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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말이 없는 부부

단편소설

by 경국현


금요일이다. 과일을 선물 받았으니, 늦지 말고 7시 정각에 도착하고 전화 줘, 하는 문자가 왔다. 아내의 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 오라는 시간에 맞춰 일하는 건물 앞에 차를 대는 것이 일상이다.

아내와는 햇수로 29년을 함께 살아왔다. 큰딸이 중3, 작은딸이 중1일 때, 아내는 살기 힘들다며 이혼을 원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차가운 공기가 아내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었고, 도박을 한 적도 없었고, 술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삼형제 중 막내지만, 시댁과도 큰 갈등은 없었다. 명절에나 한 번 부모님 댁에 들를 뿐이었다. 월급은 제때 갖다 주었고, 용돈은 아내가 정해주는 대로 썼다.

그런데 아내는 말했다. "이렇게 살기 싫어. 이혼해줘." 왜 그런지,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묻는 내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냥 싫다고만 했다. 이혼하지 않으면 집을 나가겠다고 했고, 아이들은 내가 알아서 하란다.

나는 우울증을 의심했다.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아내는 조용히 앉아 "정신병자 취급하지 마"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상황을 설명했지만, 사춘기의 그들에겐 너무 이른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이혼하지 말고, 엄마가 혼자 살게 해주자고 했다.

그 후, 아내는 주말에만 집에 왔다. 월요일 아침이면 다시 나갔다. 우리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아내가 머무는 곳은 우이동의 한 수련원이다. 단전호흡과 명상, 기체조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곳이라 했다. 급여는 없고, 숙식을 제공받으며 자원봉사를 한다고 했다. 생활비로 나는 매달 70만 원을 그녀의 통장에 자동이체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내 시간과 그녀의 시간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내 시간은 인내였고, 그녀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업을 쌓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는 각기 다른 업을 짊어진 부부였다.

두 딸의 양육비, 생활비 등 모든 부담은 내 몫이었다. 빨래, 밥, 청소 모두 내가 했다. 기계들이 도와주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밥상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자립심이 강했다.

주말이면 아내는 TV를 보고, 아이들과 외식을 하고, 수다를 떨었다. 대화는 있어도 깊이는 없었다. 연예인 이야기, 방송 프로그램 이야기. 아이들에게 아내는 '우울증 걸린 엄마'로 보였다.

부부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각방을 쓴 지 15년. 스킨십은커녕, 손을 대면 노려보는 눈빛이 무서웠다.

대화도 없다. 나는 단답형 응답자였다. 두 딸은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 아내는 여전히 나와는 말을 아꼈다.

나는 가끔 그녀가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 생각한다. 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달라고 하면, 그녀는 "잘못한 건 없지만, 그냥 싫다"고 했다. 그녀는 말했다. "답은 정해져 있어. 왜 자꾸 힘들게 해?"

나는 결국 침묵을 택했다.

세상 모두를 이해하며 살 수는 없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자라 주었다.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고, 문제 한 번 일으킨 적 없다. 엄마에 대한 기대는 시간이 흐르며 사라졌다. 큰딸은 주말마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 나는 말했다. "네가 행복한 선택이라면, 아빠는 믿는다." 딸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마음에 박혔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자, 집은 더욱 삭막해졌다. 아내는 밖에서 자고, 나는 무력하게 깨어 있었다.

감정에 빠진 인간은 고독해진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나는 어느새 늙은이가 되었다.

젊은 시절, 심장이 뛰었다. 아내가 나타났고, 사랑이 시작됐다.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결혼을 결심했다. 그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졌고,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삶은 기질과 천성이 만들어낸 전혀 다른 존재였다.

나는 나의 시간을 그녀에게 맞추었고, 내 인생을 도리와 규칙에 따라 살았다. 그렇게 살아온 흔적에 흠이 있다면, 새털처럼 가벼울 것이다. 친구들 중엔 그렇게 살지 않는 이도 많았다. 나는 그들이 비겁해 보였지만, 이제는 그들도 이해된다.

나는 가끔 내가 고립되어 있다는 걸 느낀다. 세상은 나만 혼자인 듯하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한 섬, 나라는 섬.

사람들은 내가 행복한 줄 안다. 친구들은 딸과 아내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자라고 한다. 그들에게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드물게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어이없어한다. "그거 두 집 살림이야", "다른 남자 있는 거 아냐?" 나는 그 말들에 입을 다문다. 아내가 보는 세상과 내가 보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만 안다.

빗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나온다. 우산을 들고 뛰어가 바구니를 받아 차에 싣는다. 묻고 싶지만, 물으면 인상을 쓸 것이다. 우리는 말없이 집으로 간다. 라디오에서 김창완의 '청춘'이 흘러나온다. 침묵이 짙다. 무언가 말하면, 그건 비장한 고백이 될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이 길다.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과일을 씻어 냉장고에 넣는다. 그녀는 거실에서 TV를 틀고, 나는 안방에서 누워 소리를 듣는다. 잠이 든다.

밤 2시. 딸들이 돌아왔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워 있다. 고인 눈물이 떨어지려 한다. 깊은 한숨이 밤의 악마를 깨운다. 나는 눌리고 있다. 뜬눈으로 밤을 보낸다.

새벽, 주방에 나간다. 어질러진 술잔과 빈 병들, 과일 껍질을 치운다. 김치, 밥, 달걀프라이, 고추장을 한 접시에 담는다. 소파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모두가 잠든 아침이다.

주말에는 건물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다. 월 80만 원. 아내의 용돈이다.

4년 전 권고사직을 당한 뒤, 주중과 주말, 밤을 나눠 세 가지 일을 한다. 딸들 결혼자금도 마련해야 한다. 가장이라는 자리를 지킨다는 사명으로 살았다. 하지만 나는 소외된 아버지, 쫓겨난 남편, 공허한 남자였다.

벌거벗은 시간을 본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괜찮니?" 나는 대답한다. "괜찮아." 모호한 대답이다.

거칠고 금이 간 내면으로 나는 조금씩 죽어간다. 나의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는 살인자, 바로 나다.

황혼이혼을 생각한 적 있다. 늙은 나이에 혼자 살아볼까. 하지만 무엇이 달라질까. 이래도 혼자, 저래도 혼자. 결국 참고 살아온 세월만이 남았다.

사라진 시간 속에 시들어버린 내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늙어간다. 죽음에 대한 갈증이 온다. 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남자는 가정을 꾸렸으면, 도리를 다하고 살아야 한다."

나는 그 말을 따라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버지도 틀렸고, 나도 틀렸다는 걸.

아버지가 데리고 산 여자와 내가 데리고 산 여자는, 다른 여자였다.

아마, 내가 아내 복이 없는 것이고, 아내는 남편 복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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