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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둘 Aug 11. 2023

만봉

밖으로 나온 준석은 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부?”

“예, 처형! 접니다.”

“제부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장인어른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럼요, 지금 TV 보고 계세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죠?”

“처형! 오늘은 집에 돌아가셔서 편하게 쉬십시오.”

“네?”

“오늘은 제가 장인어른이랑 같이 자겠습니다.”

“아니에요, 제부도 직장 다니느라 피곤한데 일부러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너무 죄송해서 그럽니다. 처형 혼자 고생하시는 것도 면목 없구요.”

“우리 아빠인 걸요.”

“저는 사위도 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은수가 바빠서 신경을 못 쓰니 은수 대신 제가 오늘 모시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집에 가셔서 푹 쉬세요.” 

“정말 괜찮은데......”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니 형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시고 월요일에 오십시오. 제가 주말 내내 있겠습니다.”

희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아무 걱정 마십시오. 저 30분 내로 도착합니다.”

전화를 끊고 희수는 침대에 앉아있는 만봉에게로 갔다. 혼자서 중얼거리던 만봉이 희수를 보자 정색을 하고 입술을 꽉 물었다.

“아빠! 오늘은 서서방이 여기 와서 자겠다고 하네.”

“누구?”

“서서방! 은수 남편!”

“아! 둘째 사위?”

“맞아.”

“둘째 사위가 지금 오겠대?”

“응, 와서 주말에 아빠랑 있겠대.”

만봉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찡긋해 보였다. 희수는 짧게 숨을 내뱉고 만봉의 옆에 앉아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소변 참는 게 어려우면 그냥 기저귀 입고 있어. 서서방은 남자니까 도와달라고 해도 돼.”

“기저귀 안 입는다니까!”

“바지에 실수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그만 가봐.”

만봉은 상기된 얼굴로 희수에게 손을 내저었다.

“아빠 왠지 서서방을 기다리는 눈치네.”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던 만봉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했다.

“기다리기는 누가 기다려, 그냥 너 집에 가서 강서방 단속 잘하라고 그러는 거야.”

잠시 후 준석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처형! 장인어른!”

준석의 목소리에 희수가 거실로 나오자 만봉도 침대에서 내려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희수를 따라 쪼르르 거실로 나왔다.

“어! 그래, 둘째 사위 왔는가?”

“네! 아버님! 저 왔습니다.”

만봉은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다가가 준석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래, 물건은 가지고 왔나?”

만봉의 말에 준석은 굳은 표정으로 희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게......”

“물건? 무슨 물건?”

희수가 동그란 눈으로 만봉과 준석을 번갈아 봤다.

“아! 그게... 그러니까... 말하자면... 음....... 맞아! 아버님께서 화투를 좀 가져오라고 하셔서요.”

“그래 맞아, 화투!”

당황한 표정의 만봉이 큰 목소리로 얼버무리고 희수를 흘깃 보았다.

“화투는 갑자기 왜?”

“어? 그냥 하도 심심해서 그런다. 그래, 화투는 가져왔나?”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제가 급하게 오느라 깜빡했습니다.”

“자네는 나이도 젊은 사람이 왜 그 모양인가! 그건 그렇고 희수 너는 얼른 가봐라.”

만봉을 빤히 보던 희수가 준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은수도 알고 있어요? 제부 여기 온 거?”

“은수는 피곤해 보여서 그냥 말없이 왔습니다.”

“그랬군요, 아무튼 너무 고마워요.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요, 걱정 마십시오.”

다시 한번 준석과 만봉을 바라보던 희수는 겉옷을 챙겨 일어났다.

“아빠! 그럼 서서방이랑 잘 지내고 계세요. 월요일에 다시 올게.”

“그래, 알았으니까 얼른 가!”

“제부! 부탁해요.”

희수는 준석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서 희수를 배웅한 준석은 현관문이 닫히자 만봉의 곁으로 왔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안주머니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다.

“이건가?”

“네, 그렇습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는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어떻게 구했나?”

“아, 그러니까.”

당황한 준석이 더듬거렸다.

“훔쳤나?”

“실은 누가 구해다 줬습니다.”

“누가?”

“그냥 아는 누가요.”

만봉은 비닐봉지 안에서 약병을 꺼내 들었다.

