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신비한 방정식

영화 #12 뷰티풀 마인드

by 천생훈장

론 하워드 감독, 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에드 해리스 등 출연, 2001년


1948년에 출범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창립 헌장에서 건강을 “단지 아프지 않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라고 정의하고 있다. 참으로 완벽해 보이는 정의이지만, 이 기준대로 한다면 누구라도 살면서 단 한순간이라도 완전히 건강해 본 적이 있을까.


영화는 조현병 환자이자 수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John Forbes Nash Jr.)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조현병은 대표적인 정신증(Psychosis) 질환으로 우리가 흔히 ‘미쳤다’라고 표현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조현병이라고 할 만하다. 과거에는 그리스어로 분열을 뜻하는 schizein, σχίζειν과 마음을 의미하는 phrēn, φρεν에서 유래한 영어 병명인 Schizophrenia를 그대로 번역한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렸지만, 병명이 주는 오해와 편견이 커서 2010년 3월부터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의 조현병(調絃病)으로 바뀌었다. 현실 인식의 심각한 장애, 자아 경계의 붕괴, 망상과 환각, 기괴한 행동 등의 증상을 보이지만 이런 증상은 꽤 진행된 다음에야 주위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 법이라 초기에는 본인도 주위 사람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병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해서 평생에 걸쳐서 진행되지만, 제대로 치료하기만 하면 다른 만성 질환처럼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병이다.

실제로 병의 진행이 그러하므로 영화에서 주인공 존 내쉬의 조현병 투병 과정도 거의 평생에 걸쳐서 그려진다. 영화는 존이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과정에 입학하는 시기부터 시작하는데, 뛰어난 천재이고 야심만만하지만 어딘가 사교적이지 않은 모습에서 이미 불길한 전조가 암시된다. 존은 학위 취득 후 국방 관련 연구소에 일자리를 얻지만 수년에 걸쳐서 망상과 환각이 극적으로 증가하다가 결국 조현병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된다.

이후 그는 수십 년에 걸쳐서 서서히 병으로부터 회복되고, 일상생활과 지적인 학술 활동을 다시 찾아가는 길고 험난한 과정을 지나 무려 45년 만에 대학원 시절에 쓴 게임 이론에 대한 논문의 업적이 인정되어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앞서 이야기한 WHO의 정의대로라면, 존 내쉬는 전혀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평생을 지낸 셈이다. 그가 이룬 업적이나 노벨상으로 대표되는 사회적인 인정과는 별개로, 그의 인생 궤적은 완전한 안녕 상태와는 너무너무 거리가 먼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힘든 인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건강하지 않거나 불행하기만 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고통 가운데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끊임없이 애쓰고, 아내 알리시아와 친구들의 지지와 도움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옹글게 세워 나가는 모습은 치열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누구라도 삶의 어느 시기나 어떤 영역에서는 불건강하고 힘들 수 있겠지만, 그런 고난과 어려움도 실은 삶의 한 부분이며 그런 시간과 경험이 이리저리 모이고 엮어져서 만들어 내는 한 인간의 삶 전체의 빛깔은 다른 사람이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


우울감이 너무 심해서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면 병적인 우울증으로 진단하고, 손 씻기나 정돈하기에 너무 집착해서 역시 일상이 문제가 될 정도라면 강박 장애라는 병명을 얻게 되는 것처럼 많은 정신과 질환은 현실인지 능력과 적응력이 중요한 진단 기준이 된다. 우울증이나 강박장애와 같은 신경증(Neurosis)이 아니라 정신증(Psychosis) 범주에 속하는 조현병과 같은 질환은 증상의 발현과 전개가 더 극적이고 뚜렷하기는 하지만, 임상적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인식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사회생활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 만큼 뚜렷하지 않을 뿐이지 우리는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을 왜곡해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조현병 환자와 일반인들 사이의 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까마득히 멀기만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사실이 그러하므로, 심리적인 상처나 방어기제가 만들어 놓은 왜곡된 현실 인식과 그 때문에 오히려 불건강해진 대응방식을 발견하고 수용하는 것이 더 건강한 마음으로 가는 길이고, 그것은 평생토록 지속되는 과정이지 특정한 시점에 완결된 상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불건강한 상태에 있고, 다만 우리 삶의 과정이 그런 심리적인 어려움을 회복하는 쪽이냐 고착되는 쪽이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방향성이 생각보다는 꽤 큰 삶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부침(浮沈)을 반복하지만, 존 내시도 그런 의미에서는 심리적인 성장을 평생 동안 이루어 나간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의 경우에는 그 과정이 좀 더 극적이기는 했지만.


