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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어쩌면 너와 나의 민낯_인생은 사이코드라마다

윤소희 작가의 심리소설 <사이코드라마>

by 연강작가 Mar 12. 2025


향기는 복선이었다.


주한에게 예주의 향기는 기억의 한 부분을 퍼올렸다. 뇌리에서 사라지는 듯, 세월과 함께 상실된 것 중에 향기와 함께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 첫사랑이다.


40대의 주한은 대학의 심리학 교수다.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착한 아내와 어렵게 얻은 어린 아들. 제법 안정적이고 건강한 가정과 직장의 소유자 주한에게, 슬며시 향기가 되어 나타난 과거가 있다.


시간이 흘러도 격정적이고 애틋했던 기억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불쑥 상담을 받겠다고 찾아온 여대생 예주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예주를 향한 묘한 성적 이끌림이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사랑이니, 불륜이니,라는 클리세에 천착하지 않는다. 욕망의 뉘앙스로 치닿다가 내면 깊숙한 곳에 머무르고는 독자의 통찰을 기다린다.


가끔 내 안의 허영적 욕망을 본다. 내면 깊숙한 곳엔 어디에도 의연함은 없다. 유혹에 나약한 인간 본성만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걸 알지만 자주 잊는다.

개에게 감자를 먹는 훈련을 시키다가 고기 한 점을 던져주면 덥석 문다. 인간도 동물과 다를 바 없다. 고기를 문 개처럼 숨겨둔 욕망이 되살아난다. 개가 되지 않기 위해 신과 인간은 공조해 규칙과 법을 만든다. 상담윤리 또한 상담자의 일탈을 제어하는 장치다. 어쩌면 주한 스스로에게 에덴의 선악과다. 완곡한 자기 부정의 선언책이다.


‘예주의 눈물을 바라보는 순간, 넘을 수 없는 이 ‘거리’가 내담자를 돕기 위한 장치라기 보다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 같다고 느꼈다.‘ P41


향기 외에도 복선은 또 있다.

예주의 첫 마디는 “눈에 눈 이에는 이라는 말, 정말 성경에 있나요?”였다. 책을 다 덮은 다음에서야 복선임을 알아챘지만, 사실 반전은 예상하지 못했다.

 싱그런 꽃향기를 가진 예주가 자신의 첫사랑 정예진의 딸이라는 것을
주한도 나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복수심으로 친아빠 주한을 찾아, 유혹한 것도. 그리고 이 엄청난 반전이 기가 막힌 쾌감을 준다는 것도 책을 덮으면서 알았다.


작가는 곳곳에 친절한 미끼를 놓았지만, 독자는 습관적 인식으로, 겉으로의 욕망 그 자체에 집착한다. 보여지는 것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쉽게 놓친다.

예주를 통해 보여준 루벤스의 그림 <시몬과 페로>.


나는 언젠가 나이든 할아버지가 젊은 여자의 젖을 빨고 있는 그림이 아버지와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 적 있다. 하지만 감옥에 갇혀 굶주린 노인에게 딸이 몰래 자신의 젖을 먹인 것이라는 해설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슬픔의 숭고함이었다. 마치 사이코드라마나 소설처럼 진실과 허구 사이에 경계선이 허물어진 느낌이랄까? 그림을 보는 우리는, 보이는 것과 내밀한 해석 사이에서 자주 선험적 사고에 빠진다. 우리는 인생에서 얼마나 이러한 습관적인 편견과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은가?


윤소희 작가의 <사이코드라마>를 읽는 내내 기성세대, 아니 내 자신의 민낯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미 몇 권의 책을 내었고,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내면 깊숙한 욕망의 덤불을 헤집고 고발한다. 서정적이면서도 예술적 감각과 심리적 혜안이 글 곳곳에 배어 있다. 또다른 작가의 향기를 맡는 순간이다.


소설은 꼼꼼한 개연성을 밑바탕으로, 촘촘하게 그물처럼 얽혀 있다. 어려운 퍼즐을 맞춰가는 듯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그림, 책, 여행지 등이 맛깔스런 양념처럼 적절하게 배어, 읽는 맛을 높인다. 인물 간 보조적 자아 같은 카페주인과 카톨릭 사제인 친구 세훈, 주한의 아내 한지혜, 예진의 엄마이자 주한의 첫사랑 정예진까지 연극 무대의 대도구, 소도구처럼 이 또한 소설의 묘미를 살린다.


나에게 예주라는 인물은, 건강한 정신을 지닌 청춘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론 부러웠다. 예주는 비굴하지도, 숨지도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근원적 뿌리를 찾아갔다. 그녀는, 시간은 항상 미래로만 흐르진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의 궤적을 훑어보고 반추해야 미래가 열린다는 것도.


