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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Apr 26. 2023

지겨운 감정이 들었다.

도쿄 살이 5년차


지겹다. 요즘 내 솔직한 심정이다.


삶이 지겹다. 새로울 거 없는 하루가 지속된다.

모든 것에 무감각 해졌다. 흥분되고 기대하는 것들이 없는 요즘이다.

도쿄로 오기 전 감정들이 기억이 희미해져 버렸다. 근데 분명한 건 지겹다는 감정을 느낀 것은 내게 온 생소한 감정이란 것이다.


불안하고 초조한 적은 있었다.


도쿄로 오기 전에 다니던 직장을 관두었었다. 그 당시 마음이 진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더 늦어서 내 인생을 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진짜로 원하는 일을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직장에서 받던, 그것이 비록 작은 월급이었더라도, 꾸준하게 받던 월급이 사라지고 스스로 온전히 보스가 되어 돈 만원을 벌려고 하니 만원조차 버는 것이 녹록지 않구나를 절절하게 느꼈다. 더군다나 30대 중후반에 들어서 직종을 바꾸어야 했기에 수익을 얻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하고자 하던 일을 위해 자금을 모으고 새로운 방식으로 새롭게 경력을 쌓아야 했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걱정과 두려움. 지겨운 감정 따위는 느낄 여유가 없었다. 너무 걱정되고 두려웠기에. 내 선택의 후회를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시작은 창대했지만 결국 제자리걸음만 하다 끝나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 그렇게 호기롭고 야심 차게 시작한 인생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둘러싸였다.


그러다 지금의 직장을 제안을 받고 도쿄로 오게 되었다. 걱정의 끝에 몰렸을 때 해외 취업이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당시 내가 생각하던 새로운 삶의 도전으로 하고 싶었던 것 하나가 해외 취업도 있었다. 무모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떠한 뚜렷한 커리어에 대한 고민 없이 내가 있는 환경을 완전히 바꾸고 싶었다. 물론 당시 도쿄는 고려하던 도시는 아니었다. 일본에 여행은 온적은 있었지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나라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두려움의 끝에 완전히 새로운 제안을 받게 되었고 도쿄라는 가깝지만 먼 나라로 오게 되었다. 도쿄에서의 3년간의 삶은 기대와 초조함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0부터 혼자서 시작하는 삶이다. 내가 만나게 될 사람 내가 보게 될 것들 내가 하게 될 경험들은 모두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기대감이 충만했었다. 인간은 참으로 신기하다. 그 기대감만으로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초조함도 함께 왔다. 모든 것들을 새로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서 나는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 새로운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 결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사를 한 것도 내 선택이기에 선택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하기에 내 선택이 잘한 선택일까 하는 초조함. 거기다 코로나 까지 덮쳤다. 이대로 이 시기가 영원히 지속되면 어쩌지 하는 초조함까지 더해졌다. 지겨운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최근에 “지겹다”라는 감정이 들었다. 뭐든 재미가 있지가 않다.


두렵고 초조하지 않아 다행인 걸까


모든 게 익숙해져 버렸다. 일은 때론 어렵고 여전히 스트레스받지만 그래도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범위에 놓였다. 한자를 여전히 읽을 수 없지만 일본어며 한자로 된 간판들을 보는 것이 더 이상 이국적인 모습이 되지 않았다. 도쿄는 지하철이 매우 복잡해 첫해는 매번 지하철을 잘못 타곤 했다. 지하철을 탈 때면 항상 긴장하고 초조했다. 아마 그땐 첫해라 이곳저곳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지하철을 많아 탔던 거 같다. 이제는 가보지 않는 길을 잘 가지 않게 되었기에 사실 지하철을 잘못 타 길을 잃는 일이 발생하지가 않는다. 익숙하고 가던 장소만 간다. 무슨 라인을 타고 몇 번 출구로 나오면 되는지 안다.


어른이 되면 웃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사라진다고들 한다.


지겹다는 감정이 어쩜 내가 지금 고민할 것이 없다는 안정적인 상태일까. 안정적인 것이 좋은 걸까. 새로울 것 없는 삶에 나는 지겨움을 느끼게 되는 걸까. 생소한 감정에 당황스럽다. 전에 경험해 본적 없는 감정이기에 이를 처리할 매뉴얼이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면 늘 뭔가을 갈구하고 원하면 살아왔던 것 같다. 해보고 싶었던 것도 많고 이루고 싶었던 것도 많았다. 모든 것을 이루고 해 보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루고 싶은 것 중 이룰 수 있는 것과 이루지 못할 것들에 대한 자기 객관화가 생겨 버렸다. 과거 90% 불확실에도 꿈을 가졌다면 이제는 70% 확신이 들지 않는 것에 도전하지 않는다. 도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포기를 할 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초조함의 마음은 사라져 버린 걸 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의식적으로 초조한 감정이 드는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안될 것에 배팅을 거는 삶을 삶고 있지 않다.


지겨웠던 건 안정적이라기보다는 갈구할 무언가가 없었어 다기보다는 현재 삶에 만족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자꾸 잊어버리곤 한다. 도쿄로 온 몇 해 동안 주말마다 도쿄 구석구석을 돌며 여행하던 삶을 이제는 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2021년,

일본으로 이사를 와서 잃어버린 내 취미 중에 하나가 바로 서점에 가는 일이다. 한국 살 적 가끔씩 서점에 가서 책들을 둘러보고 읽어보다가 첫 장부터 한 열 번째 장까지 후루룩 읽히는 책들을 사곤 했다. 엄청난 독성광은 아니지만 가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을 수 읽는 책을 만나는 일이 참 좋았다. 밤새 책에 푹 빠져 읽다 보면 내 현실 속 고민도 잠시 잊게 된다. 도쿄와서는 한동안 이북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알라딘으로 이북을 구매해 핸드폰으로 책을 읽었다. 그러다 종이책이 문득 그리워졌다. 핸드폰으로 책을 읽다 보면 완전히 집중도 안된다. 책을 읽다 문자를 받으면 문자 답장을 하기도 하고, 결국은 다른 길로 새어나가기 일쑤였다. 종이책이 그리운 어느 날, 한국에서 책을 주문해 보는 것이 가능할까 확인해 보았다. 교보문고에 보니 해외배송이 되었다. 기쁜 마음에 읽고 싶었던 책이랑 좋아하던 잡지책을 5권을 장바구니에 넣고 주문하려고 했더니 보니 배송비가 책값만큼 나왔다. 책은 무게가 무거워 더 사면 살 수록 배송비가 배로 계속 올라간다. 그러나 큰 맘먹고 주문했다. 그만큼 종이책에 대한 갈망이 컸다. 오래간만에 한글로 된 책 읽게될 감격과 내가 좋아하는 잡지책을 받아볼 행복감, 그리고 5권이나 되는 책을 두고두고 읽을 생각 하니 좋았다.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면 항상 책을 들고나가 버스며 지하철에서 읽었고, 친구가 늦는다고 하면 오히려 더 좋았다.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잠시 가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글로 된 종이 책을 읽는 것이 뭐 대수냐 할 수 있지만 없어보니 참 그게 큰 대수가 되었다. 핸드폰으로 읽는 것보다 글이 더 잘 읽혔다. 배송비가 아깝지가 않았다.


문득 그때 소소했던 감정이 떠올랐다. 내가 지겨웠던 건, 작은 행복을 쫒지 않고, 큰 행복만을 바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 오늘 다시 책을 주문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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