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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Nov 20. 2023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나를 증명해야만 해!

신념의 감옥을 걸어 나오다.

episode 12.

늦은 저녁 마트에 가는 길

어둑한 하늘에 노란 달이 걸렸다.


"엄마, 달은 왜 있어?"


"으응? 글쎄... 달이 왜 있을까? 음... 하나님이 만드셨으니까 있지! 여기 지민이가 그냥 있는 것처럼, 달도 그렇게 생겨났으니 저기 있는 게 아닐까?"


급히 둘러댄 대답에 아이의 순수한 질문이 이어진다.


"근데 왜 달님이 계속 우리 차를 따라와요?"


"아... 그건 말이야. 높은 미끄럼틀에 지민이가 서 있다고 생각해 봐. 그럼 엄마 아빠는 멀리서도 지민이를 볼 수 있겠지? 그것처럼 달님도 저 멀리 아주 커다랗게 떠 있어서 우리가 어디로 움직이든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사실은 달님이 움직이는 게 아니야. 달님이 너무 커서 우리가 어딜 가든 보이는 거야. 엄청 큰 달빛이 지구 전체를 다 비추는 거지."


끄덕끄덕 하는 아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시 차창 밖으로 아이가 보던 달을 본다.


그러게, 달님은 왜 있을까?

엄마는 한 번도 궁금한 적이 없었네.


달과 별이 왜 저기 있는지

나무와 산이 왜 여기에 있는지

바다와 바람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


달과 별과 산과 나무가 거기에 있기에

빛과 산소를 공급받고

바다와 바람이 여기에 있어서

시원하게 탁 트인 가슴을 누리고 있었지.


왜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달과 별과 산과 나무와 바다와 바람은

존재자체로 엄마에게 커다란 선물이었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왜 태어난 거지?
왜 사는 걸까?



이유가 없어.

그저 존재하는 거지.


지민이가 우리 아들이어서

여기 이렇게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나에게 선물이듯이


창조주에게 있어 나도

그저 여기 태어나 살아가는 것만으로

사랑스럽고 충분하지 않을까?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거야.

이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

신이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거야.


달은

저 멀리 커다란 달은,


특별히 자신을 알리지 않아도


나를 봐 달라고

내 빛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득하고 어필하지 않아도


그저 거기에 존재하며

자신의 역할을 함으로써

여기 멀리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스스로 빛나는 달은,


의도하지 않아도

그 빛으로 다른 생명을 비추고 있어.


은은한 달빛이

어떤 아이에게 꿈을 심고

어떤 어른을 위로하며

어떤 연인들을 행복하게 하지.




어떻게 하면 세상이 나를 알아줄까?
어떻게 나를 증명하지?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지.

인정을 갈구하는 내가 애처롭기도 했어.


증명해야 했지.

내가 여기 있다고.


빛을 내기 위해

겉모습을 갈고닦았어.

그 모습에 사람들이 환호하기도 하고

그 모습에 잠시 뿌듯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계속해서 부족한 것 같았지.

닦아도 닦아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끊임없는 갈증을 만들어냈어.


돈도 인기도 영원한 것은 없어.

하지만 진정한 빛은 영원하며 이미 있었지.


갈고닦기보다 먼저

겉껍질을 깨야만 하는 거였어.


깨어진 후에 비로소

본래의 빛이 나오는 거였지.


우린 모두 달이야.

어떤 달은 글을 쓰고

어떤 달은 무언가를 만들고

어떤 달은 그림을 그리고

어떤 달은 노래를 하지.


어떤 달은 아이를 돌보고

어떤 달은 노인을 돌보고

어떤 달은 사업을 하고

어떤 달은 직장을 다녀.


본래의 빛은 그대로 충만해.

그저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이야.

그것으로 자연스레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만

결과가 없어도 이미 그 과정으로 보상을 받지.


늦은 저녁 마트에 가는 길,

은영의 얼굴에 미소가 차올랐다.


달빛처럼 은은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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