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에 사는 나는 44살, K 은행 부지점장이다. 남편은 증권회사 지점장이다. 결혼 전에 같은 은행, 같은 지점에서 근무했었다. 연애하고 결혼하였다. 대출 상품 기획력이 뛰어나 영업실적이 우수한 남자 사원이었다. 영업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법무대학원, 경영대학원, 부동산대학원 3곳을 다닌 사람이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은 증권회사로 옮겼다.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돈에 대한 욕망을 숨기고 있는 남자였다. 친절과 상냥함을 벗겨내면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이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남자인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나도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남편의 실제였다. 남편은 과천으로, 나는 용인으로 출근한다.나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남편은 자가용으로 출근한다.
한집에 살고 있지만, 남편과 나는 집에서 동선이 다르다. 45평짜리 아파트는 서로가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넓은 집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하나의 핑계일 뿐이다.
어떨 때는 일주일에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때가 있다. 코로나에 걸렸어도 내가 코로나에 걸렸는지 남편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딸이 하나 있는데 대학교 1학년이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남편 명의이고, 왕십리뉴타운에는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 32평짜리 한 채가 있다. 그리고 남편 몰래, 강릉에 17평짜리 아파트를 사 놓았다.
낯선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다.
금요일 오전에 문자가 왔다. 내일 저녁에 셋이서 저녁 먹자는 남편의 문자였다. 선약은 없지만, 반사적으로 선약이 있다고 거절하였다. 토요일에 나는 MBA 경영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여자로 은행이란 조직에서 살아남고 버티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고객만이 아니라 같은 조직 내의 위아래 사람들에게 내부 영업을 해야 하는 일이 여자로서 어렵다. 연차가 올라가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은행 조직에서 정치를 해야 했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은행 조직에서 살아남았지만, 남들이 보기에 내가 승승장구 달렸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자기 인맥을 통해 나를 도와주었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내가 독하게 이를 악물고 버틴 것이다.
남편은 처음 만날 때부터 나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가르치려 했다. 나보다 은행 직급도 높고, 선배 사원이기도 하고 해서 그러려니 했다. 뭔가 많이 아는 듯하여 존경의 눈초리로 보기도 했었다. 연애할 때는 애정으로 생각하고, 사랑의 표현으로 생각했었다.
결혼하고서도 그러한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어이없지만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집안일, 회사일, 양육일, 시댁일, 친정일 등등에 시시콜콜 지시하고 참견하고 자기 말대로 하는지 감시하였다. 자기가 판단하고 결정한 것이 최선의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은 틀린 것이었다. 특히 가족이란 울타리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하였다. 세상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논리를 만들어 훈계하는 것을 좋아했다. 딸은 어려서 모르고, 나는 여자라서 모르는 거다. 자기만이 세상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었다. 맞벌이였기에 내 월급에 대한 간섭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맞벌이 아니었으면 일일이 가계부를 뒤져 볼 사람이었다.
잔소리 그만 좀 하라고, 징그럽게 수없이 싸워 보았지만 안되었다.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이 없다. 남편은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점점 모질게 변해갔다. 아빠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은 대화의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남편은 전혀 모르고 있다. 가장이 그렇게 무시 받으면서 사는 모습이 현대인으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을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에서, 남자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희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가 틀린 것이 아니라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와 딸이 어리석은 것이다. 결혼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추악한 현실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사랑의 표현으로 생각한 내 잘못이다.
결혼 전에,
결혼은 여행이라 생각했다.
부부가 함께 만들어 가는 여행···, 여행 동반자,
부부가 된다는 것은, 동반자가 되는 거였다.
내 생각이었다.
남편은 나를 동반자로 보지 않는다.
결혼은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 여행이 아니었다. 자기 삶에 여자로서 역할을 해줄 시종을 찾는 것이었다.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존재가 아니었다. 사랑이 배제된 부부는 나에게 있어 삶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미치기 직전에 각방을 쓰자고 선포했다.
