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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은 블로거이고, 다른 한 명은 우주선에서 청소 알바를 하며 글을 써서 형에게 보낸다. 로트해트는 태양계의 행성과 행성을 오가는 시대에 파워 블로거다. 태양계 10위 안에 드는 인플루언서다. 우주선 탑승기를 남기며 인기를 끌었지만 101번째 우주선 리뷰를 끝으로 블로그 후임자를 찾기로 한다.
첫째, 기록하는 사람. 이왕이면 다정한 순간을. 왜냐하면 그런 순간은 충분히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둘째, 욕심도 호기심도 적당해서 엄한 길로 새지 않을 사람.
셋째, 때로는 좀 엉뚱해서 쉬어갈 순간을 만들어주는 사람.
넷째. 블로그보다는 본인 인생과 주변 사람이 우선인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기장의 선택을 받는 사람이었다.
로트해트는 우주여행 블로거 후임자를 찾는 광고를 타이탄일보에 올린다. 그리고 엄마의 일기장을 토대로 우주선 여행을 떠난다. 100년만에 다시 우주를 항해하게 된 '그린로즈호'를 타게 된다. 그녀는 블로그 101번째 포스팅에서 아끼고 아껴온 세 척의 우주선 이야기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우주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주선 청소 알바를 하는 기요메는 틈틈이 포어슈텔룽호 부함장인 마르코 형에게 우주선 이야기를 편지글을 보낸다. 우주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무료함을 달랜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 변화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그런 찰나에 로트해트와의 만남은 새로운 교착점을 찾는다. 그들은 인생의 전환점을 우주여행 속 만남과 소통을 통해 깨달아간다.
“나 자신을 믿어 봐도 좋지 않을까?”
작가는 '아날로그적인 사물들을 수천년 뒤의 우주로 보내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건네기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이지아 작가의 신작을 읽으면서 내 자신이 한없이 뒤처진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낯선 것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의도적 시도는 항상 힘이 드는 법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인생의 이야기를 우주라는 공간을 통해 풀어간다.
그의 창의적 시선의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난 그의 상상의 힘을 따라잡는 데 고단할 만큼 바빴다. 그것은 나의 오랜 고착화된 시선과 감성의 장벽이 두텁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내 앞에 서 있는 장애물을 허물고 날 것으로 다가서니, 풍덩, 소리를 내며 깊은 우주의 우물 속에 빠져 들었다. 신기했다. 작가는 느린 나를 채근하지 않고 살며시 이끈다.
<우주의 별일>은 미래를 투영한 우주 앞에서 여전히 아날로그적 감성인 기록의 힘을 이야기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현재와 미래가 엇갈리지 않고 절묘하게 퍼즐처럼 어울린다.
웹툰작가의 필모그래피를 말해주듯, 첫 장을 넘기자 수려한 붓체의 만화가 두어 장 보인다. 작가는 우주에 천착된 게 분명하다.
그의 첫 장편도 <버려진 우주선의 시간>이다. 그 작품으로 카페오페이지와 창비가 주최한 영어덜트 소설상 특별선정작을 받았다.
그의 문학적 서사는 작품 <우주의 별일>을 통해 세상에서 별 일인 SF 감성작가로 평가받는다. 우주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리드하며 독자보다 앞서가는 듯 하지만, 이내 발길을 멈추며 철학적 언어로 독자와 함께 긴 호흡을 내뿜는다. 1인칭 화자시점으로 끌어당기다 어느 순간엔 냉철하게 3자적 관점으로 돌아선다. 무서우리만치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스스로의 철학을 수수께끼처럼 작품 속에 녹아낸다.
나는 작가의 사유의 확장이 어디까지일까, 사뭇 궁금해졌다. 하나의 문장과 스토리를 이어감에 소홀하지 않는 힘이 있었다. 술슬 써내려가는 듯한 문장이지만 탄탄하고, 중간중간 검은 박스 안에 고소한 비스킷처럼 숨어 있는 동화같은 이야기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안달나게 한다. 현재를 사는 작가가, 그것도 우주여행을 다녀왔을리 만무하건만 상상의 디테일이 다채롭다. 게다가 우주처럼 광활하다.
책을 읽다 익숙한 독일어가 눈에 들어왔다. 단어들의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태양에 말린 최고급차인 슈니블뤼테와 로즈호의 최초 함장인 티프타우헨(Tieftauchen), 포어슈텔룽(Vorstellung)호. 독일에 살고 있는 작가의 공간적 요소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슈니블뤼테(Schneeblüte/ 눈꽃)는 어떤 공주가 담요를 짜는 동안 흘리는 눈물이 얼어붙어 눈꽃 모양이 되었다고. 슈니블뤼테가 특별한 이유는 꽃잎의 개수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한 종류의 꽃모양은 사람처럼 그렇게 다르다는 것을 작가는 다시 한 번 통찰하도록 권유한다.
