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가치관과 삶
▲ 백설이 내린 내 오랜 친구 © https://www.deviantart.com
나는 하루에 평균 세 번 정도 거울과 대면한다. 아침에 일어나 매무새를 만질 때, 점심과 저녁 두 번의 식사 후 양치할 때이다. 나와 마주하고 있는 거울 속의 나에게 가끔 질문을 한다.
“너 누구니?”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이 진심으로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발을 쓴 듯 하얀 머리, 작아진 눈, 탄력을 잃은 피부, 고르게 분포된 얼굴주름과 더불어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얼굴 형태의 변화이다. 중력에 의해 내려앉은 양볼은 얼굴을 사각형으로 만든다. 네모난 얼굴은 발달한 광대나 골격 때문이라는 생각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일방적으로 변형되는 네모난 얼굴로 인해 한 가지 이론을 보태게 된다.
여자가 나이가 들면 ‘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인 듯하다. 자연 그대로 늙는다면 말이다.
이 나이에도 나는 병원이 무섭다. 병원 가는 날은 집에서부터 혈압과 체온이 오르고 정작 병원에 도착하면 고혈압 환자가 될 지경이다. 정기검진과 예방접종의 경우에는 한참을 기다려 진정을 한 다음에 혈압측정을 하고 체온이 안정된 후에야 주사를 맞곤 한다. 검진을 모두 마친 후에 마지막으로 혈압측정을 다시 하기도 한다.
주사를 맞거나 혈액검사를 할 때는 매번 진땀을 뺀다. 민망해서 간호사 선생님에게 어색하게 말을 건넨다. “이 나이에도 긴장하는 내 모습이 한심합니다.” “아니에요, 병원에 오면 다 그래요.” 그렇게 너그러운 위로를 받으며 눈을 질끈 감는 나는, 젊음을 위해 얼굴에 무언가를 시도하는 일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니, 나는 한국의 독보적인 의술을 이용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실은, ‘병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긴장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엄마와 함께 사계절이 바뀌는 동안 내내 병실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데, 엄마의 심장상태가 불안해서 집보다는 병원에서 지켜보는 것이 안전하다는 판단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병원장이자 엄마의 주치의셨던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오랜 친구분으로 각별한 배려를 받으며 지냈지만, 병원의 기억은 여전히 나를 우울하게 한다. 생활전반의 상황이나 인간관계에서 대응자세가 상당히 용감한 편인데도 병원을 대하는 자세는 극복될 수 없는 부분이다.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신지 아득한 옛날인데도, 나 스스로 내 모습이 이해되지 않지만 어쩔 도리는 없다.
세월 따라 나와 함께 가는 백발과 주름살은 이미 오래된 친구사이다. 처음 받은 여권과 갱신된 여권, 새로 발급된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의 얼굴은 나도 모르게 달라진 내 얼굴을 고스란히 전시해 주고 있다.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해 주는 신분증 위의 사진들은 참으로 정직하다. 서류를 정리하며 찾아본 일생의 모습들이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지금껏 건강하게 잘 살아온 나에게 칭찬과 고마움을 전한다. “남아있는 날들도 바른 마음과 건강한 몸으로 잘 살아보자.” 거울 속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