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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Apr 19. 2024

부재는 현존, 삶과 죽음이 하나

아빠를 향한 기도

연락하면 받을 수 없고
집에 가도 만날 수 없고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사실입니까?

사랑스러운 그 미소와
자상한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사실입니까?

현실은 꿈이기에
한낮 꿈이니까...
그런 꿈을 꾸고 있다고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까?


울컥 올라오는 토기를 다시 삼킵니다.
무서워 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아빠의 흔적을 보며 웃는 우리가 이상하다가도
인정하기 가슴 시려 외면하고만 싶습니다.


하얀 새벽, 찬 공기
아빠를 보내는 날

고향은 아름다웠습니다.


연둣빛 언덕은 새로운 태양으로 빛이 납니다.
모든 풍경은 고요하고 깨끗했습니다.

아빠를 사랑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그 천진난만한 영혼을 사랑합니다.

인간은 참으로 비물질이다.
썩어질 육체...
본질은 영혼이다.
자유와 평화, 안식...
이제 그의 영혼은 더없이 자유롭고 평화롭다.
아프지 않아 다행이다.

그렇게 되뇌고 되뇝니다.

억울하고 비통하기 싫어서
좋은 기억과 평온한 모습만 떠올립니다.

참으로 본질은 비물질입니다.
아빠의 영혼을 감싸주소서.
어린아이 같은 영혼을 감싸주소서,

...
아빠 듣고 있어?
사랑해.

거기서 보니  말이 맞지?
한낮 꿈이었던 거,
아름다운 꿈이었지?

한평생 지지고 볶고...
비탄에 빠지고 슬퍼하고 좌절하는 그 감정이
기뻐하고 환희에 찬 그 감정이
환영 같은 영화에 너무 몰입됐던 거지?

아빠와 나는 정말 각별했던 거 같아.
나 아빠가 정말 좋았어.
우리 아빠 최고야.

살아계신 동안,

아빠에게 해주고 싶었던
돈 잘 버는 명예로운 딸은 못했지만...
이제 나도 자유롭게,
가짜 자기가 만든 집착을 벗어나
진짜 자기가 열망하는 일들을 할게.

나 아빠의 기대를 저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쉬웠는데...
살아생전 그렇게 못해서 너무 미안했는데...

영혼으로서 아빠가 바라는 일
이제는 그 일을
멋지게 해낼 거라...
살아생전 아쉬움 없앨 만큼
남은 내 생애 그렇게 살아갈 거라...
이제는 후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을래.


아빠는 분명 사랑하다 떠나셨고
좋은 곳에 계시니까요.

아빠의 현존을 알아요.


마지막에는 아프지 않고

그저 그 아픔을 지켜보셨다는 것도 알아요.

먼저 가신 그곳에

저도 살고 있기를 바라요.
이곳이 천국인 것을 알아요.


가짜 자기가 죽었을 뿐

진짜는 영원하죠.


속이 쓰려요.
눈치 보지 않고 말할게요.

착하고 선비 같던 아빠도 이런 걸 어려워하셨죠.
제가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았었어요.
엄마가 속상해하시던 부분도 제가 가장 닮았어요.


고마워요.
아빠 손,

그때처럼 악수해 줘요.


'김경진, 잘해보자'


지금도 그렇게

손 내밀고 계신 거 맞죠?

마음속에 그렇게 오래오래 사세요.

아빠는 이제 마음속
세상 곳곳 어디에나 있으니
살아있는 동안 아빠 많이 느끼며
잘 살게요.


자랑스러운 딸
첫째 딸 경진이
잘 사는 거 지켜보세요.
흡족하게 웃어주세요.


사랑해요.
사랑해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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