각방을 쓰면서 나만의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고, 남편을 포기하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었다. 한 해가 가도 두 해가 가면서, 부부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구멍이 뻥 뚫렸음을 알았고, 그 구멍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졌다. 울타리는 넘어갈 수 없는 철옹성이 되었다.
남편은 자기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 다른 것이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자기 말을 듣고 살면 되는 거였다. 그러므로 이혼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지만, 자기 생각일 뿐이다.
토요일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다.
대학원을 다닌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주말에 집을 나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든 것이다. 안 그러면 주말에 남편하고 동선이 겹쳐서 얼굴 볼 일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안방에서 나가지 않으니 얼굴이야 안 보겠지마는, 한집에 있다는 생각으로 긴장과 경계심이 생기었다. 생각만으로도 집이 불편하였다. 집에서 혜화동까지 1시간 걸린다.
투자론을 강의하는 50대 후반의 교수는 달랑 한 과목 강의하는 겸임교수이다. 정교수가 아니지만, 경영대학원에서 명강의로 소문난 사람이다. 학생들이 인기가 높아 수강 신청을 재수 삼수해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입학 설명회에서 선배들이 1학기 차부터 무조건 신청하라고 했다. 재수 없으면 졸업할 때까지 수업 못 들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나도 입학하면서 1학기 차에 수강 신청했지만 3초 만에 등록 마감이 되었다. 다들 어디서 수강 신청하는지, 인터넷 접속 속도가 빠르다. 지금 3학기, 세 번째에 성공한 것이다.
교수의 수업은 첫 시간부터 강렬하였다.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40명을 단숨에 집중하도록 한 묶음으로 휘어잡았다. 강의 카리스마가 넘치는 교수였다.
투자론을 소개하는 첫 시간인 줄 알았더니, 대학원 교수가 대학원에 진학한 우리를 머저리로 이야기한다. 저 사람 투자론 강의하는 교수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대학원에 왔느냐···,
왜 사냐···, 고 학생들에게 질문하듯 화두를 던진다.
직장생활 10년 20년 잘 다니는 사람들이···,
뭐 배울 게 있다고···,
비싼 돈 내고 왜 여기 앉아있느냐···, 고 40명의 학생 시선을 노려보면서 말하였다.
학교에서 돈 벌자고···, 만든 경영대학원 프로그램에 가스라이팅 당해서 대학원에 입학한 것 아니냐···, 고 한다.
대학원 수업료는 한 학기에 약 1,000만 원 정도이다. 비싸기는 비싸다. 왜 대학원을 왔냐는 질문에 마음 한구석이 덜컹했다.
남편 보기 싫어서 왔는데요··· 라고, 그래서 쾌감을 느끼고 있다, 고는 말할 수 없었다.
첫 시간부터 강렬했던 교수는 수업 시간 내내 열변을 토해낸다. 말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있는 교수이다. 학생들도 교수의 열정에 스며들었다. 수업 듣는 학생들의 눈동자들도 살아있다. 일주일이 기다려지는 강의였고, 강의실로 들어오는 교수를 보면 반가움이 밀려왔다.
오늘 강의 내용이 부동산 투자에 관한 거였다.
절세 방법 중에 부부 공동명의가 이야기되었고, 다주택자들에 대한 투자방법론이 논의되었다.
나도 모르게, 무늬만 부부인데···, 라고 말이 나왔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강의장에 작은 혼잣말은 크게 들렸다.
39명의 학생 중에 나를 쳐다보고 킥킥 웃는 사람이 있었다. 교수 얼굴만 쳐다보고 교수의 입에 시선이 집중된 수업 시간에,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강의장 분위기를 순식간에 가볍게 만들었다.
교수가 나를 보고는 씩 웃는다.
교수와 눈이 마주치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예전에는 부부가 10년 정도 살면, 전쟁이 나서 죽던지, 사고로 죽던지, 병이 나서 죽던지, 다쳐서 죽던지, 애 낳다가 죽던지, 여러 가지 이유로 일찍 죽었다고 말한다.
같이 살 때도 애 키우고 밥벌이하느라, 부부가 뭔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고···, 눈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자고···, 그러면 애가 생기고···,
대화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았으니,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배우자가 사랑으로 기억되는 거란다.
