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간호사 60주년에 즈음해
최근 독일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는 어떤 분에게서 메일을 받았습니다. 자료를 찾다 모 신문사 연재칼럼을 쓴 저의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으로 엮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칼럼내용을 추가, 확장해 쓴 글이 <흔적>이라는 인터뷰 에세이입니다. 그 이전 2016년에 <나는 파독 간호사입니다>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책을 읽어보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책을 받으려면 요즘엔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양상입니다. 그가 ‘비용을 드릴테니 보내주십사’고 조심스럽게 말하더군요. 저는 좋은 일에 활용하는 것 같아 그냥 선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책들과 독일 디아스포라 관련 도움될만한 책을 몇 권 모아 보내드렸습니다.
제 책이 누군가의 집필에 도움이 된다면 저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종종 제 개인 메일로 학생이나 교수, 단체 등에서 연락을 주곤 합니다.
어떤 경우는 독일로 오래 전 떠난 지인, 심지어 가족간 연락이 두절되어 찾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한 분은 자신의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돌아가시는 상황인데 파독 간호사였던 초등학교 제자를 찾고 싶어해 수소문해 알려드린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파독간호사들의 연극모임을 이끌고 있어 여러모로 소식을 알 수 있는 통로가 있습니다. 다른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 또한 한 다리 건너면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저래 저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오는 일도 아니고 시간이 소요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도와드리는 것은 제가 독일에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소명인 것 같아서입니다.
사실 제 책은 학술서도 아니고 더욱이 소설도 아닙니다. 에세이 식으로 파독 근로자들의 젊은 시절을 단편적으로 써내려간 쉽고 편한 글입니다. 그러기에 전문적인 자료를 원할 경우엔 다른 여타의 책들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독일에 와서 우연히 알게 된 분을 통해 처음, 파독 근로자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들의 청춘의 수고가 가련하고 가슴이 아파서 도와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알아갈수록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도움을 필요로 한 분들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방인으로서 정서적인 부분에 결핍과 외로움이 컸지요.
독일의 노인복지 제도는 우리의 것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일을 한 근로자들은 노년에 연금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당시 서독에 파견되었던 근로자들, 특히 간호사들의 근무여건은 아주 좋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병원에 한인 간호사들이 많을 경우 작은 게토를 형성해 서로 도울 수 있어서 일하기도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그중에서 수간호사들도 여럿 배출되었지요.
게다가 독일에 와서 공부를 해 꿈을 이룬 분들도 있습니다. 의사가 되거나 다른 직종의 공부를 한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자녀들 교육은 어느 민족도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가르쳤지요.
이제 그들은 앞만 보고 달렸던 청춘을 보내고 노년의 언덕에 서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파독 간호사, 하면 존경스럽게 바라봅니다. 열심히 달려온 파독인들에 대한 박수갈채가 많습니다.
아는 파독 근로자 분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단지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스스로 독일에 왔는데 살고 보니 국가를 위한 애국자로 칭송받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국가를 위해 독일에 일하러 왔다기 보다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 발전에 이바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수고를 폄하하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처럼 그 당시에 국내에서 보릿고개를 넘기며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청춘들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독일에 있던 분들은 좋은 환경에서 좋은 월급으로 훨씬 선택받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독일에 와서 살다보니 더욱 느끼게 됩니다. 지금도 독일이 선진국이지만, 그당시에 독일의 근무여건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로왔습니다. 사실 이렇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치매 관련 연극대본을 쓰기 위해 직접 독일병원과 양로원에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생각이 있는 소수의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은 국가적 영웅으로 추대되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합니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 파견 근로자들과 그 이전에 멕시코, 하와이, 고려인들의 서글픈 이주 등이 더 아프고 어쩌면 더 진정한 대한민국의 소외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사는 생각이 있는 분들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독일 삶이 비단 한 정치인의 업적으로 남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국가간 차관을 위해 노예처럼 팔려온 것이 아닙니다.
파독 간호사는 불쌍한 코스프레의 주인공이 아니고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 떠났던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 독일에서의 노년은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40년 이상을 일한 그들에게 연금으로 보답합니다.
복지국가, 독일입니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독일에서는 오래전부터 복지체계가 잘 잡혀져 있습니다.
