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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Jul 26. 2022

잘 살고 싶어서 죽고 싶은 날

스무 살 나에게

대학에 가니,


날씬한 애들

똑똑한 애들

잘 사는 애들

천지더라.


몰랐어.


이런 나는

당당하면 안 된다는 걸.


기숙사로 올라가는 길

도서관의 불빛을 보면


그 안에서 새하얗게

지새우지 못해서 조바심이 나.


언덕 위 아래에 보이는

네온사인을 보면

내 몸은 성공하고 싶어 몸서리를 쳐.


나는 내가

더 잘났으면 좋겠어.

더 예뻤으면 좋겠어.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겠지?


나는 아직 희망이 있어.

열심히 하는 거야.

그래, 더 간절해지자.


그런데 왜 그렇지?


기숙사로 올라가는 길

커다란 나무를 보면..

성당에 가는 길

친구들과의 수다 후에도


나는 늘 외로워.


아니 그냥

외로운 게 아니라


죽고 싶을 만큼 무서워.


나 더 열심히 해야겠지?

의지를 다지면 되겠지?


그래,

클로닌

나 한번 해볼게.


그런데 클로닌

가끔 난 죽고 싶어.


아니 사실

아주 자주

죽고만 싶어.


그녀처럼

강한 여성

매력 있는 여성

지적인 여성

어느 날은 한 껏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가

어느 날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그래

클로닌

나 한번 해볼게






뭘 그렇게 자꾸

해보겠다는 거야.


그만 좀 '하고'

가만히,


숨을 쉬어.


고요히.


너 몸을 떨고 있잖아.

아기새처럼

부들부들



어떤 날은

죽어라 이를 악물고


어떤 날은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그러지 말고

가만히


숨을 쉬어봐


너의 숨에 묻혀있는

내 목소리를 들어봐.


우리가 연결되어있음을 느끼니?



나야.

미래의 내가

지금 너에게 왔어.


널 꼭 안아주고 싶어서

여기 내가 왔다고.


이 사실을 알려줄게.


넌 지금 편해졌고

행복해졌어.


광대뼈도 통통한 다리도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아.


여전히 욕심은 많지만

조급하진 않지.


지금의 너라서

이해할 수 없겠지만.


널 사랑해야 해.

지금 모습 그대로.




공허함에

과자  봉지를 내리 먹었어도

괜찮아.


딴생각에 공부가 안돼

며칠 째 계획이 다 어긋나 버렸어도

괜찮아.


자괴감에 빠진 나라도

사랑해.


끝까지 사랑해.

그냥 사랑해.

조건이 없어.


더 나아져야 사랑받을 수 있을 거란

말도 안 되는 거짓에 속지 마.


문제가 없는데

문제가 있다고 규정하고


끝도 없이 더 나은 나를 하게 만드는

자기계발의 시장, 다이어트 시장에

속아 넘어가지 마.


억제하고-무너지고-

다시 또 억제하고


그 시장 안에서 쳇바퀴 돌지 말고

과감하게 중지를 선언하고

밖으로 나와.


더 나은 내가 되려 하지 말고

본래의 너를 믿어.



너의 삶을 살아.


쉬면서 죄책감 갖지 말고

하지 말라, 이거 해라

규정하지 말고


즐거움을 따라 살아.


당당해져도 돼!

어깨를 펴도 돼!

슬퍼해도 되고

우울해도 돼!


너에게 오는

모든 감정을

저항하지 말고,

그냥 온전히


느끼고

흘려보내 봐.


지금의 나라면 하지 않을 선택을

그때의 나라서 나는 또 하겠지만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날엔,

그래도 그 고통이 지나감을 기억하길.

그리고 반드시 더 나아진다는 걸 잊지 말길.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그래도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러니 제발 포기하지 말아 줘.

지금의 편안해진 내가 기다리고 있으니


죽고 싶어도 죽지 말아 줘.

그 순간만 버티면 다시 숨을 쉴 수 있어.


너무 힘든 날엔

조용히 너의 숨소리를 들어.


거기서 우리 종종 만나기를.


떠는 너의 어깨를 꼭 감싸고

양쪽 번갈아 토닥토닥


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사랑해




- 2022.07.26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20대 여성 자살률에 관한 칼럼을 보고.




* 죽어라 하는 나에서 그냥하는 나로_

* 영혼의 숲#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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