지금은 다들 먹고사는 세상이 되었고,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나서, 20년이 기본이고, 30년 40년 50년 사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죽지 않고 살다 보니,
배우자가 남으로 기억되는 세상이라고···,
백년해로가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백년해로하는 세상이라고 ···, 나를 보고 말한다.
나는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걸어서 학교 밖으로 나가는데, 저만치 앞에 교수가 걸어가고 있다.
왼쪽에는 차도 오른쪽으로는 소나무와 단풍나무들이 있다. 인도와 나무들 사이에 화단이 보이고 빨강과 연보라, 그리고 하얀색의 꽃들이 피어있다. 그 위로 몇몇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뛰어갔다.
교수에게 오늘 수고하시었어요, 라고 아는 체를 하였다.
교수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본다. 같이 걸었다.
집으로 가세요, 라고 물으니,
교수는 대학로에서 친구 만날 거라 한다.
나에게 어디 약속이 있냐고 한다.
없다고 하였더니 같이 커피 마시러 가겠냐고 한다.
나는 그래도 되겠냐, 실례가 아니냐고 하였고,
교수는 상관없다고 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교수와 교문을 나란히 걸어 나왔다.
저녁 시간이 되면 늘 그렇듯이 대학로 거리는 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젊은이들의 들썩이는 몸과 앳된 얼굴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교수와 나는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젊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걷는다.
옛날 기와집 한옥을 개조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네다섯 평 정도의 마당이 보이고, 반쯤 깨어져 있는 항아리에 꽃들이 피어있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인다. 자리에 앉으니 창살 사이로 보이는 마당의 모습이 포근하다.
교수와 교수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람, 그리고 나는 커피를 마시었다. 커피값은 교수가 냈다. 내가 산다고 하였더니,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자기가 내야 한다고 한다.
내가 나이 따지는 것을 보니, 꼰대네요, 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교수님이나 나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도 말했다.
교수는 눈 한번 크게 뜨고는,
그런가, 말한다.
대화하다 보니 부부에 대한 주제가 이야기되었다.
교수는 혼자 사는 남자였다.
이혼남이었다.
이혼해서 제주도에 살고 있다고 한다. 강의 때문에 서울 왔다가 강의하고는 본가에 들린다고 한다. 하룻밤 자고 다시 제주도에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오는 사람이었다.
사업을 정리하고 조기 은퇴한 사람이었다.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교수 친구는 이혼하고 혼자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지 교수에게 물어본다.
교수는 좋다고 한다. 혼자 사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혼자서 외롭지 않냐고 친구는 또 묻는다.
외로운 것은 혼자라서 외로운 거 아니고,
배우자가 있고,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는데···,
누군가가 내 옆에 있을 때···,
혼자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외로운 거라고 말한다.
제주에 혼자 산다고 해서 느끼는 감정은 외로운 게 아니라 심심한 거라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친구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교수가 말한다. 교수가 말하는 것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공감되었다.
나는 이혼하고 싶은데···,
남편이 이혼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
왜 이혼하고 싶냐고 교수가 묻는다.
성격이 안 맞는다고 대답했다.
교수가 음 하고 소리를 내더니,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한다.
나하고 성격이 맞는 사람은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거라 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면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내가 중심이 되어 남편을 보고, 남편은 남편이 중심이 되어 나를 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한다.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
내 생각이라는···,
그것을 못 버려서 안 맞는 거라고··· 한다.
성격 탓할 거면 이혼하지 말고 그냥 살라고 한다.
카페를 나왔다.
교수는 나에게 뭐할 거냐고 묻는다.
나는 술 먹으러 갈 거라고 했다.
술 약속이 있는 거냐고 묻는다.
나는 없는데, 이제 술 먹을 사람 찾아서 전화할 거라고 했다.
교수는 친구를 보더니, 술 먹을래 물어보고, 친구는 좋다고 하였다.