“정말 이걸 먹으면 편하게 잠들 수 있다는 말이지. 영원히!”

“영원히요?”

“그래, 영원히!”

준석은 그 말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럼 이걸 언제 먹는담?”

“아버님! 이걸 당장 드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아직 정신도 맑으시고 몸도 건강하신데요.”

“그럼 언제 먹으라는 말인가?”

“음, 뭐 몸이 너무 많이 아파서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을 때, 아니면 음,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 때 뭐 그때쯤이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먹어야 하네, 난 이미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거든.”

“네?”

“자네 아나? 나 얼마 전에 바지에 오줌을 쌌다네, 희수 몰래 바지를 빨려고 했는데 들키고 말았지 뭔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아무리 딸이라지만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나?”

“아버님.......”

“어제는 희수가 내 기저귀를 사 왔어. 제 아빠 기저귀를 손수 사야 하는 그 아이의 맘은 또 어땠겠나?”

준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만봉을 보았다.

“내가 그런 모습까지 보이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더군다나 내 마누라는 이미 저 세상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데.”

만봉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준석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손에 통장과 도장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자! 이거!”

만봉이 준석의 손에 통장을 쥐어주었다. 준석의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아버님!”

만봉은 흐느끼고 있는 준석의 어깨를 다시 토닥였다.

“자네 나한테 미안한 마음 가질 필요 없네. 내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 걸 자네가 도와준 셈이니.”

“안 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약은 제가 다시 가져가겠습니다.”

흐느껴 울던 준석이 통장을 만봉의 앞에 내려놓고 비닐봉지를 끌어안았다.

“이러지 말게.”

“제가 절박한 나머지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봅니다.”

만봉은 무릎을 꿇고 있는 준석에게 바짝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난 이미 몸도 마음도 모두 망가졌다네, 사실 희수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요즘 내 눈에 수십 년 전에 죽은 형도 보이고 가끔 마누라도 보인다네. 물론 마누라는 나에 대한 원망이 너무나 깊어서 같이 교감을 나누지는 못하지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준석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내 몸이 그만큼 고장 났다는 뜻이네.”

“그렇다 해도......”

“난 늘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네.”

만봉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 년 전 우리 마누라가 죽던 그날 내게 세상은 끝이 났거든.”

만봉이 손을 들어 소맷부리로 자신의 눈 끝에 고인 눈물을 찍어냈다.

“내내 죽는 방법을 고민하던 내게 언젠가 TV에서 봤던 드라마가 떠올랐지, 그래서 알게 됐네.”

“뭘 말입니까?”

“죽는 방법 말이야, 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수면제를 먹고 죽었지 뭔가.”

준석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만봉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아름다운 배우였지, 꽃보다도 아름다운 배우가 꽃처럼 예쁜 나이에 수면제를 먹고 죽는 모습이 내게 꽤나 충격이었네.”

“그건 드라마일 뿐인데요.”

“자네 모르나? 드라마는 우리 인생과 똑같네.”

만봉은 꽃처럼 예쁜 여주인공의 얼굴이 떠오른 듯 멍한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수면제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어. 우리 형한테도 말했는데, 아! 요즘 우리 형이랑 대화도 한다네, 아주 심도 깊은 대화지.”

“형이요? 아! 그 수십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그래, 형한테 말했지, 내 재산을 다 줘서라도 죽을 만큼의 수면제를 구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노라고.”

준석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니 자네가 내 마지막 소원을 이뤄준 셈이야. 난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진심일세.”

준석은 흐느끼며 품에 꼭 안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서 놓았다. 만봉은 그런 준석의 어깨를 토닥이고 비닐봉지를 주워 들었다.    

 

만봉의 집을 나선 희수는 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아빠한테 무슨 일 있어?”

은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니, 나 오랜만에 집에 가는 중이야. 너 아니? 제부가 아빠 집에 있는 거?”

“뭐? 그렇게 나가더니 아빠한테 간 거였어?”

“은수야! 제부 좋은 사람이야. 난 살면서 그렇게 착한 사람은 보지 못했어.”

“그 사람 착한 건 나도 알아, 그런데 착하기만 해서는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려우니 문제지.”

“그렇다고 제부가 잘 못 살아가는 건 아니잖아.”

“모르겠어, 요즘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도통 말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야.”

