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성수동에 위치한 센버스에 다녀왔다. 이색적인 북카페였다.
그곳이 내게 건넨 선물은 '다시' 였다.
센버스 앞에 도착했을 때는 걱정이 좀 앞섰다.
옛날 건물에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이 조금 허름했다.
그리고 계단 중간이라고 해야할까. 애매한 위치에 화장실이 있었다.
안을 들어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쾌적하지 않을 것 같았고 위치상 여자가 사용하기에 위험해보였다.
알고보니 다행히도 여자화장실은 카페 안에 따로 쾌적하고, 안전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잘못 찾아왔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문을 여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화장실까지 확인하고, 앞섰던 걱정이 싹 사라졌다.
건물환경을 새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카페 안은 매우 쾌적하고, 차분하고, 편안한 환경이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에, 좌석들은 감각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았던 건 페어링이었다.
중간에는 해당 책과 어울릴만한 디저트와 음료가 안내 되어 있었고, 태블릿과 헤드셋이 있었다.
책과 페어링하지 않은 단품의 디저트들이 놓여있는 방식도 이색적이었다.
디저트들이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으로 보였다.
태블릿과 헤드셋은 해당책과 어울리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페어링은 향수였다.
책과 어울리는 향수를 페어링해놓은 건 색달랐다.
책과 향수.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조합이었다.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를 발견하자마자 페어링된 향수를 맡아보았다.
진짜 책의 내용이 떠올랐고,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분위기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향이었다.
평소 책을 읽지 않아도 책 냄새가 좋아서 서점을 괜히 들려볼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책에 향수가 더해지면, 본연의 매력이 사라져서 향수랑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 밖이었다.
본연의 매력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작품과 어울리는 향과 책냄새가 만나 더 풍부하고 깊어졌다.
그 사람과 어울리는 향수를 쓰면, 그 사람만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듯이
향수가 그 작품만의 색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주었다.
페어링 컨셉의 북카페는 처음이라 새로웠다. 새로운 자극에 뇌가 말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까지 더해져서 덕분에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은 많진 않지만, 다양하게 있었다. 그곳에서 운 좋게 내 취향의 책을 발견해서 두 시간동안 푹 빠져 읽었다.
책냄새와 종이질감, 좋은 문장, 내 취향의 문체, 나와 비슷한 세계 또는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세계, 공감,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글 등이 좋아서 책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많이 읽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새발의 피지만, 책을 만나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곤 한다.
읽지 않아도 괜스레 서점에 기웃대며 책 제목들을 쭈욱 훑어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만져보거나...
또는 한 문장이라도 읽어보거나, 아예 몰입하여 읽거나...
기술이 발전한 후부터는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통해서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책을 만나는 시간이 그리 즐겁지 않았다.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했다. 읽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그런데 센버스에서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두 시간동안 흔들림없이 몰입했다.
참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의무적으로나마 책과 가까이해보려고 했던것과 달리 오랜만에 진심으로 온전히, 몰입하고 즐겼다.
그리고 그 기세가 현재까지 잔잔히 이어져오고 있다.
센버스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다시' 책을 만나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역시나, 공간의 힘은 위대하다.
장소가 주는 힘, 영향력은 틀림없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