교수는 술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번잡한 도로에서 택시를 잡더니 인사동 가자고 한다.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이 뒤섞여 있는 거리에 들어섰다. 교수가 터벅터벅 골목길로 들어간다. 반 걸음 뒤에서 교수를 따라간다. 영화감독이 한다는 남도 음식 전문점을 찾아가더니, 문어숙회, 꼬막, 그리고 유자 막걸리를 주문한다.
셋이서 막걸리를 먹었다.
결혼, 부부, 인생 등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한 시간쯤 지났는데, 교수가 친구에게 안 가냐고 눈치를 주면서 묻는다. 친구는 웃으면서···, 가야지 하면서 일어난다.
나하고 교수 둘이 남았다.
교수에게 왜 친구를 쫓았냐고 물었다.
교수는 나하고 둘이 술 먹고 싶다고 말한다.
친구가 적당히 눈치채고 가야 하는데 일어날 생각을 안 해서 가라고 말했다는 거다. 친한 친구라서 내 말뜻을 알아듣고 바로 일어난 거라고 했다.
강의할 때와 술자리가 다른 모습이다. 솔직한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니 강의할 때와 같은 모습인 듯싶다. 교수 평가가 안 좋아서 다음 학기에 강의가 없어도 좋다고 하였다. 돈 벌라고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로 하는 거라, 했다. 학교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겠다고 했다.
지금 교수는 나를 여자로 보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심장이 콩콩 뛰었다.
은행에 있다 보면 여직원에게 사귀자고 하는 남자은행원들이 진짜 많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직원들끼리 농담이라고 하면서 툭툭 던지지만, 알맹이 있는 농담들임을 서로가 알고 있다.
입사 동기인 남자가 몇 년째 애인하자면서 들이대고 있다. 나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였다. 사실 남편에게 정이 떨어지고 나서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욕구 불만 같은 것도 없다. 일하는 재미로 살아왔다.
지금 이 저릿함은 무엇인지 호기심이 몰려왔다.
여자는 남자 없이 살 수 있는데, 남자는 여자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라 생각하고 있다. 교수에게 여자가 있을지 없을지 궁금해졌다.
막걸리를 교수에게 따라주는데, 문자가 왔다. 열어보니 남편이 딸하고 저녁을 먹는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다. 딱히 회신해 줄 말도 없어서 핸드폰 화면을 닫으려고 하다가 카톡을 열어 딸에게 문자 보냈다.
아빠하고 저녁 잘 먹고, 엄마는 교수님하고 술 먹는 중, 이라고 보냈다.
많이 먹지 마, 라는 문자를 딸이 보내왔다.
남편과 나는 서로가 각자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부부가 되어 공유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부부가 아니었다.
비밀만 간직한 부부이다.
침묵만 존재하는 부부이다.
취기가 오른다. 나는 말을 편하게 하고 있다. 반말도 툭툭 튀어나온다. 교수와는 인생 이야기로 바뀌고 있다.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재미는 모르겠고, 그냥 일하는 재미로 산다고 하였다.
일하는 게 재미있냐고 물으면서, 일은 재미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일은 물질적 보상 때문에 하는 거라고 한다.
강의 첫 시간에 자기가 말한 것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대학원에 왜 왔냐고 학생들에게 물었었다.
교수는 우리한테 성공하기 위해서 대학원 왔을 거라고···, 그리고 성공이란 의미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돈을 벌면 돈을 더 벌라고 일만 죽도록 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교수가 말하였다.
성공이란 단어에서 돈을 빼면, 성공의 의미로 남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물어본 것이 생각났다. 돈 버는 재미도 좋지만, 돈 쓰는 재미로 살아야 한다고···, 잘못하면 일만 하다가 죽는다, 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교수는 재미있게 살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
자기는 그렇게 살고 싶어서 제주에 가서 산다고 하였다.
어떻게 사는 게 재미있어요, 라고 물었다.
나에게 연애하란다.