영화의 전반부가 좀 지루하게 느껴지는데, 어쩌면 그조차도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의 모든 국면이 언제나 극적으로 나빠지거나 좋아지는 것은 아니므로 영화에서의 묘사도 그러해야 마땅하다 싶기도 하다.

영화의 말미에 동료 교수들이 그에게 존경의 의미로 만년필을 헌정하는 장면과, 노벨상 수상식에서 아내 알리시아를 향해 존이 연설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白眉)라고 하겠다.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존은 객석의 아내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전 언제나 숫자를 믿어왔습니다. 추론을 이끌어내는 방정식과 논리를 말이죠. 하지만 평생 그것들을 연구한 저는 묻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논리입니까? 누가 이성을 결정하는 거죠? 저는 그동안 물질적 세계와 형이상학적 세계, 망상의 세계에 빠졌다가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전 소중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발견입니다. 어떠한 논리나 추론도 사랑이라는 신비한 방정식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난 당신 덕분에 이 자리에 섰어요.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 모든 존재의 이유예요. 감사합니다.”

(“I've always believed in numbers, in equations, in logic and reason.But after a lifetime of such pursuits: I ask What truly is logic? Who decides reason? My quest has taken me to the physical, the metaphysical, the delusional, and back. I have made the most important discovery of my career - the most important discovery of my life. It is only in the mysterious equations of love that any logic or reasons can be found.

I am only here tonight because of you. You are the only reason I am. You are all my reasons. Thank you.”)


조현병에 걸린 후 두 사람은 법적으로 이혼했지만, 이혼 후에도 그의 아내 알리시아 내쉬(Alicia Esther Nash)는 존이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경제적인 뒷바라지도 했단다. 그리고 영화가 나온 해인 2001년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다시 결혼했고, 2015년 교통사고로 두 사람이 같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다. 영화에는 다른 가족 관계가 전혀 등장하지 않아서 알리시아의 보살핌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데, 현실에서의 극적인 죽음마저도 두 사람의 관계에 어떤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WHO의 건강 정의는 이상적이지만, 건강을 지나치게 고정된 방식으로 보게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후 WHO는 건강을 “주어진 조건 하에서 적절한 생물학적 기능을 하고 있는 상태(1957)”라고 실용적인 정의를 제시하였다. 결국 건강이란 어떤 고정된 상태라기보다는 끊임없는 적응 과정에 가깝고, 그 과정은 많은 사회적인 조건들이 연관되는 것으로 단순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충족될 수는 없다. 개인적인 장애나 질병이 있더라도 기능을 발휘하고 유지하는 데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그 사람은 건강한 상태로 지낼 수 있다. 시력의 저하는 일종의 장애이지만 안경이라는 보장구나 시력 교정 수술을 통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낼 수 있듯이, 우리 사회가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에 있는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조현병의 평생 유병률은 100명 당 0.5명에서 1명 정도로 생각보다 흔한 병이다. 사회적인 편견이 커서 제때 발견하고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병의 진행과 함께 가족 관계를 포함한 지지체계가 무너져 버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서 제대로 된 돌봄을 못 받고 결국 완전히 망가져 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의 탁월한 지능을 제외하고는 존 내시가 예외적인 사례가 되지 않도록, 더 많은 조현병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영화는 차분히 알려 준다. 그리고 그건 조현병 환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어렵고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더라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삶은 견딜만하고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여러 사람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그 한 사람이 되면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진실로 그런 사람이라면 외부의 조건이 아무리 삭막하더라도 내면적으로 아주 극단적인 상태에 이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이의 애정과 보살핌 없이 그런 내면의 성숙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에게 소중한 한 사람이 되도록 잘 살피고 돌보면서 살았으면 싶다. 사실은 그 한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확신할 수 없어서 벌어지는 비극들이 너무 만연한 세상을 살고 있으니까.

실제로 존 내쉬와 그의 아내는 영화에서만큼 헌신적이고 애틋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의 소중함 혹은 숭고함이 필요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래서 실제 사실이냐 허구이냐와는 별개로 영화가 묘사하는 두 사람 사이의 헌신과 사랑이 울림을 주는 게 아닐까.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나는 누구에게 그런 존재인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늘 그렇지는 못하지만, 다만 한 순간이라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지금도 외롭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가슴으로부터 보내는 기원을 드리면서 글을 맺는다.


‘그대가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평화에 이르게 되기를.

부디 그대가 평온하기를, 평온하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