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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쾌락의 윤리

단편소설

by 경국현




나는 내 얼굴에 침을 뱉고 살아가는 남자다. 그렇게라도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다.

병실의 불빛은 노랗고 흐렸다. 항암치료를 받던 영민은 핏기 없는 얼굴로 누워 있었다. 침대 머리맡엔 성경책이 한 권 펼쳐져 있었고, 환기구를 통해 들어온 바람이 천천히 커튼을 흔들었다.

심심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침대 끝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있던 여자, 지현은 호텔 침대 위에서 붉은 시트를 감싼 채 엉덩이를 들고 누워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켰다.

“뭐 하는 거야?” 지현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찍을 거야. 얼굴은 안 나와.”

짧은 20초. 화면엔 벌거벗은 등이, 미세한 움직임과 신음이 담겼다.

나는 그 영상을 ‘쓸쓸함의 위로’라는 문구와 함께 영민에게 보냈다.

잠시 후, 병실에서 짧은 진동음이 울렸다.

미친놈. 고맙다.

영민의 메시지를 본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너라도 재미 좀 봐야지.”

나는 지금의 삶을 쾌락으로 붙들고 있다. 감각, 흥분, 순간의 생. 남자가 여자를 원하는 건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유혹하는 게 아니라, 남자가 먼저 찌르고, 여자는 그 찔림을 외면하지 않는 방식. 그게 세상의 법칙이라 믿는다.

내가 만나는 여자들은 대부분 위로가 필요한 여자들이다. 어떤 이는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 어떤 이는 종교적 맹신 속에서 말라가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의 몸에 손을 대며 다시 사람으로 숨 쉬게 만든다.

지현도 그랬다. 등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는 오십이 넘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선이 고왔다. 나는 그날 다시 등산로를 올라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으니까.

“사귀자고.”

지현은 웃었고, 그렇게 우리는 애인이 되었다.

서울의 골프장, 제주도의 리조트, 말레이시아의 해 질 무렵 테라스. 나는 어디에서든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고, 가볍게 말하고, 가볍게 손을 잡는다. 내 손을 잡은 여자들이 모두 내 애인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거절하지 않는 이들은 내 품에 안긴다.

“썩어 문드러질 몸, 아끼면 뭐 해.”

레드와인을 기울이며 지현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입술은 이미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아내는 오늘도 새벽 기도를 다녀와 성경을 읽는다. 나의 핸드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니라.”

나는 그 문자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 지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현은 침대 위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오늘은 오래 같이 있고 싶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내 삶이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들은 나를 철없는 중년이라 비웃기도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면을 쓰지 않는다. 숨기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는 쪽을 택했다.

그게 죄라면, 나의 죄는 숨김 없는 쾌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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