남녀가 갖는 설레는 마음, 육체적 그리움을 그리워하면서 살아보라고 한다. 평범한 일, 일상적인 일, 정해진 일에서 벗어나 보라고 한다. 인생에 의미가 있다는 그 일에 내가 없다면 폐허뿐인 인생이란다. 나라는 영혼, 나라는 육체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눈뜨고 사는 것이 고통이라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하는 부처의 말은 혼자서 살라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
악연인 가족으로 삶의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울타리를···,
그 인연을···,
깨부수라는 소리였다는 거다.
인연은 선연과 악연이 있고, 악연에 집착하는 중생이 되지 말라는 말이라 한다. 가족이란 관계에서 오는 악연은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이기 때문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고 말한 거라 한다.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침묵했다.
교수의 말이 다 끝나자 침묵이 금빛이 되어 빛났다.
교수를 쳐다보았다. 교수는 나를 쳐다보고는 가볍게 미소 짓는다. 술기운 인지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술기운에 용기가 생기는 건지도 모른다. 교수 품에 안기는 상상을 해 본다. 교수가 남자로 보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침묵의 금빛이 사라지기 전에 나하고 애인할래요 라고 물었다.
얼떨결 나온 이야기인지, 내 의지가 동반된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잠꼬대하듯 한 것인지, 까짓것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교수 눈을 보았다.
교수가 나를 쳐다보더니 웃는다.
너 할 수 있어, 나에게 묻는다.
재미있게 살라면서···요, 말한 나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침한 표정을 짓고는 막걸리를 마시었다.
당황스러움이 생기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정말 아주 짧은 무언의 시간이 지난다. 생각에 잠겨있던 교수가 테이블에 있는 나의 손을 잡고,
지금부터··· 애인하자고 말한다.
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교수를 쳐다보았다.
기분 좋은 정적이 교수와 나 사이에 있다.
꽃이 벌을 찾아 유혹하는 것인지,
벌이 꽃을 찾아 유혹하는 것인지,
혹시 바람둥이세요, 선수 같다고 내가 말했다.
교수는 옳은 행동인지 아닌지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그것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바람이 마음에 불어왔다.
택시를 탔다. 애인이 된 첫날이니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한다. 택시 뒷좌석에 둘이 앉았다. 택시가 도로를 달리는데 취기가 올랐다. 어지러움이 왔다. 교수가 편하게 있으라고 하면서 손을 뻗어 나의 어깨를 잡고는 자기 무릎에 나의 몸을 누인다.
눈을 감고 있으니 고요함이 나의 몸에 스며들었다. 운전하는 택시 기사가 뭐라고 생각할까, 우리 두 사람을 부부로 볼까, 생각해 보았다. 마음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있는데, 교수의 손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다 사라진다.
가벼운 열기가 생기더니 설레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의 가슴이 점점 세차게 뛰고 있었다. 교수의 손이 예고도 없이 나의 옆구리를 거쳐 위로 올라오는 움직임이 있다.
어떡하지 망설임이 있었지만,
찰나의 행동이 더 빨랐다.
팔과 어깨를 살짝 비틀어 교수의 손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미미한 떨림이 무릎에서 몸에서 번져가고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나는 인사발령 때 근무지를 제주도와 강릉 두 곳 중에 하나로 해달라고 지원하였다.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아니 남편을 떠나는 것이다.
남편은 승진하여 지역 본부장이 되었다고 한다. 경제적 공동체도 아니고, 육체적 공동체도 아니고···, 관심이 없었다. 다시는 한집에서 남편하고 살 것 같지는 않다.
부부 금실이 좋든 나쁘든···,
부부로 사는 동안에는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부부는 좋든 싫든 삶의 파편들 사이를 뒹굴고 다닌다. 그 일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또는 아는데 모른 척하고 살 뿐이다.
부부라는 것을 포기했으니, 파편이 무엇이 되었든 남의 일이 되었다.
이혼했다.
이혼녀가 되었다.
강릉에 인사발령이 났다. 교수가 방학이라 강의가 없는 시즌이 되면 나는 주말마다 제주도 이혼남에게 간다. 강의가 있는 학기 중에 교수가 서울 올라오면 강릉으로 이혼녀인 나를 만나러 온다.