교 선생님을 만날 때가 있어요. 그때는 잠시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려요.      


나는 왜 그럴까?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바꾸어 보려고 노력도 했지요. 


화장을 해보니 뭔가 붙여 놓은 것 같아 불편하고 정장을 입으니 아이들과 함께 외출하기가 너무나 걸리적거리고 옷과 함께 구두도 신어야 하고 가방도 맞춰 들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것 같고 가면을 쓴 것 같고 그래서 포기했어요. 그냥 주어진 자리에서 생긴 대로 살기로요.     


저희 집은 은행나무길에 있어요.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통과해서 들어오는 동네지요. 은행나무 길을 통과하는 사이 감정의 모드가 평안으로 바뀌어요. 저는 소리와 함께 가끔 그 길을 걸어요.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 작은 들꽃이 피어있어요. 소리는 쪼그리고 앉아 “엄마 와보세요. 여기 정말 예쁜 꽃이 있어요.”하며 저를 불러 세워요. 다섯 살 소리의 눈은 어른들의 눈과 다른가 봐요. 풀 숲의 작은 꽃도 잘 보고 열 배나 더 크게 감동해요. 저는 그런 소리를 보며 감동하고요.     


소리는 이 세상에서 제가 제일 예쁘다고 해요. 들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화장도 하지 않고 옷도 잘 입을 줄 모르는 저를 소리는 날마다 ‘예쁜 우리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해줘요. 그 말에 저는 오늘도 존재의 이유를 찾아요.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는 들의 백합화를 하나님이 기르시는 것처럼 저의 삶 또한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믿어요.


가수 조용필이 부른 '들꽃'을 좋아하는 것도 제가 들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나 그대만을 위해서 피어난 저 바위틈에 한송이 들꽃이여
돌틈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핀다해도 내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가리라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그대는 내가슴에 항상 머물고 

수많은 꽃중에 들꽃이 되어도 행복하리
돌틈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산다해도 내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가리라
오색이 영롱한 무지개로 그대는 내가슴에 항상 머물고 수많은 꽃중에 

들꽃이 되어도 행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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