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내는 시간 vs. 붙잡아보는 시간
PRUSSIAN BLUE 3번째 글 시작해보겠습니다.
(G)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대학교를 경영학과로 진학한 이유가 있을까요?
(K) 제가 그때는 ‘있어 보이기’를 원했어요. 그 당시 문과(인문사회계열)는 사람들이 ‘어느 대학 다니세요?’ 라고 물어보면 ‘○○대학교 경영학과 다닙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멋있어 보였어요. 사실 저는 교사가 되기를 원했지만요. 고교 생활기록부의 진로희망 부분을 찾아보면 3년 내내 교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제가 장학퀴즈도 나가고, 수능 성적도 어느 정도 나오고 자의식이 높아지면서 남자가 ‘교사하기는 아깝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장학퀴즈 출연자 모임에 가면 동기들이 회계사, 변호사가 될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저도 남한테 자랑하고 싶은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뒤에 선생님이 질문하실 내용과 연결되겠지만, 그때는 제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교사가 되고 싶어서 되고 싶다고 한 건지, 혹은 어머니의 모습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 건지요.
경영학과를 나오면 소위 말하는 오만가지를 다 할 수 있어요. 경영학의 범주에는 '마케팅, 인사, 재무, 전략 등'이 다 들어있어요.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거죠.
정리하면 첫 번째는 있어 보이고 인정받고 싶어서, 두 번째는 나왔던 수능점수가 아까워서라고 이야기 드릴 수 있겠습니다.
(G) 그 당시 경영학과 다니면서 수업은 괜찮았나요?
(K) 대학에서는 열심히 하기도 했고, 성적도 잘 나왔어요. 특정 내용을 빠짐없이 외워서 쓰기보다는 제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어서 열심히 해서 경영학 자체는 재미있었어요.
성취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첫 학기에 4.0 이상의 학점이 나왔었어요. 경영학과는 다른 과보다 사람이 많고 쟁쟁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좋은 학점을 받는 것이 쉽지 않은 데 처음에 그런 학점을 받으니까 앞으로도 저 정도 점수를 받아야겠다고 스스로 규정하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G) 앞에서 말씀해주셨던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와 연결되네요. 고등학교 1학년 첫 시험과 대학교 1학년 첫 시험에서 잘 나오니 앞으로도 유지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셨으니까요.
갑자기 궁금한 부분인데, 제 생각에 대학 입학하기 전까지 공부는 내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저는 역사에서 연도 문제 내는 것이 가장 싫었어요. 조상님들의 업적을 숫자 몇 개로만 규정하고, 그걸 문제로 낸다는 것이 싫었어요. 물론 역사 선생님에게 의견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요.
그러다가 대학교 때는 그래도 내가 조금 더 관심 있는 부분을 공부하는 데 어떤 차이점을 느끼셨나요?
(K) 고등학교와 대학교 공부 차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전 고등학교 공부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적 받기 좋은 시스템이고 달달 외우면 점수가 잘 나오니까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대학교 때도 제가 인정받는 것을 좋아해서 프로젝트 수업 같은 발표 때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어, 이런 정도까지 준비해왔어?’ 라는 표정이나 제스처 등을 봤을 때 좋았어요. 발표 수업 때 교수님이나 동료들한테 질문 받는 것도 즐거웠어요.
지금 기억나는 일화 중에 하나가 수업이나 시험이 조금 어려운 교수님 수업이었어요. 본인 성적을 스스로 점수 매기고 그 이류를 쓰는 과제가 있었어요. 한 학생이 A라고 쓰니까 교수님이 “음, 너는 A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저는 당당히 ‘A+’라고 썼는데, 교수님이 “너 정도면 A+정도면 충분하지!” 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쾌감을 얻었고 이러한 경험들이 저를 더 발전시켰다고 봅니다.
고등학교 공부 vs. 대학교 공부
고등학교: 성적 받기 좋은 편,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공부
대학교: 프로젝트 수업이 많음, 능동적인 공부
대학교 공부 자체는 재미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어요. 저는 답이 정해져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경영학의 일부 영역은 그렇지 않았어요. 재무관리, 회계, 금융, 생산관리, 경제학 등은 답이 정해져 있는 편이고, 마케팅, 인사, 경영 전략 같은 건 정답이 없어서 힘들었죠.
(G) 그 비율이 비슷해서 다행이네요! 초반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지금까지 제가 인터뷰 했던 선생님들과 비슷하게 내재적인 동기가 보여서 신기하네요. 오늘 또 배워가네요.
(K) 외적 보상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내적 보상이 필요하죠.
(G) 그렇게 지내시다가, 교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과정이 어떻게 될까요?
(K) 저는 ROTC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임관하고 군 생활은 좋은 상급자와 동료들을 만나 열심히 해서 좋은 경험을 했는데, 군 생활 내용은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군대에서 시간을 내서 금융 3종 세트라고 하는 자격증을 준비했어요. 증권투자상담사, FP(Financial planner), 선물거래 상담사 일거예요. 은행에 입사하려고 하면, 이 3가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중에서도 뭐가 필요할지 몰라서 모두 준비했어요.
전역하기 전에 여러 회사에 지원해서 몇 군데 기업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ROTC 장교 경험과 학점, 기준 이상의 영어 점수 확보로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은행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 조언을 받고 여러 회사 중에서 저는 ○○은행으로 갔습니다.
은행에 입행해서 연수를 받는데 2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새벽 1시까지 연수일지를 쓰고 새벽 2시 정도에 자서 6시에 기상하는 일과였어요. 월급은 정말 많이 받긴 했습니다. 여러 수당이 포함되어 있었지만요. 어느 순간 월급이 통장이 찍히는 게 감흥이 없더라고요. 퇴근하면 저녁 9~10시이고, 매일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은행을 퇴사하고 건설회사에 입사해서 대리까지 다녔죠. 그게 두 번째였어요. 세 번째도 건설회사 재무팀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교대에 입학하게 되었죠.
<4편에서 이어집니다.>
- 도슨트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