주한은 처음엔 상담을 통해 예주의 내면을 퍼올리려 했지만, 정작 주한의 깊은 심연을 끄집어낸 건 예주다. 예주는 주한의 내면심리를 비추는 탐조등이다. 깊숙이 숨어 있는 욕망을 집요하게 건드린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무엇이 나치즘을 탄생시킨 것인가에 대해, 그 대답을 서양철학이 쌓아올린 관념론 내부에 존재하는 이성의 폭력성에서 찾아냈다. 주한이 예주에게 보여준 상담의 의연함은 어쩌면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이들이 말하는 ‘이성’이라는 폭력성을 하는 게 아닐까?


마지막 장면에서 우조에 얼큰하게 취한 조르바(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인물) 주한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예주가 있는 호텔로 달려간다. 그 순간 그에게 ‘이성’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작가는 주한의 욕망을 절정으로 끌고간다. 독자의 마음까지 공범으로 만든다. 성의 본능과 윤리의 경계선 사이에서 긴박한 상황에 독자는 몸을 떤다.


‘이성의 충고에 아랑 곳 하지 않고 몸은 유혹의 신호에 반응하고 있었다. 전신의 핏줄은 터질 듯 팽창돼 뜨겁게 달아올랐다. 심장은 뛰는 속도를 점점 높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문 손잡이를 잡은 손에 땀이 배고 부르르 경련이 일었다. 머릿속 전쟁터에서 어느 한쪽이 승리하지 못해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 그때, 오른손이 제 멋대로 문을 닫아버렸다.’p180


책에서 ‘유전적 성적 이끌림’(GSA, Genetic Sexual Attraction)이란 용어가 나온다. 부모 자식간 또는 남매처럼 유전적으로 동질을 보이는 두 사람이 아주 오랜 시절 헤어져 만나지 못하다가 성인이 되어 처음 만나면 상대에게 성적으로 큰 매력을 느끼고 빠져들게 된다는 것. 근친간에 발생하는 성적 충동이다.

이 말이 맞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어쩌면 아주 오래 전에 혈연 공동체의 뿌리에서 연류된 건 아닐까? 우리는 어차피 한 줄기에서 나왔으니 유전적인 유기체로 묶여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싸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욕망일까? 계속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인생에서 해답을 찾는 과정이 해답 자체보다 더 중요한 때가 많다. 예주는 복수,라는 멋진(?) 결말을 기대했지만, 과정은 또다른 변수를 만난다. 친아빠에 앞서 남자로서의, 주한의 욕망을 발견하지만 더불어 고뇌까지 알아차린다. 예주의 복수는 결국 자신의 출생에 대한 근원적 불안을 해소하는 데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파리에서 보낸, 예주의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5년간 복수만을 다짐하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어요. 인생 단 하나의 계획이 사라진 지금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요. 가끔, 아주 가끔..... 희망 같은 게 몸속에서 꿈틀거리며 머리를 쳐들라고 해요. 하지만 난 이놈과는 단 한 번도 친하게 지낸 적이 없는데. p213'


작가는 예주가 원하는 결말을 에필로그를 통해 비춘다. 성경의 욥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의인은, 향나무처럼 그를 치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주한이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 위해, 그 대가로 마음 속의 어둠을 내어주는 행위는, 도끼날과 향나무 향의 비유와 오버랩된다.


마지막 문장에서 다음 장면이 궁금해졌던 게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만남이 이어지고 무슨 말을 할까? 과연 사랑할 뻔한 남녀가 부녀지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증이 일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던 검은 실루엣이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p225'


하지만, 이 서평을 쓰는 마지막 순간에 깨닫는다.


사랑이니 욕망이니,를 넘는 상위개념은 희망이고 숨겨진 본능이라고. 인간 내면에 도사리며 꿈틀거리는 것이 희망이라고.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여러 생각이 스며들었다. 결국 에덴의 선악과는, 신도 알고 있는 인간의 욕망 본연이다. 그래서 버림받은 에덴의 동쪽에서도 희망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P.s


이 책을 잡고는 다 읽을 때까지 놓지 못하고 밤을 샜습니다. 심리학 전문 출판사인 학지사에서 처음 심리소설 출간으로 이 책을 꼽았다는 것은 이미 검증이 끝난 거라고 볼 수 있죠.

인간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과 비틀어짜낸 이성의 벽들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사랑과 욕망의 경계는 무엇일까 질문하게 됩니다.

 심미적 묘사와 예술적 도구, 문학적 감성이 곁들인 심리소설... 읽어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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