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장편소설
일체 현상계는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은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
<금강경>
희미한 목소리로 주고받는 소리가 들린다.
정확하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하여 본다.
눈을 뜬다.
암흑 속에 아주 천천히 빛이 들어온다. 눈이 아른거렸다. 익숙하지 않은 빛이 내 눈을 자극하는 거다. 천정에 형광 불빛이 보인다. 연한 베이지색 바탕에 병원 이름이 새겨져 있는 커튼이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반쯤 둘러싸고 있다. 침대 끝에 있는 두 사람이 희미한 그림자로 보인다. 그림자는 실루엣으로 변하고 사람의 윤곽으로 다가온다.
준비하라는 남자 목소리가 들리고, 여자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내가 눈 뜬 것을 여자가 알아차리고, 손으로 남자 몸을 옆으로 밀더니 나에게 다가온다. 여자가 머리를 숙여 나에게 눈을 맞춘다.
내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한다. ‘이틀 만에 눈 떴네’ 여자 소리를 듣고 ‘아 이번에는 이틀 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 개념이 없다. 지난번에는 사흘 만에 눈 떴다고 말해주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울지마’라고 여자가 말한다.
이 눈물은 나의 감정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뭐 그런 눈물이 아니다. 나의 감정과 관계없이 생리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우는 게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없다.
내 눈에 보이는 여자의 표정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하고 25년을 부부로 살아온 여자이다.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 이마가 넓고, 큰 눈에 쌍꺼풀이 있어 눈이 이쁘고, 긴 생머리, 하얀 피부에 양 볼에 불그레한 혈색, 부드러운 입술 선을 따라 살짝 웃으면서 사슴처럼 슬픈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이다.
갈증도 없고 배고픔도 없다.
어디선가 커피 향이 느껴진다.
이런 적이 없는데···, 코의 감각이 살아난 건가 생각이 든다.
갑자기 아메리카노 한잔과 크루아상 한 조각 먹고 싶어진다. 우물우물 빵을 씹고, 쌉쌀한 커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꿀꺽 넘기고 싶다. 코에 풍기는 냄새, 커피 냄새가 그리워진다.
이것은 나의 상상일 수도 있다. 코에 대한 냄새 기능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 냄새는 내 생각으로 느껴지는 헛 냄새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에 마침표가 찍힌다. 여자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나지막한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밤···, 어쩌고저쩌고하는 묵직한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침묵 속에 여자가 웃는 소리가 들린다.
내 몸뚱어리의 신체적 기능이 완전히 없어졌다.
3개월쯤 전에 병원에 실려 왔고 지금까지 누워있다. 나는 그 어떤 기쁨도, 슬픔도 없다. 있다고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수도권 제1 순환 고속도로에서 평촌 IC로 나가자마자 덤프트럭이 나를 덮친 것이 생각났고, 죽는구나, 생각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호들갑스럽게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모여들었다. 내 귓가에 ‘힘내’ ‘고맙다 살아줘서’ ‘사랑해’ 등등의 말이 진짜인지 환청인지 헷갈리게 들리었다.
‘살아났다니 대단해’ ‘안 죽었어’라는 말도 들렸었다.
눈을 뜨고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짧게는 하루에 한 번 정도, 긴 것은 얼마 만에 깨는지 모르겠다. 잠자듯이 눈 감고 있는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살아서 죽어 있는 놈인지 알 수가 없다. 눈을 떠도 눈만 뜨고 껌뻑 껌뻑거렸을 뿐이다.
고개를 돌려 볼 힘도 없고, 감각도 없는 거다.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정상적인 나라면 지루한 시간에 미쳐 죽을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육체적 기능이 살아 있는 것하고, 정신은 말짱한데 육체적 기능이 전혀 없는 것하고···, 전자가 치매라고 한다면, 후자는 현재 나의 모습이다. 치매는 자기가 정신이 없다는 것을 모르니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치매 걸린 것보다 더 힘든 것이다.
침대에서 죽은 듯이 있는 나는 시간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틀 만에 눈을 떴다고 하지만, 어제 아니 좀 전에 눈 감았다가 뜬 기분이다. 시간 개념이 사라지자, 공간에 대한 개념도 사라지고 있다.
어떨 때는 눈이 떠지지 않는다. 눈꺼풀이 안 움직인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정신은 있는데 그냥 암흑 속에 혼자 있는 것이다. 눈꺼풀은 안 올라가고, 정신만 멀쩡한 상태인 거다. 장님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흑암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런 세상에 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신이 되어 놀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을 만들고, 저런 세상을 만든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거나, 6.25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 전쟁영웅이 되는 상상을 한다. 서부 시대 총잡이가 되어 악당을 물리치고, 미녀들과 논다. 첫사랑을 찾아가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는 로맨스에 시간을 보낸다.