몇 몇 매력적인 승객도 보인다. 티프타우헨이 이끌었던 로즈호를 함장과 부함장에게 넘기는데, 당시 살아남은 부함장이 퀸틴이다.
그는 해적선의 공격으로 겨우 살아남았지만 다시 재개된 로즈호에 올라타 돈키호테처럼 우주선에 잔고장이 날 때마다 고쳐주곤 한다. 우리 인생에 퀸틴 부함장 같은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가슴 따스해질까? 그는 인생의 구조선 같은 존재다.
삼촌의 화훼선에서 몰래 따온 미나리아재비꽃은 또 얼마나 낭만적인가? 우주를 가로지르며 꽃을 나르는 화훼선이라니? 아름답고 행복한 상상에 눈을 감는다. 이 꽃의 전설도 정겹다. 한 소년이 매일 들꽃에 물을 주며 정성껏 보살폈고 그 정성에 감동한 꽃이 소년의 눈빛을 닮은 노란 빛깔로 피어났다는 것. 작지만 깊은 사랑과 순수함을 상징한다. 우주선에 꽃이라는 소재를 가미해 따뜻하고 친절한 추억을 선물한다.
책의 말미에 로트해트는 자신 블로그의 다음 주자로 기요메에게 제안한다. 아마도 다음 이야기가 계속 될 것이라는 기쁜 복선 같다.
자신의 인생 자전거를 밀어준 엄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로트해트. 엄마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한 로트해트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기요메의 여정이 좌충우돌 우리네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괜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혹시 티프타우헨의 딸이 로트해트의 엄마가 아닐까? 그래서 2탄이 나온다면 로트해트가 그린호즈호의 함장이 되는 건 아닐까? 어줍잖은 독자의 기대에 작가의 혜량을 빈다.
돈키호테의 분실물- 로트해트
세 번째 부표에 감춰 둔 미세스 킴의 비밀- 기요메
희귀 눈꽃 슈니블뤼테- 로트해트
포보스이냐 데이모스팀이냐! 태양계 리그 대소동- 기요메
봉봉 스튜디오행 여객선에서 만난 갑판 청소부- 로트해트
천재 우주선 그라피티스트의 마지막 알바- 기요메
우주 터미널에서 길을 잃으면- 로트해트
새 포스팅을 예약하시겠습니까?- 기요메
작가의 말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가 별똥별쯤 될 것이라고 착각했던 건 거대하고 서슬퍼런 날이 달린 작살로, 해적선이 먹잇감을 잡기 위해 던진 것이었다. 그것들은 점점 큰 굉음을 내며 날아오더니 그린로즈호의 몸통을 꿰뚫었다. 금속이 갈라지며 우주선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p35
의외로 간단한 대답에 금방 수긍했다. 슈니블뤼테가 만개하기까지의 30분은 꼭 세 시간처럼 여겨졌다. 나와 삼촌은 계기판 앞에서 빨갛게 깜박거리는 시계의 숫자들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자 정말 30분쯤 지나서 태양 빛이 아치 모양으로 금빛 테두리를 만들더니 그 빛줄기가 닿는 곳부터 팝콘이 터지듯 수천수만 개의 슈니블뤼테가 꽃을 피웠다 p69
우리가 꽃들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기권을 빠져나올 때 반대편에서 요란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커다란 수확선들이 본체에서 집게발을 내밀어 슈니블뤼테를 우악스럽게 쓸어담고 앉았다. 우리는 그 거대한 포식자들로부터 조용히 눈을 돌렸다. P70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심각한 분리불안이 있고 그것 때문에 당신과 어린 애들에게 화를 낸 내 자신에 깜짝 놀랐어요, 이제는 일기장을 떠나서 혼자 설 때가 된 것 같아요. 내길을 가고 싶어졌어요. p 110
사연이 많은 친구네. 역시 블로그 후임자로 밀어붙이기는 어렵겠어. 자기 역사와 싸우느라 인생을 촉박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에게는 아직도 유년시절을 곱씹을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러니 블로그 연재라는 과제를 함부로 떠맡길 수는 없지 P 155
P.s
SF 소설을 즐겨읽지 않은데
청소년 소설에 관심이 많아져
우주에 대한 소설을 읽게 되었어요.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가는 게
힘이 들었지만 아주 즐거운 우주선 여행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