“네가 참고 기다려 줘 봐. 좋은 사람이니 방황하다가도 곧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아까도 어디 가는지 말도 없이 집을 나갔는데 약봉지를 가지고 나갔더라고.”

“약봉지?”

“요즘 두통이 심해서 먹는 거라는데 모르겠어.”

“그래?”

“그런데 버럭 소리 지르고 간 데가 아빠집이란 말이야?”

“그래, 덕분에 주말에 난 휴가를 얻은 기분이야.”

“언니 고생 많은데 주말이라도 집에서 형부랑 푹 쉬어. 늘 언니한테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해.”

통화를 하는 희수의 얼굴에 오랜만에 편안한 미소가 지어졌다.

“참! 너 다음 주 수요일 하루만 아빠 좀 봐주면 안 되겠니?”

“수요일? 무슨 일 있어?”

“시어머니 생신인데 집으로 이모님들을 초대하고 싶어 하셔.”

“참, 언니 시어머니도 별나. 요즘 누가 생일을 집에서 한다고 그래?”

“그러게 말이야.”

“알았어. 회사에 하루 휴가 내 볼게.”



“자네 이리로 와 볼 텐가? 내가 우리 형을 소개해 주겠네.”

“네?”

만봉은 준석의 손을 끌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대봉이 침대 발치에 앉아있었다.

“형! 우리 둘째 사위야, 참 믿음직스럽게 생겼지?”

만 봉이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활짝 웃으며 말을 하자 준석은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서서방! 혹시 보이나? 우리 형이 여기에 앉아있네. 인사하게.”

준석은 만봉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어색한 동작으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은수 남편입니다.”

인사를 한 준석은 만봉의 눈치를 살폈다.

“응, 형이 반갑다고 하는구만, 비록 내 형이긴 하지만 모습은 일곱 살 때 죽은 모습 그대로라네.”

“네,”

“비록 어린아이 모습이지만 내 형님이니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이야.”

“죄송하지만 제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가? 아쉽구만, 지금 보니 우리 형은 어린 시절 내 모습을 꼭 닮았네.”

만봉은 대봉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귀여웠었는지 자네 아는가?”

“알리가 없잖습니까.”

만봉은 일어나서 침대 옆 협탁에서 오래된 앨범을 꺼냈다. ‘끙’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 다시 앉은 만봉은 누렇게 바랜 앨범을 열어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만봉이 발가벗은 모습으로 정면을 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것 좀 보게, 이게 내가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이라네.”

준석은 사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귀여우십니다.”

“그렇지?”

옛 생각에 젖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던 만봉은 사진과 대봉을 번갈아 살폈다.

“형은 나를 정말 많이 닮았군, 이상하군 그래, 어렸을 때 형은 엄마를 닮아서 아주 예쁘다고 했었는데.”

만봉은 다시 앨범을 뒤적여 대봉과 만봉이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사진과 대봉을 번갈아 보았다.

“서서방! 이 사진 좀 보게. 여기가 우리 대봉이 형인데 지금 앞에 있는 형은 대봉이 형이 아니라 오히려 내 모습을 더 닮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아버님! 제 눈에는 통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가?”

만봉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형이 대답해 봐! 왜 형은 예전의 내 모습을 더 많이 닮은 거지? 설마 대봉이 형이 아닌 거야?”

그때 대봉이 말했다.

“난 처음부터 네 형이라고 한 적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네가 대뜸 형이라고 불러서 그냥 내버려 뒀던 거야.”

“그럼 대체 넌 누구야?”

“나도 몰라.”

“설마 나야?”

“그럴지도 모르지.”

“진짜야?”

그 순간 만봉의 얼굴에 존재하는 구멍이란 구멍은 모조리 활짝 열렸다.

“아버님! 괜찮으십니까?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나였어!”

“네?”

“어쩐지 생각해 보니 우리 형은 이렇게 못 생기지 않았었어. 엄마를 닮아서 아주 예쁘게 생겼었지. 나야 아버지를 닮아서 이 모양이지만.”

준석을 보던 만봉이 다시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넌 대봉이 형이 아니라 만봉이 나였던 거야.”

“그럼 앞으로 날 형이라고 하지 말고 만봉이라고 불러.”

대봉이 말했다.

“만봉이? 내가 만봉인데, 너도 만봉이, 그렇구나, 만봉이 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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