어떨 때는 의식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비몽사몽인 상태이다. 정신이 든 것도 아니고,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다. ‘방금 말했잖아’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서 아는 것이다. 나는 아닌 것 같은데,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는 듯하다. 잠꼬대와 헛소리, 존재와 비존재는 같은 거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허상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멀쩡하였는데 잠자고 눈을 뜨니 식물인간이 되어 있는 거다.
얼마 만에 가져보는 맑은 정신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정신이 맑을 거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어떤 날에, 친구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하고 같이 인생의 협로를 한해 한해 걸어온 친구들이다. 친구들하고 살아온 흔적을 보면 내가 제일 열심히···, 아니다 독하게 살았던 거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제일 열심히 살았다고···.
식물인간이 되어 이렇게 누워만 있다 보니, 이제 알았다.
인생은 협로가 아니라 소풍 길이었다는 것을···, 나는 세상을 희미한 안경을 끼고 잘 못 보았다는 생각이다. 내 눈을 덮어버린 희미한 안경은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열심히 살라고···, 아니 열심히 살 필요 없었다.
성실히 살라고···, 아니 성실한 살 필요 없었다.
착하게 살라고···, 아니 착하게 살 필요 없었다.
악착같이 피똥 싸면서 살 필요는 없었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었고, 영원한 시간은 없었다.
내 눈앞에 가까이 왔다가 멀어지는 친구들 얼굴이다. 친구를 보면서 나는 허무함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지금 눈뜨고 있는 한 시간이 소중하다. 나는 식물인간이다.
이러다가 나의 의지는 사라지고, 순식간에 흑암의 세계로 빠져들어 간다. 어디로 가서 노는지도 모르는 시간이다. 신만이 알 것이다. 그렇게 훌쩍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는 시간이다. 지금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지난 세월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병신같이 살았다.
난 내일을 위해서 살았을 뿐이다.
난 금수저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내 새끼들은 금수저가 되었다. 살다 보니 손에 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되었다. 죽는 날까지 써도 다 쓰고 죽지 못할 돈을 벌었다. 하루 24시간, 잠자는 시간 빼고는 일만 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나를 찾아오는 친구들의 애틋함은 나에게서 나의 마누라에게 옮겨가고 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고생하는 거라는 말이 있다.
지금 그 짝이···, 지금 나다.
내가 죽으면 나를 찾아온 사람들은 나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벌어놓은 돈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깨를 붙들고 한참을 흐느꼈던 친구가 있다.
살아온 인생에 내가 친구라고 생각한 유일한 사람이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대학은 서로 달리 다녔지만, 우리 둘에게는 비밀이 없었다. 비밀이 있다는 것은 우정에 자존심을 입히는 짓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역 뒷골목 만화방 지하에서 처음으로 포르노를 같이 보았고, 여자 있는 술집에 가서 어른인 척 술을 먹었다. 첫 동정을 집창촌에 가서 같이 떼었다. 친구가 첫사랑 여자에게 ‘그만 만나’라는 한마디 말을 들었다. 실연의 상처가 커서 죽겠다고 정신 놓은 적이 있었다. 술을 진탕 먹고 도루코 칼로 손목을 그어 죽는다고 응급실에 누워있는 친구 옆에 내가 있었다.
29살에 5개월 간격으로 결혼을 하였다. 30대에 잠깐 다른 동네에서 살았지만, 40대가 되면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 왔다. 이웃사촌으로 살았다.
어릴 때부터 넉살도 좋고 붙임성도 있는 친구라서 마누라하고도 격의 없이 지내게 되었다. 바쁘게 살지만 서로가 원할 때, 우리는 친구라는 자리를 지켰다. 운명이 있어 인연이 있는 거고, 인연이 있어 친구가 있는 거였다.
친구가 나의 어깨를 잡고 눈물을 흘릴 때 육체적 감각은 사라졌지만, 나의 정신은 멀쩡했다. 가슴 한구석을 찢어내는 듯한 친구의 슬픔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어릴 적 코흘리개부터 함께한 추억은 그 어떤 관계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친구는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눈을 뜨면 친구가 마누라 옆에 있었다.
어느 날 내가 회복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시한부 인생임을 알았다.