물론 젊을 적 근무하면서 중간에 한국으로 돈을 보낸 이들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식구들이 워낙 못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한국과 독일의 돈 가치 차이가 어마어마했지요. 독일에서 보낸 돈을 한국 가족들이 착실히 모은 분들은 제법 재산가들도 있습니다. 한국에 부동산 거품이 한창일 때 집을 산 이들은 짭짤한 재미를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돈 때문에 가족들에게 배신을 당한 이들도 있지요. 나 몰라라 하기도 하구요. 어디서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희노애락입니다.
저는 <나는 파독간호사입니다> 책을 통해 그들의 사랑, 이별, 죽음, 출산 등에 대한 인간적인 면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그들 여성들이 독일 땅에서 어떻게 독일남편과 결혼했고, 이별했고, 한국 가족과 관계성을 가졌는지 지극히 소시민적 시각에서 다뤘지요. 그래서 묵직한 학술서를 기대한다면 절대 이 책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단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싶지 않았고, 독일 공동묘지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갈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맏언니가 독일에서 산 세월을 작으나마 공감해보자는 것이었죠.
청춘의 꿈을 안고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 이국만리까지 떠나왔던 그들 삶의 투쟁기를 소소하고 진솔하게 들을 수 있는 책입니다.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당당하고 독립적으로 살아낸 여성 21명의 이야기를, 저는 딱딱하지 않게 문학적이고 서정적인 어조로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내년은 파독 간호사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 내년에 열릴 내한공연 연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팔십에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파독 간호사들이 무대에 서는 연극입니다. 어쩌면 살아 있는 육성으로 그들의 인생 마지막 연극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들의 지나온 삶에 대한 위로와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어눌하고 느리지만, 어떤 프로연극에서 볼 수 없는 생생하고 진정성 있는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역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요.
이 연극을 준비하기 전에 많이도 고민했습니다. 왜 나는 늘 이렇게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는 일에 투신하는 것일까? 그것 또한 어쩌면 나의 소명인 것 같습니다. 제가 독일에 온 것도 우연이 아니었을테니까요. 삶은 우연인 것 같지만, 소명의 덩어리로 반죽되어 만들어져갑니다. 그래서 묵묵히 이 길을 걷습니다.
연극 연습에 앞서 이 책을 부끄럽지만 소개합니다.
혹시라도 관심 있는 분들, 연극공연을 지원하고 싶은 분들의 연락 기다립니다.
목차
프롤로그 그녀들의 영혼은 소녀의 날 것이었다
1. 자유를 찾다, 생의 의미를 찾다 _ 이묵순
2. 춤은 내 아픔의 치료제 _ 김금선
3. 20대 청춘의 반을 동독 형무소에서 _ 장현자
4. 딸의 영화에서 나를 찾다 _ 방영숙
5. 간호사, 엑스트라 배우, 자원봉사자까지 _ 김은숙
6. 해군장교의 제복을 벗고 _ 박화자
7. 노년을 사는 해법, 배움 _ 박말숙
8. 거침없는 인생, 아우토반처럼 달리다 _ 노미자
9. 아버지, 마지막은 사랑이었네 _ 박애자
10. 어느 날 노래가 내게로 왔다 _ 박모아 덕순
11. 미지의 땅을 향한 호기심 _ 안영임
12. 더 이상 간호사가 아닌 의사 _ 이민자
13. 코리안 나이팅게일 정신을 실천하다 _ 정유선
14. 인생은 내 길을 달리는 마라톤 _ 윤승희
15. 누구나 인생의 밤에서 낮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있다 _ 이영숙
16. 35년 후 마지막을 함께한 효부 _ 한도순
17. 고통이 꿈을 꾸게 한다 _ 석봉건
18. 우리는 국제시장 부부 _ 안덕례
19. 벼랑 끝 바위 위에 올라섰지만 _ 정광수
20. 릴케의 향기가 나는 아버지의 편지 _ 김종숙
21. 성실의 열매는 달다 _ 김도남
에필로그 살아남은 자들이 재발견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파독 간호사들의 희노애락 사진모음
울산매일 오피니언 칼럼에 실린
<나는 파독간호사입니다/ 정한책방>에 대한 글이 있어서 함께 올려봅니다
https://m.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4428744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