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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May 13. 2023

4. 날마다 칼을 만드는 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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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날마다 칼을 만드는 주니     


오늘도 일곱 살 주니는 유치원에서 A4용지로 칼을 만들었습니다. 칼날과 손잡이를 구별하는 가드까지 (칼을 사용할 때 손이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도와주는 부분) 제법 모양을 제대로 갖춘 칼입니다.     

자랑스럽게 칼을 들고 언어치료 선생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주니는 자기가 만든 칼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열심히 설명하는데 선생님의 관심은 저 칼을 지정한 장소에 놓고 수업을 할 수 있을까에 있습니다. 주니가 설명을 모두 마치고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자 선생님은 ‘한번 만져봐도 되니?’ 하고는 칼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정말 멋지게 만들었구나.’ ‘그런데 우리 수업하는 동안은 한 곳에 놓아두고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하고 가져가면 좋을 것 같다’라고 하며 칼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주니의 감정은 널뛰기를 합니다.


‘내가 만든 것을 왜 선생님이 가져가요. 남의 거잖아요. 

나 선생님 말 안 들을 거예요. 

선생님은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가는 나쁜 사람이에요. 


‘그래도 선생님과 수업할 때는 칼을 손에 들고 수업을 할 수는 없어. 

앞쪽이 싫으면 뒤쪽에 놓아도 괜찮아’라고 했지만 이미 감정이 폭발한 주니는 책상을 내리치고 발을 구르고 악을 쓰며 칼을 달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아니야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동안은 이곳에 놓아두어야 해 아니면 주니가 뒤쪽에 놓고 올래?’ 

‘싫어요. 선생님 나빠요’

주니의 떼쓰는 소리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엄마에게까지 들립니다. 엄마는 들어가 개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합니다.    

 

엄마는 주니가 언제부터 왜 칼만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집에서 ‘대조영’과 ‘왕건’ 같은 역사 드라마를 함께 보았는데 칼을 휘두르는 장수들의 모습이 멋져 보여서가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디펌으로도 칼을 만들고, 색종이로도 칼을 만들고, 이면지로도 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둘둘 말아 가위로 자르고 테이프로 붙이는데 매일 만드는 칼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집에서도 만들고, 유치원에서도 만들고 하루에 3-4개씩은 칼을 만들어서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버리고 또 다른 모양의 칼을 만듭니다.     


칼을 만들 때 주니는 집중의 단계를 넘어 몰입합니다.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불같이 화를 내서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토리 헤이든이 쓴 [한 아이]에 나오는 주인공 셀라 같습니다. 셀라는 여섯 살 여자아이로 어린아이에게 불을 지른 죄로 정신병원에 입원 판결이 내려졌으나 병실이 없어 잠시 쓰레기반이라 불리는 특별반에 오게 됩니다. 여섯 살 여자아이의 폭력이라고는 상상이 안 되는 행동을 하여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토리 선생님은 쉴라를 포기하지 않고 신뢰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주니는 셀라만큼 분노 가득한 폭력을 휘두르거나 집요하게 복수하지 않지만 고집부리고 떼쓰는 것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라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주니는 글자와 눈 마주치기를 거부하고 완강하게 버팁니다. 입은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온몸으로 왕고집의 기운을 내뿜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일곱 살이니 적어도 5분 이상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거나 하는 연습을 시작으로 조금씩 늘려 가야 1학년이 되었을 때 수업 시간에 진득하게 앉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단의 조치로 매일 주어진 한글 공부를 해야 간식을 먹고 TV를 볼 수 있도록 규칙을 정했습니다. 주니를 위해 특별히 정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형들이 정해서 실행해 온 규칙을 주니에게 설명해 주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주니는 왜 간식을 못 먹고 TV를 못 보냐고 악을 씁니다. 우리 집 규칙이고 매일 정한 분량의 공부를 하면 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을 쓰고 성질을 부려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방을 나왔습니다.      


5분쯤 지나 조용해져서 살펴보니 종이에 무엇인가를 찍찍 그립니다. 한글을 배우기 전 단계로 모양 따라 그리기인데 모양을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종이가 찢어지도록 아무렇게나 선을  그립니다. 종이는 찢어졌고 찢어진 종이는 여기저기에 나뒹굴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점선으로 모양이 그려진 종이를 한 장 더 주었습니다. 대충 그리려는 주니의 손을 잡고 따라 그리도록 도와줍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몰라 종합심리 검사를 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100점 만점에 76점으로 지적장애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언어이해력이 낮고 추론이 평균 이하이며 작업기억은 매우 낮고 처리 속도가 낮아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가 어려울 수 있고 학습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습니다. 어느 부분은 정상이나 어느 부분은 현저하게 낮아 편차가 너무 심한 것이 문제이기는 하나 잘 지도하면 중하 정도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일단 집중이 되지 않아 그럴 수 있으니 ADHD 약을 복용하며 언어치료를 병행해 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1주일에 한 번 언어치료를 하려 아동센터에 가는데 갈 때마다 선생님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합니다.     


그와 함께 집에서도 주니와의 관계를 다시 만들어 갑니다. 함께 정한 규칙은 아무리 떼를 써도 지켜야 놀이를 하거나, 간식을 먹거나, TV를 볼 수 있도록 합니다. 떼쓰는 것으로 상황을 주도해서 자기 뜻대로 하려는 경향성을 파악하고 떼쓸 때는 방안의 일정한 장소에 앉아 있도록 하고 아무리 떼를 써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주니가 만든 칼은 책상 위에 잘 보관하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고 학습량을 줄여 쉽고 가볍게 접근하도록 합니다. 매일 일정 시간 한글 카드를 보여주고 따라 읽기를 하거나 책에서 같은 글자 찾기를 하며 글자와 눈 맞추는 시간을 늘려갑니다. 


1년 정도 반복한 결과 30 단어 정도는 읽게 되었습니다.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해한 읽기가 아닌 사진을 찍듯 그림으로 구별해서 읽습니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림으로 글자를 구별한다 해도 앉아서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하나둘 글자를 구별해내는 능력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엄마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언젠가 한글을 깨쳐 스스로 책을 읽을 날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     

      

오늘도 주니는 이면지로 칼을 만듭니다. 엄마는 왜 칼만 만드냐고 야단치지 않습니다. 만들기 하고 사용한 가위와 테이프는 제자리에 놓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말합니다. 주니는 느린 학습자이고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엄마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관계가 먼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어긋나면 그 어떤 교육이나 훈육도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같이 아이의 귀를 스치고 지나가 버립니다. 아이를 교육하고 훈육하기 전에 아이와의 관계 맺기가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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