3개월 정도라고···,
친구야 잘 가라고···,
고맙다고···,
내 귓가에 친구가 따뜻한 음성으로 말을 해주었다. 나에게 준비할 시간을 알려 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내가 죽는 그 순간에 내 곁에 마누라가 있고, 친구가 있다면, 다시 살 수 없다는 그 마음은 절망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일 것 같다.
나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의 말을 듣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눈물 한 방울이 솟아 나와 흘러내리는 것을 알았다. 친구 얼굴이 보고 싶었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눈을 살며시 떴다. 친구의 등이 보이고, 친구의 등에 가린 마누라는 안 보이지만···, 마누라를 위로해 주는 듯한 모습이다.
인생은 생로병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생(生)이 있어 로(老)가 있고, 로(老)가 있어 병(病)이 있고, 병(病)이 있어 사(死)가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사(死)의 단계에 있다. 생로병사는 온전히 혼자 겪어 가는 거다. 누구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틈바구니가 있다면 지금일 것이다.
죽음을 앞둔 그 순간,
죽은 놈인지, 산 놈인지 구분할 수 없을 그때,
생각의 틈바구니가 있는 것이다.
사고가 나기 전, 돈을 벌수록 불안하였다. 불안할수록 더욱더 일했다, 나는 산 놈이었지만, 죽은 놈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이 왜 드는지 모르겠다.
마누라가 내 몸을 닦아준다고 물수건으로 훔칠 때 가끔 시야에 내 몸뚱어리가 들어온다. 나를 뒤척일 때 검게 변해가고 있는 거친 피부를 볼 수 있었다. 뻣뻣해지는 근육은 나의 것이 아니다.
식도 근육을 움직일 수 없어 목에 구멍을 뚫어 물과 허연 영양제 같은 것들이 모래사장에 물이 스며들 듯이 내 몸에 들어가고 있다.
가끔은 호흡이상이 오곤 한다. 타액이 폐로 들어가서 그런 거다. 그러면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인다. 숨을 헐떡이는 것은 살고 싶은 욕망이 아니다. 몸뚱어리의 물리적 반응일 뿐이다.
아주 가끔은 오늘처럼 정신이 맑은 날이 있다.
나의 이런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하긴 내가 제정신인지 아닌지 어찌 알겠는가, 나만 아는 거지,
죽어버린 근육을 죽지 않게 하려고 여자가 주무르고 있다. 아니 나의 마누라가 주무르고 있다. 그 힘에 따라 내 몸뚱어리는 돌덩이처럼 굳어가다가 다시 살아난다.
돈 번다고 밖으로만 돌았던 나인데, 마지막 내가 가는 길을 지켜주고, 돌봐주는 마누라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눈에 자꾸 물이 차오르고, 초점이 흐릿하다. 이럴 때가 있다. 눈썹 털 하나가 빠져나와 눈 안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감각이 없으니 그저 시야가 흐릴 뿐이다. 검은 자벌레 같은 것이 춤추듯 보인다. 눈물이 차오르면서 희미한 영상만 보인다. 사람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사라진 사람보다 더 큰 사람이 흐릿하게 나타난다.
내 인생의 단 하나, 친구임을 알 수 있다. 아까 두런두런 소리가 났던 것이 친구 소리였나 보다. 눈을 뜬다. 친구가 나의 몸을 일으킨다. 친구와 눈이 마주친다.
내가 중심이었다.
나는 내가 보는 세상만 보고 살았다.
내가 볼 수 없는 것은 세상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길 외에도 수많은 길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내가 살아온 길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사랑과 우정, 그런 감정의 유희에 살아왔다. 침묵이 이루어지고, 침묵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다.
친구가 나를 보고 서 있다.
그 친구 뒤에 여자가 서 있다. 여자는 두 팔을 남자 허리에 두르고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다. 남자가 나를 보고 웃는다. 자기 앞에 있는 여자 손을 잡으면서 뒤로 돌더니 여자를 품에 꼭 안고 입을 맞춘다. 고개를 젖히는 여자가 보인다.
반짝이는 눈빛이 나를 본다.
남자 소리인지 여자 소리인지 모르지만, 사랑해, 라는 말이 들린다. 코웃음이 들리는 듯했다. 오늘 밤·····, 이라는 말도 들린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세상을 거꾸로 보고 살았다는 것이다.
살면서 늘 불안했던 이유였다.
아 눈을 뜨지 말 것을···, 다시는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
번갯불 맞듯이,
내가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것들은···,
거꾸로 본 세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음이 왔다.
오늘 밤 내가 죽는가 보다.
오늘 밤 내가 꼭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개뿔···
살아있어 저 두 사람을 봐야 한다는 것은 지옥이다.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