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골

by 김 경덕

삼각골


폭우를 맞으면서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명달리를 다녀왔다.

중부 지방에 호우 경보가 내려져서인지 아침부터 빗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서기를 몇 번이나 망설이다 만나기로 약속한 지인들이 원주에서 먼 길을

온다기에 출발을 강행하기로 했다.

이곳 명달리는 1985년 봄부터 들락 거리기 시작했다.

산을 좋아하던 친구가 갑자기 대 기업의 안정된 보직을 내려놓고 그 해 봄 움막

하나를 이곳에 짖고서는 들어가 버렸다.

당시에는 양수리에서부터 비 포장도로였고 특히 성삼재나 명달현 고개는 노면

상태가 워낙 험해서 승용차로 접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였다.

친구는 마을의 분교가 내려다보이는 4,5부 능선쯤에 제법 여유 있게 터를

장만하고 서는 매년 봄마다 충북 옥천까지 가서 묘목을 새로 사다 심기도 하고 또

가꾸기도 하면서 산 사나이로 열심히 살았다.

오늘 비를 맞으면서 오랜만에 찾아가지만 친구는 이미 수년 전 나무와 함께

흙 속으로 돌아가 버려고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친구가 살았던 집터에는 분 화장을 진하게 바른 날렵한 전원주택 한 동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친구 생각이 나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실눈을 날카롭게

뜨고서는 찾아온 손님을 반기기는커녕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둘러 삼각골로 들어갔다.

마을에서 2km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 비경이

숨겨져 있다.

통방산 남쪽면을 타고 내리는 물줄기와 중미산 북서쪽 능선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전기는 물론 진입 도로도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곳이다.

당시에는 3가구가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 폐허가 되어 허물어져 없어지고

단지 한 가구만 외로이 남아있다.

당시 세 가구 중 한 가구에는 여든을 넘긴 노부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계셨다. 어느 해 직장 동료들과 산행 길에 산속에서 외로이 지내는 노부부를

처음 만났다.

주말에 동료들을 다리고 찾아가서 가끔 농사일을 도와드렸다.

할아버지가 몸이 편찮아지시면서 집 한 채와 딸린 한 필지(900평)를 반강제로

나에게 넘겨주셨다.

농사는 짓지 못하였지만 그동안 다른 사람이 이 집에 머물면서 관리를 해준

덕분에 그나마 형체를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장기간 이 집을 관리해온 사람이 갑자기 법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한때는 골 머리를 썩이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이 집의 주인이 된 우리는 먼저 간 산 사나이 친구의 넋을

조금이나마 이어 볼까 하고 오늘 빗속에 이곳을 찾아들어간 것이다.

원주에서 올라온 한 사람은 한옥 보수 전문가이시고 또 한 분은 목각 장인 이시다.

이 집에 살기를 희망하는 또 한 명의 기인은 집주인이기도 하면서 전직 신문쟁이요

글쟁이요 풍류객인 바로 손위 동서 되는 분이시다.

이 사람들 손에 과연 잡초가 우거진 초라한 이 집이 사람이 살 수 있는 모습으로

제대로 다시 태어날 수가 있을까?

장기간 건축 관련 일을 한 나 역시도 좀처럼 상상이 되질 않는다.

빗속에서 둘러본 이 집은 마치 이 산속의 뱀들이 밤이면 모두 내려와서 한바탕 파티를

하고 갈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이다.


"Back to the nature!"

마루도 없는 방 두 칸 부엌 하나의 삼 칸짜리 홑집은 벌써 십도 이상 기울어져 있다.

이것을 개조하여 하룻밤을 편히 쉴 수 있는 집으로 변신시키기 위해서는

나도 오늘 밤부터 구미호로 변해가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만 될 것 같다.


2018년 8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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