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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Feb 01. 2024

불안한 부모, 불행한 아이

#2

"아빠가 재밌는 거 알려줄까?"


아이가 아빠 옆으로 엉덩이를 찰싹 붙인다.

올려보는 두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덧셈을 알려줄 때도

시계 보는 법을 알려줄 때도

천둥 번개가 치는 원리를 알려줄 때도 그랬다.


아이들은 생각에 빠진 듯 심각해졌다가

진지하게 끄덕이다가, 힐쭉 웃었다가 한다.

문득 떠오른 자기 얘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궁금한 부분을 묻기도 한다.


설명이 진행되다 느슨해질 만하면

다시 등장하는 아빠 멘트


"그런데, 재밌는 게 뭔지 알아?"


그리고 마무리까지.


"어때, 재밌지?"


바라보는 인영의 얼굴에 연한 미소가 번진다.


본인은 의식하는지 모르지만

인영은 남편이 즐겨 쓰는 

'재미'가 들어간 문장들을 좋아한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공부는 재밌다는 것 알려주기'로

충분하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니,

남편이 제대로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

다들 좋다니까~

원어민 1:1 과외를 시켰더니

요즘은 애가 외국인만 보면 도망 다녀요.

외국인들은 자꾸 자기를 귀찮게 한다네요."


민호 엄마는 언제 봐도 참 밝다.


가벼운 대화에 웃어넘겼지만, 

잠시 인영의 머릿속에는 수업을 싫어하는 민호의 모습이 스쳤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친한 사이라도 개인적인 조언은 하지 않는다.

각자의 믿음과 선호하는 방식이 있으니까.


"영어 조기 교육에 반대하는 전문가도 있더라고요."


의견을 섞어 슬쩍 뱉고 말뿐.


/

그러고 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알아보고 결정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정보 검색을 할 때마다 인영이 느낀 건

커뮤니티는 불안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시생 카페는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이 너도 나도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다. 출산 커뮤니티는 아이를 힘들게 낳은 사람들이 죽을 뻔한 경험을 전한다. 


막상 시험에 합격하고 아이를 수월하게 낳은 사람은 대부분 입을 다문다. 괜히 나서서 자랑처럼 자기 이야길 꺼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휩쓸리기 쉬운 세상, 

인영은 기준을 세웠다.


아이를 위한 선택인지
나를 위한 선택인지

아이가 원하는 것인지
나의 욕심인지

사랑 때문인지
불안 때문인지


어느 부모인들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까?


선택의 근거가

사랑인지 불안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지만

불안은 대게 조급하며 방법에 집착한다.


결핍에 뿌리를 둔 불안은

멈춰있음을 견디기 힘들어 기다리지 못한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뭔가를 찾는다.


사교육 시장은 학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우리 아이는 나보다 잘했으면 좋겠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주고 싶은데..."

"우리 애만 떨어지는 것 아닐까?"


두려움을 자극하면 돈이 된다.

이렇다 저렇다 새로운 내용도 많고

이것도 저것도 하면 좋단다.


금방 마스터하면 돈이 안 되니까,

안 해도 될 프로그램이 펼쳐져 있으며

안 해도 될 레벨이 설정돼 있다.


말 그대로 과잉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모두가 다 하는 세상에서

소신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역시, 안 시키기엔 불안하기 때문이다.





인영 부부는 소위 명문대를 졸업했다.

남편은 박사 후 과정까지 원 없이 공부했고

인영은 공부 자체를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다.


스무 살 이후 아버지는 인영을 '헛똑똑'이라 부르셨다.

신동소리를 듣던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돈을 버는 능력이나 행복하게 사는 능력은

공부를 잘하거나 좋아하는 것과 별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적 재능보다

삶을 대하는 성격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이것을 절실히 느낀 인영과 별 거 없음을 아는 남편의

교육 철학은 확고했다.


일단 '월등히 잘해야 한다'는 목표가 없다.

무리해서 공부하길 원치 않는다.

자신감을 잃지 않고 교과과정에 따라갈 정도만 된다면

당연히 비교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뛰어난 아이가 되길 바란다면

'다르게 키워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너는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당장 흡족하게 못한다고 다그치며

부모도 자식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상당 부분 부모의 고정관념(공부를 잘해야 잘 산다)에 근거한다.


조금만 찾아봐도

아니 찾지 않고 잠시 생각만 해봐도

공부를 못해도 잘 산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 아이가 공부를 안 하는 상황

-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부모의 불안(두려움)

둘 중 무엇을 먼저 개선해야 할까?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할 아이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한다.


부모의 역할은 동기를 가질 수 있게 돕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잘하든 못하든

존재 자체로 아이를 존중하고 믿어주는 것이다.


믿음 속에 사랑을 느끼며 자란 아이는

자존감을 갖고 실패를 극복하고 도전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

아이를 위한 선택인가?
나를 위한 선택인가?

아이가 원하는 것인가?
나의 욕심인가?

사랑 때문인가?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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