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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회생에서 속도의 중요성

기업회생의 본질적 과제

by 겨미

기업회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속도’다. 기업의 회생절차 진행은 마치 수술 중인 환자와도 같다.

수술이 늦어질수록 환자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기업도 똑같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신속히 내리지 않으면, 시장에서의 신뢰와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회생의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법원이 도입한 ‘P-Plan(프리패키지 플랜)’이나 ‘ARS(자율 구조조정)’ 제도는 속도전을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이 제도들은 문제 기업의 재무 상태를 신속히 진단하고, 회생 계획을 빠르게 확정해 기업의 존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빠른 의사결정과 자본 유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회생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업회생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사례도 많다. 원칙적으로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으면 회생으로 가야 하지만, 그 판단은 쉽지 않다. 여기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합의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여러 채권자들이 치열하게 논의했음에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이는 그 기업이 투자 매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다. 어렵게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경영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으면 다시 회생 절차에 들어갈 위험이 크다. 회생 절차가 길어질수록 시간과 비용은 물론, 시장 신뢰도까지 잃게 되어 회생 과정 자체가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잠식시킬 수 있다.

법원이 빠르게 청산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용’ 문제다. 서류상으로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낮아도, 기업에는 많은 직원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 자산은 조각조각 매각해 채권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단번에 정리하는 일은 사회적·윤리적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경제 논리로는 신속한 청산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국가적 실업 문제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속도’와 ‘고용’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면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빠른 진행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무조건적인 속도전이 아니라 충분한 재무 검증과 현장 실사,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한다.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이라면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히 청산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반대로 회생 가치가 분명한 기업이라면, 재무·인적 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해 기업을 살리고 고용을 유지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회생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라 복잡하고 정교한 경제적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다. 고용 문제는 그중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회생 성공 가능성이 낮다면 빠른 청산으로 자원을 재분배해야 하고, 회생 가능성이 높다면 인력 재배치와 재무구조 재편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빠르면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급변하는 경제 환경과 글로벌 경쟁 속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빠른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속도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의 미래까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기업회생의 본질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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