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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Oct 04. 2023

두렵지가 않아(자책이 멈춘 날)

chapter 2. 나(자신과의 대화)

episode 6.

박격려


생라면을 씹었다.

한 손은 인스타의 사진을 훑고

다른 한 손은 밀가루를 입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퍽퍽함을 삼키면서

화려함을 넘겼다.


맛도 똑바로 느끼지 못하고

사진도 똑바로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허함을 마주하기 겁나서

멈출 수가 없었다.


가. 만. 히

그렇게 둘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자신을 만나고


산책을 하며

자연에 스며들고


욕망을 바라보고

집착을 바라보고


완전히 달라졌다 믿던 날도 있었지만

그래,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였다.


그만


그만

 

그만!!!!


박격려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소파 쪽으로 집어던졌다.


앉아있을 자신도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숨을 쉬고 있었다.


들어오고

나오고


숨이

들어오고

나오고


무엇이 허기져 이러고 있을까...


그러면 그렇지

변한 게 별로 없다.


남들은 다 부지런히 잘만 사는데

난 뭐 이리 우울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지,

한심하다. 혐오스럽다.


널브러져 있는 라면봉지

네가 아무 생각 없이 먹어치운 것들을 봐


아이에겐 성의 없이 그게 뭐야


징징하고 우는 게 당연한 아이에게

묻지도 않고 안아주지도 않고

화난 표정부터 짓고

니 맘대로 감정을 다 쏟아붓고

너 또 상처를 줬다고


오늘은 뭘 했니?

하루종일 뭘 했기에 지친 표정인 거야.

생산적인 뭐라도 있었냐고.

유의미한 아웃풋이 있냐고.


형편없는 네 모습을 봐.


한바탕 쏟아붓고 나서

그대로 누워 창밖을 보았다.


무심한 구름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가만히 가만히

구름의 움직임을 따라가다가

어느덧 다른 목소리에 닿았다.


그 생각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지.

네가 너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으니

똑같이 그렇게 되었던 거지.


눈물이 흘렀다.


좀 전까지 어딘가로 던져버리고 싶던 몸뚱이

순간이지만 칼로 찔러버리고 싶던 심정의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자학과 자해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면서도 또...

이렇게 극단적인 생각까지 치닫는 게

돌아보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서도 또...


무의식에 새겨진 습관은

이렇게 또...


박격려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어차피 지나갈 것임을 안다.

서서히 다시 구름처럼

박격려의 감정이 모양을 바꿔 움직이고 있었다.


배운 대로

알게 된 대로

이런 못난 내 모습까지도

인정할 거야.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 신음할 때도

사랑한다는

어느 성가의 가사처럼..

이렇게 나약한 자신을

내가 끝까지 품어주겠다고.


그렇게 인정한 후에

흘려보낼 거야.



원인은 늘 안에 있지.

외부의 문제가 아냐.


엉망인 상태를 바꾸고 싶다면

마음을 먼저 정돈해야 해.


이게 정말 괜찮다는 거야?

이렇게 부족해도 받아줄 수 있어?

이래도 널 사랑할래?


응 난 못난 사람이야.

불완전하고 흔들려.

부족한 엄마고

무능한 사회인이야.


하지만 사랑할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제는 안아줄래.


가장 먼저 앞장서서 비판했던 나를

가장 가혹한 규정으로

채찍질당했던 나를


이젠 내가


다들 이해 못 하고

다들 뭐라 해도


이젠 내가

래도 사랑할래.



어떤 때 그녀의 얼굴은 못된 괴물처럼 보였다.

슬픔을 간직한 무서운 피에로 같기도 했다.

박격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무서워서 귀신 이야기도 못 듣던 그녀가

겁나서 밤중에 시골길도 못 걷고

스무 살이 되어서는 어둑한 저녁 커다란 나무만 보아도 울적함에 몸서리치던 그녀가

이젠 그런 것쯤 두렵지가 않아졌다.


행여나 들킬까 잘 보이려던

익명의 시선들에게

과감히 안녕을 구했다.


사랑을 갈구하던 애처로운 몸짓이 멈췄다.


거리낌이 없어지고

눈치와 변명이 줄어들었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자유로움을 느꼈다.


사랑이 채워지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엄마가 미안해

당신에게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 미안해.


이제는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대할게


다시 또 흔들리겠지만

다시 또 돌아올게.


매일 새로운 너를

매일 새로운 내가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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